브런치북 장발남 07화

신입사원 머리스타일

by 부소유

2007년 12월 3일, 월요일. 첫 출근.


“신입사원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인사팀 박 과장입니다.”


연수실에 모인 신입사원은 총 20명. 남자는 12명이었고, 우리의 머리는 한결같이 짧았다. 마치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우선 우리 회사의 복장 규정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PPT가 켜졌다. ‘단정한 복장과 용모’라는 제목.


“명문화된 규정은 없습니다만,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명문화되지 않은 규정. 그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었다. 경계가 없으니 늘 조심해야 했고, 기준이 없으니 늘 불안했다. 첫 주, 부서 배치. 나는 영업 2팀에 배정됐다.


“어, 신입이 왔네? 나는 김 대리야.”


김 대리의 머리는 나보다도 짧았다. 거의 삭발 수준.


“머리 깔끔하네. 좋아, 좋아.”


칭찬인지 평가인지 모를 말. 하지만 그의 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 팀장님이 그런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셔. 첫인상이 반이라고.”


첫 팀 회식. 부장님이 술잔을 들며 말씀하셨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머리가 길어. 특히 아이돌 때문에 이상한 머리하고 다니는 애들이 많던데.”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우리 팀은 다행히 다들 단정해서 보기 좋아. 특히 신입사원, 김민수? 아주 모범적이야.”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했다. 칭찬받는 게 기쁘지 않았다.


과장님이 거들었다.


“맞아요. 제가 예전에 다른 회사에 있을 때, 머리 긴 신입이 있었는데, 결국 잘렸어요.”


“머리카락을 잘렸다고요??!!”


내 물음에 과장님이 웃었다.


“응? 크크. 아이고.. 그게 아니고 회사에서 잘렸다고.. 직접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거래처에서 싫어하더라고. 신뢰가 안 간다고.”


신뢰. 또 그 단어였다. 머리카락 길이로 신뢰를 측정하는 세상.


1월, 첫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뿌듯했다. 하지만 그중 3만 원은 미용실로 갔다. 매달 필수 지출이었다.


“벌써 오셨네요?”


단골이 된 미용사가 반겼다.


“네, 이제 매달 와야 할 것 같아요.”


“회사원들은 다 그래요. 한 달에 한 번이 기본이죠. 빠르면 2~3주에 한 번 오는 분도 있고요.”


한 달에 한 번. 1년이면 12번. 30년 직장생활이면 360번. 평생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만 해도...


2월, 설 연휴. 친척들이 모였다.


“민수야, 취업했다며? 역시 머리 깎으니까 사람 달라 보인다.”


“그러게. 대학 때는 머리 길러서 영 이상했는데.”


“이제 어른 됐네, 어른.”


어른. 그것은 짧은 머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3월, 입사 3개월 차. 어느 날 옆 팀 신입사원이 머리를 조금 길러서 왔다. 정확히는 한 달 반 만에 미용실에 간 것뿐이었지만.


“야, 쟤 봐. 머리 완전 길어졌네.”


“신입이 벌써 해이해지나?”


“팀장님이 뭐라 하시겠다.”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오후에 팀장실에 불려 갔다.


“적응은 다 했어?”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근데 외모 관리도 일의 일부야. 알지?”


“아, 네...”


“특히 우리는 고객을 만나는 부서잖아. 첫인상이 중요해.”


다음 날, 다시 짧은 머리가 되었다. 4월, 봄이 왔지만 내 머리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여전히 겨울이었다. 짧고, 차갑고, 메말랐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선배가 말했다.


“나도 신입 때는 너처럼 짧게 했어.”


“지금도 짧으신데요?”


“이게 짧아? 나름 기른 건데.”


자세히 보니 정말 나보다는 조금 길었다. 아주 조금.


“5년 차 되니까 이 정도는 봐주더라.”


5년.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5월,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는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었다.


“야, 너 머리 왜 그래?”


“응? 평소대로인데?”


그의 머리는 어깨를 넘고 있었다.


“회사에서 뭐라 안 해?”


“우리 회사? 대표님이 더 길어.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대.”


부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저런 회사가 얼마나 오래갈까? 결국 대기업의 문화를 따라가지 않을까? 6월, 신입사원 6개월 평가.


“김민수 사원, 전반적으로 우수합니다. 특히 고객사에서 평가가 좋아요. 신뢰감 있다고.”


인사팀장의 평가. 신뢰감. 그것이 내 능력인지, 내 외모인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모범적인 신입사원이에요.”


모범적.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모범적이고 싶지 않았다. 나답고 싶었다. 7월, 무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에 목덜미가 시원했다. 머리가 길었다면 덜 시원했을까? 아니면 머리를 묶어서 더 시원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신입, 머리 또 자를 때 됐네?”


김 대리의 지적.


“아, 다음 주에 가려고요.”


“다음 주? 지금 가. 부장님 눈에 띄기 전에.”


점심시간에 미용실에 갔다.


“이번엔 더 짧게 할까요?”


“아니요, 그냥 평소대로...”


하지만 내 ‘평소’가 뭔지 나도 몰랐다. 그저 ‘신입사원 머리’가 있을 뿐이었다. 8월, 대학 선배를 만났다. 그는 과장으로 승진한 뒤 머리를 조금 길렀다고 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겼어. 과장되니까 간섭도 덜하고.”


“부럽네요.”


“뭐가. 너도 시간 지나면 돼. 다만...”


“다만?”


“결혼하면 또 짧게 잘라야 해. 장인어른이 싫어하신대.”


끝이 없었다. 신입사원 때는 상사 눈치, 과장 되면 거래처 눈치, 결혼하면 장인어른 눈치. 입사 9개월. 미용실에 9번 갔다. 27만 원을 썼다. 하지만 잃은 건 돈이 아니다. 매달 조금씩,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이 짧은 머리 위에 정말 내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모범적인 신입사원'이라는 가면만 있는 걸까? 하지만 다음 날도 나는 짧은 머리로 출근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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