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 3번 출구

by 부소유

동인천역 3번 출구를 나서자 어딘가 낯선 거리가 펼쳐졌다. 2024년 10월 30일 오후 세 시. 스물다섯 번째다.


무의식 중에 발걸음이 멈춘 곳은 새로 생긴 카페 앞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청년들이 노트북을 보며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곳에 중국집이 있었다. 진우가 짬뽕 국물을 마시다 사레들려 기침하던 곳. 지금은 흔적도 없다.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바람에 꺼졌다. 다시 불을 붙였다. 연기가 폐로 들어왔다. 1999년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진우도 그랬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어른인 척했다.


인현동 방향으로 걸었다. 골목은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를 반복했다. 간판들이 바뀌었다. '동인천 맥주창고'가 있던 자리에 피부과가 들어섰다. '황금어장'은 부동산이 되었다. 그래도 골목의 뼈대는 남아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맞은편에 동인천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싸구려 담요 재질의 녹색 재킷에 회색 바지. 어딘지 모르게 디자인이 조금 바뀌었다. 아이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동인천고등학교는 이름이 동인천고등학교이지만 동인천에 있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에 동인천에 있다가 만수동으로 옮긴 지 오래되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마음먹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 어디 가는 길일까. 우리도 그랬다. 학원 간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추모공간은 인현동 깊숙한 곳에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 지도를 켰다. '인현동 화재 참사 추모공간'이 검색됐다. 도보 12분. 화면을 끄고 기억에 의존해 걸었다. 이 길은 안다. 25년 전에도 걸었던 길이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피어올라 코를 자극하는 오물냄새. 여기부터는 재개발이 더뎠다.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였다. 벽돌 사이로 시멘트가 흘러나온 흔적, 녹슨 간판, 뿌리째 뽑힌 전선들. 시간이 멈춘 듯했다.


호프집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없었다.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건물 앞 주차장에는 아스팔트 위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주차 공간 여섯 개. 그 아래 지하가 있었다. 입구는 왼쪽이었나, 오른쪽이었나. 기억이 흐릿했다.


“여기 참사 현장 맞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노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네.”


“추모공간 찾으세요? 저도 가는 길인데.”


주차장 옆 건물을 돌아 작은 공터가 나왔다. 거기 있었다. 검은 대리석 비석. 그 앞에 화분들. 국화가 대부분이었다. 누군가 막 다녀간 듯 향냄새가 났다.


“매년 오세요?”


그녀가 물었다.


“...”


“저는 올해 처음이에요. 딸 친구가... 그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비석에 다가갔다. 이름들이 빼곡했다. 가나다순이었다. ㅂ을 찾았다.


박진우.


세 글자가 차가운 돌 위에 새겨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매년 그랬다. 차가운 감촉. 이것이 진우가 남긴 전부다. 이름 석 자.


주머니에서 학생증을 꺼냈다. 1999년 3월 2일 발급. 동인천고등학교 2학년 3반. 사진 속 내 얼굴이 웃고 있었다. 진우 학생증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날 지갑과 함께 탔을지도 모른다.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냈다. 이번엔 두 개를 꺼내 하나는 화분 사이에 놓았다. 진우는 어떤 담배를 좋아했을까, 연초를 좋아했을까. 전담을 좋아했을까. 물어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바람이 불었다. 10월 끝의 바람은 차가웠다. 1999년 그날도 이런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진우는 아디다스, 나는 나이키. 그것도 기억난다. 쓸데없이 선명한 기억들.


휴대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받지 않았다. 여기서는 받지 않는다. 이곳은 1999년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삐삐만 있던 시절. 진우와 내가 열일곱이던 시절.


추모공간을 한 바퀴 돌았다. 작았다.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아니, 어쩌면 이 정도가 맞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비극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슬픔은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믿는다.


다시 박진우 앞에 섰다.


“가자.”


소리 내어 말했다. 혼잣말이 아니었다. 진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매년 하는 말이었다.


추모공간을 나왔다. 본격적인 기억의 시간. 그날 우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시간. 호프집까지. 계단 아래까지. 연기가 시작된 곳까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손에 학생증이 만져졌다. 모서리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1999년의 증거. 살아남은 자의 신분증.


동인천역 방향으로 걸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날도 이 시간쯤 출발했다. 진우네 집에서. 만 원짜리 세 장 들고. 아버지 지갑에서 조심스럽게 빼낸 돈. 한 장도 아니고 세 장이나. 그때는 그게 큰돈이었다.


모험의 시작은 언제나 사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