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발남 02화

스포츠머리

by 부소유

중학교 입학식 전날, 어머니는 나를 동네 미용실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다녔던 낡은 이발소가 아닌, '장미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우리 아들 중학생 되니까 좀 멋있게 해 주세요.”


미용사 아줌마는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말했다.


“스포츠머리로 해드릴까요? 요즘 중학생들 다 이렇게 해요.”


스포츠머리.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부풀었다. 스포츠라니. 뭔가 역동적이고 멋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동경하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같은 머리일지도 몰랐다.


30분 후, 거울 속 내 모습은... 글쎄,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옆머리는 바짝 밀었고, 윗머리만 살짝 남겼다.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어때? 멋있지?”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식 날, 교실에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40명의 남학생 중 39명이 똑같은 머리였다. 스포츠머리.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들 같았다. 유일하게 다른 한 명은? 완전 삭발이었다.


“야, 너 왜 빡빡이야?”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그 친구의 대답에 우리는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우리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체육 선생님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 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근육질 몸. 그리고 역시나 스포츠머리.


“자, 우선 두발 규정부터 설명하겠다.”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 앞머리: 이마의 절반 이하

- 옆머리: 귀에 닿으면 안 됨

- 뒷머리: 목덜미에 닿으면 안 됨


“교칙에는 없지만, 다들 알아서 지켜라. 안 그러면...”


굳이 말을 끝맺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체육 시간에 단체 기합, 방과 후 남기기, 부모님 호출.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레퍼토리였다.


첫 중간고사가 끝난 후, 반에서 몇 명이 머리를 살짝 길렀다. 정확히는 미용실에 가지 않고 한 달을 버틴 것뿐이었지만. 그중 한 명이 나였다.


“야, 김민수. 너 머리 좀 긴 거 아니냐?”


쉬는 시간, 반장이 다가왔다. 내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이거 봐. 눈썹 닿잖아.”


“아... 아직 안 닿는데?”


“닿는다니까? 야들아, 이리 와서 봐봐.”


순식간에 애들이 몰려들었다.


“닿는 것 같은데?”

“애매하긴 하네.”

“그냥 깎는 게 낫지 않나?”


다수결로 '닿는다'가 결정됐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스포츠머리가 되어 있었다.


미술 시간이었다. 자화상 그리기. 나는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길게 그리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김민수, 너 뭐 그리는 거야?”


미술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더니 웃었다.


“이게 자화상이야? 네가 언제 이런 머리였어?”


“그냥... 상상해서요.”


“상상? 자화상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거야. 다시 그려.”


나는 지우개로 긴 머리를 지웠다. 그리고 스포츠머리를 그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그냥 '중학생 남자 1번'이었다.


여름방학이 왔다. 나는 굳게 결심했다. 이번 방학엔 미용실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 나 머리 안 자를래.”


“뭐? 왜?”


“그냥... 한번 길러보고 싶어서.”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개학하면 혼난다.”


“8월 말에 자르면 되잖아.”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장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7월 한 달 동안 머리는 제법 자랐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 시작했고, 옆머리는 귀를 덮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설면서도 좋았다. 이게 진짜 나인 것 같았다.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야, 너 머리 왜 이래? 몇 년 꿇은 복학생 같아.”


“그래? 나는 좋은데.”


“이상한 놈.”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방학 동안만큼은, 내 머리는 내 것이었으니까.


8월 중순, 가족 여행을 갔다. 동해 바닷가. 파도를 맞으며 놀다가 문득 깨달았다. 바닷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이 너무 좋다는 것을. 짧은 머리였다면 느낄 수 없었을 그 감각.


“민수야, 사진 찍자.”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일부러 머리를 흔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야 가만히 있어. 머리 정리하고.”


“이게 좋은데요.”


“어휴, 계집애도 아니고...”


찰칵. 사진이 찍혔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을 보니,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 속 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8월 25일. 개학 일주일 전.


“자, 이제 머리 자르러 가자.”


엄마의 선언. 나는 마지막 저항을 했다.


“며칠만 더...”


“안 돼. 개학하고 잘랐다가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해?”


결국 다시 장미 미용실. 미용사 아줌마는 내 머리를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게 뭐야. 완전 덥수룩하네. 스포츠머리로?”


“네...”


가위질이 시작됐다. 서걱서걱. 방학 동안 자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나의 여름방학이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


“시원하지?”


미용사 아줌마의 천편일률적인 질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 속엔 다시 '중학생 남자 1번'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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