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여섯 시

by 부소유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학원에서 나온 시각은 오후 다섯 시 반이었다. 토요일 보충수업이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단과 학원. 2학년의 주말은 그렇게 흘러갔다.


“야, 가자.”


진우가 수학책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평소와 달랐다. 보통은 PC방에 가자고 했다. 스타크래프트에 미쳐있던 시절이었다.


“어디로?”


“우리 집.”


학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진우네로 갔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20분 거리. 그날따라 진우가 말이 많았다. 형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는 얘기, 다음 주 중간고사 얘기, 좋아하는 여자애 얘기.


“근데 집에는 왜 가는건데?”


“보여줄 거 있어.”


진우네 아파트는 13층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진우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열쇠를 찾는 듯했다.


“부모님 안 계셔?”


“아빠는 회사, 엄마는 이모집.”


집에 들어가자 진우가 안방의 서랍을 뒤졌다. 검은색 지갑을 꺼냈다. 아버지 지갑이었다.


“야, 뭐 하냐?”


“잠깐만.”


진우가 지갑을 열었다. 만 원짜리가 빼곡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을 뽑았다. 손이 떨렸다.


“미쳤냐?”


“형이 준 거야. 휴가비로.”


거짓말이었다.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집어넣어.“


“오늘 하루만. 월요일에 형한테 빌려서 원래대로 넣을게.”


진우는 지갑을 제자리에 놓고 교복을 벗으며 말했다.


“인현동 가보자.”


“거기 왜?”


“호프집. 형이 거기 재밌다고.”


옷장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꺼냈다. 나이키 바람막이도 꺼냈다. 까만색. 형이 입던 것 같았다.


“우리가 그런데 들어갈 수 있어?”


“그냥 들어가면 된대.”


나도 교복을 벗었다. 진우네 옷을 빌려 입었다. 아디다스 바람막이. 줄무늬가 있는. 거울을 봤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집을 나설 때 여섯 시였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10월 끝의 차가운 바람. 바람막이 지퍼를 목까지 올렸다.


“진짜 괜찮겠냐?”


버스 정류장에서 물었다.


“그럼. 형들도 고2 때 갔대.”


버스가 왔다. 토요일 저녁이라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맨 뒤에 섰다.


집에는 거짓말을 했다. 영화를 본다고 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늦지 말라고 했다. 삐삐를 확인하라고도 했다.


동인천역에서 내렸다. 토요일 저녁의 역전은 북적였다. 대학생들, 직장인들, 연인들. 우리도 그중 하나인 척했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이쪽이야.”


진우가 앞서 걸었다. 형에게 들은 대로인 듯했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다시 더 좁은 골목으로. 네온사인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맥주' '생맥주' '호프'라는 글자들.


“여기다.”


간판도 제대로 없는 건물 앞에 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빨간색 화살표가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라이브 호프'라고 쓰여 있었다.


진우가 나를 봤다. 나도 진우를 봤다.


“들어가자.”


진우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따라갔다. 한 계단, 두 계단. 지하로 내려갈수록 음악 소리가 커졌다. 담배 냄새도 진해졌다.


문을 열었다. 연기가 확 쏟아졌다. 시끄러운 음악. 웃음소리.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


우리의 토요일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이전 01화동인천역 3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