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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by 부소유
1950년대에 출간된 미국 현대문학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D. 샐린저)의 작품이다. 미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린 소설책이라고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원제 The Catcher in the Rye.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책 제목.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본 귀에 익은 아주 익숙한 제목의 소설책이다. 아마도 청소년 시절 필독서에서도 봤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모든 가정집에 한 권씩 있다고 하는.. 게다가 국내 대부분의 도서관에 있을 법한 책. 뒤늦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본 이 책은 일단 두껍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대체 무슨 내용일까 너무 궁금한 마음에 첫 페이지를 펼쳤다. 책은 아주 술술 읽었다. 보통의 서술 방식인 문어체가 아니고 구어체라서 상당히 어색했지만 그것이 익숙해지고 나서는 빠르고 편하게 읽기 좋았다. 다 읽고 나서 주인공 ‘홀든’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 ‘빌어먹을’, ‘젠장’이 계속 마음속에 맴돌 정도로 문체에 중독성이 있었다. 게다가 출간된 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도 넘은 책인데 그렇게 오래된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본인의 썰을 풀면서 시작된다. 10대 중반의 방황하는 시기에 유독 예민했던 홀든은 중산층 부모님 밑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며 형과 여동생까지 있는 집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물론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만 홀든은 불만이 많은 소년이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친구 관계에 대한 불만, 학교와 사회에 대한 불만,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그것이 기숙사에서 친구들에게 갖고 있는 불만으로 시작해서, 학교에서 시험 점수까지 좋지 않게 받아서 정이 떨어진 학교를 떠난다. 이후 길거리의 술집, 호텔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불만을 해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소가 될 리는 없다. 결국 다시 집으로 몰래 돌아가 여동생을 만나고 여동생으로부터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 읽고 보면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주인공 홀든 입장에서는 엄청난 갈등으로 가득한 이야기다. 먼저 그의 이야기는 학교의 ‘스펜서’ 선생에게 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스펜서 선생은 시험을 망친 학생 ‘홀든’을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그를 통제하기 위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홀든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하다가 학교를 나가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지금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기숙사 생활에서는 주로 함께 생활하는 그의 친구 ‘스트래들레이터’, ‘애클리’의 성격과 외형을 묘사하면서 그의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아마도 홀든의 첫사랑으로 보이는 ‘제인’과 만나는 스트래들레이터가 다녀와서 홀든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나까지 약이 오를 정도의 기분을 느꼈다. 나 역시 학창 시절 극도로 예민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홀든 못지않게 예민했던 경험으로 어떤 친구의 몸에서 나는 먼지, 말할 때 나오는 침 같은 분비물에 상당히 불편함을 느꼈고, 여드름이 많은 친구를 보기 불편해하는 등 어딘가 흠집이 있는 친구를 멀리하려고 했다. 지금도 주변에 누군가 쓸데없는 소음을 일으키거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상당히 불편한 것을 보면 내 예민한 성격이 타고난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예민한 것이 나일까 싶고, 그것이 정상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소설에서 그 상황들을 탁월하게 잡고 묘사해 줘서 실감 나게 읽었다.


결국 홀든은 학교와 기숙사를 나와서 길거리를 전전한다. 만나는 사람들과 아무 말이나 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아무 말을 계속한다. 홀든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술집에 갔지만 나이가 확인되지 않아 술을 마시지 못했고, 그냥 모르는 여자와 어울려 춤을 추다가 우울감을 느끼며 불만을 갖고 나온다.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을 전전하며 포주를 통해 창녀를 불러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옛 친구 ‘샐리’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데이트를 한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찾아서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밤이 늦으면 또 전화기를 잡아 찌질하게 헤어진 ‘샐리’에게 또 전화를 한다. 그 와중에도 홀든은 계속 그의 첫사랑 ‘제인’과 그의 여동생 ‘피비’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순정파 같기도 하다.


그는 결국 여동생 피비를 보기 위해 몰래 집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부모님이 없어서 피비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온 부모님 몰래 다시 집을 나간다. 예전 학교 선생님이었던 ‘안톨리니’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의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선생님이 잠자는 홀든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홀든은 그것에 놀라서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그는 다시 여동생 피비가 다니는 학교에 몰래 찾아가 피비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청소년 홀든이 3일간 겪은 짧지만 밀도 높은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청년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 우리 청소년, 중장년, 혹은 노년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홀든은 중년인 내가 될 수도 있고 아침에 바쁘게 등굣길을 걷는 중학생, 고등학생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어느 정도는 그런 우리네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모습이 거울처럼 홀든에게서 보여서 놀랐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느껴서 70년간 수천만 부의 책이 판매된 것이 아닐까. 소설은 마치 친구가 그의 지난한 이야기를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고 다채롭게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으로 독자를 매료시켜서 누구든 공감하게 만든다. 홀든이 겪은 3일간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찌질한 소년의 등신 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틀에 박힌 관념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선한 마음, 끊임없이 연결하려고 애쓰는 모습, 관심받고 싶어 하는 마음 등 홀든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홀든의 빨간 모자, 큰 키, 실속이 없어 보이는 모습 등은 당시 미국 사회를 풍자한 것 같기도 해서 놀랍기도 하다. 게다가 그 안에서 순수성을 찾고자 하는 홀든의 노력은 수녀님, 피비, 제인, 박물관의 조형물 등 수많은 상징물을 통해 느껴졌다. 소설 내내 상징어를 배치한 작가의 천재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나중에 만나는 안톨리니 선생님의 스킨십으로 홀든이 느끼는 순수에 대한 배신감은 절대 과장된 상황이 아니다. 그마만큼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이 홀든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다. 동성애 코드, 성매매, 비속어 등이 반복되어 읽기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불편하기 때문이 소설이 그것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본다. 나도 홀든처럼 ‘빌어먹을’, ‘젠장’을 반복해서 말하며, 벽에 낙서되어 있는 욕설 ‘FUXX’를 지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살고 싶어 하는 홀든을 떠올리며 나도 제대로 살고 싶어 몸부침 치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혹은 아직도 나는 제대로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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