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두 번째 외침이 들렸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당구대에서 큐대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공이 굴러가다 멈췄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누군가 술김에 하는 소리려니 했다. 그런데 냄새가 났다. 타는 냄새. 플라스틱 타는 냄새였다.
“진우야.”
진우를 불렀다. 진우도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벌름거렸다.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캄캄했다. 비상등만 희미하게 빛났다. 초록색 불빛. 출구를 가리키는 화살표.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의자 끄는 소리. 맥주잔 깨지는 소리.
“나가자.”
진우가 내 팔을 잡았다.
출구는 하나였다. 우리가 들어온 그 문. 사람들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처음엔 질서가 있었다. 줄을 서듯 천천히 걸었다.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상등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천장을 타고 퍼졌다.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빨리!”
누군가 소리쳤다.
그때부터였다. 질서가 무너졌다. 뛰기 시작했다. 밀기 시작했다.
철문 앞에 병목이 생겼다. 한 번에 두세 명밖에 나갈 수 없었다. 뒤에서 계속 밀렸다.
“밀지 마!”
“살려줘!”
비명이 섞였다. 여자들 울음소리. 욕설.
연기가 짙어졌다. 숨이 막혔다. 기침이 나왔다. 눈물이 났다. 앞이 안 보였다.
“진우야!”
진우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팔을 놓쳤다.
손을 뻗어 더듬었다. 사람들 몸만 닿았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다 똑같았다.
무릎을 꿇었다. 연기는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났다. 아래쪽 공기를 마셨다. 조금 나았다.
기어갔다. 바닥에 깨진 유리가 있었다. 손바닥이 베였다. 아프지 않았다. 아플 겨를이 없었다.
벽을 더듬었다. 벽을 따라가면 출구가 나온다고 했다. 이것도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다.
계단이 만져졌다. 올라갔다. 한 계단. 두 계단. 누군가 넘어져 있었다. 밟고 올라갔다. 미안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복도였다. 여기도 연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아래보다는 나았다. 일어섰다. 뛰었다.
또 계단이 나왔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뛰어 올라갔다. 두 계단씩. 세 계단씩.
문이 보였다. 밖이었다. 밀고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살았다고 생각했다. 무릎이 풀렸다. 주저앉았다.
“헉, 헉.”
숨을 몰아쉬었다. 기침이 터졌다. 까만 가래가 나왔다.
주위를 봤다.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기침하고 있었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진우를 찾았다. 없었다.
“진우야!”
소리쳤다. 목이 쉬어있었다.
일어섰다. 비틀거렸다. 다시 입구로 갔다.
연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까만 연기. 들어갈 수 없었다.
“진우야!”
또 불렀다.
누군가 나왔다. 얼굴이 까맸다. 진우가 아니었다.
또 누군가 나왔다. 여자였다. 쓰러졌다.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가까워졌다.
“학생, 비켜.”
소방관이 나를 밀었다. 산소통을 맨 소방관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기 서 있었다. 입구 앞에. 진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들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하나. 둘. 셋.
계속 나왔다.
“진우야.”
또 불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이 왔다. 구경꾼들을 밀어냈다. 나도 밀려났다.
“학생, 병원 가봐.”
누군가 말했다.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진우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진우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들것만 계속 나왔다.
하얀 천에 덮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