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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난 100년…

by 부소유

유시민 작가가 선정한 전세계 20세기의 굵직했던 11대 사건들을 다룬 책이다. 무려 1988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30년이 훌쩍 넘어 다시 출간된 책이다. 같은 이름의 책으로 재출간했지만 단순한 개정판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다시 집필했다고 하여 ‘개정증보판’이라고한다.


이 책의 구성은 드레퓌스 사건,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 대공황, 대장정, 히틀러, 팔레스타인, 베트남, 맬컴 엑스, 핵무기,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에필로그의 총 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장별로 책 한 권이 나올법한 굵직한 주제들이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이나 인물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라예보, 맬컴 엑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대공황, 대장정은 아주 얕게 알고 있었다. 그나마 팔레스타인, 베트남, 러시아의 역사는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이 있어서 조금 알고 있었고, 히틀러, 핵무기는 거기서 조금 더 알고 있다가 더더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었다고 어디서 아는 체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주제들이 가득하다. 그냥 배경지식으로 알고 더 여러권의 참고문헌을 찾아보거나 나중에 더 생각해 보고 되돌아봐야 할 역사들이다.


아쉬운 점으로 유시민 작가의 책이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독성이 좋지는 않았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상당히 많은 압축된 정보들이 쏟아져서 읽으며 머릿속에 담기가 어려웠다. 논픽션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묘사나 비유 없이 다량의 정보가 갑자기 쏟아져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고 다루고 있는 사건들이 결코 가볍지 않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게도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가 제일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난 과거 보다는 미래를 고민하고 싶은가보다. 그래도 각 장별로 마지막쯤에 각 사건을 정리해 주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정 이해하기 어렵거나 재독을 한다면 다음에는 거기만 읽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일독은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서문에도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이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거꾸로의 의미는 어떤 사건의 결과를 놓고 보지 않고 그것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특히 첫 장의 드레퓌스 사건의 결과만 보면 어떤 군인이 재심을 받아서 억울함을 해소했다는 것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재심을 받기 전까지 그와 그의 가족의 억울한 생활, 그리고 고지식했던 정부와 군, 그리고 법률적 정치적 문제와 지식인들의 반발 등 수많은 쟁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최근에 대공황이 배경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라는 장편소설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대공황이라는 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아주 살벌하게 묘사되어 있는 소설이었다. 지금도 답답한 것은 그 대공황의 명확한 원인을 어떤 전문가도 명쾌하게 분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난 요즘 조금 걱정된다. 대공황 또는 그 비슷한 사건이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반복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그 걱정에 요즘 미국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대공황이라는 끔찍했던 시기, 특히 두 번째 챕터의 남아도는 오렌지와 굶주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 당시의 참혹했을 것 같았던 환경에 가슴이 답답하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 어떤 정치인이나 경제학자, 자본가들이 이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특히 이 책의 129페이지에 언급되어 있는바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을 생각하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더 빠르게 어떤 공황 상태로 자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의 다른 출판물이나 행보를 보면 그는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전, 지구의 역사는 46억 년, 우주는 137억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이와 같은 100년의 역사는 문명의 발전과 상관없이 계속 반복된다고 본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건들을 깊게 살펴보면 다른 사건들이 예측되거나 상황이 공감되는 경향도 있다. 그것 때문에라도 본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인 사건은 최소한 알아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각 장별 괜찮았던 문장을 필사하면 다음과 같다. 흥미롭게도 모든 문장은 각 장별 마지막 무렵에서 발췌했다.




1. 드레퓌스

-.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언론이 크게 꾸준히 보도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 됐다.


2. 사라예보

-.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 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랑케의 말은 진리가 아니어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3. 러시아

-. 사회혁명으로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본성이 호모사피엔스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몰랐던 듯하다.


4. 대공황

-.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임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5. 대장정

-. 중국혁명과 볼셰비키혁명은 닮은 점이 많다. 구체제가 썩은 문짝처럼 쓰러진 것, 패전이 사회혁명을 부추겼다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레닌…마오쩌둥…


6. 히틀러

-. 다시 말하지만 나치즘은 ‘모든 악의 연대’였다.


7. 팔레스타인

-. 모든 것은 지나간다. 20세기의 대사건들도 지나갔다.

-. 그들은 자기들이 유럽에서 수천 년 동안 당했던 박해와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고스란히 떠안겼다.


8. 베트남

-. 벌어들인 외화로 산업화를 성공시켰으니 잘된 일이라고 한다면, 정당화할 수 없는 침략전쟁은 없을 것이다.


9. 맬컴 엑스

-. 그는 말했다.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서로 도우며 경제적 능력을 기르자. 백인에게 생계를 의존하거나 구걸하지 말자.’


10. 핵무기

-. 인류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핵의 위험성을 직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한다면, 호모사피엔스는 비관론자들의 예상보다는 오래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독일과 소련

-.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를 자기 구상대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20세기의 문을 닫음으로써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12. 미래

-.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머지않아 끝난다. 논리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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