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의 시간들

by 부소유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7명. 한 번에 57명이 죽었다. 병원마다 장례식장마다 상주들이 있었다. 진우네는 길병원이었다. 3층 302호. 문 앞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 박진우’. 고인이 되었다. 열일곱에.


국화꽃 냄새가 진동했다. 하얀 꽃들 사이로 영정사진이 보였다. 교복 입은 진우. 웃고 있었다. 언제 찍은 사진이지.


1학년 때인가. 진우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아직 못 왔다고 했다. 토요일 밤에 갑자기 일본 출장을 갔다고.


“아줌마...”


무릎을 꿇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민수야...”


진우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진우가... 진우가 너랑 같이 있었구나.”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네가 뭘...”


진우 어머니가 울었다. 나도 울었다. 뒤에 줄이 길었다. 일어났다. 향을 피웠다. 절을 했다. 두 번.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동인천고 아이들이 있었다. 다들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야, 진짜 진우야?”


성민이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어떻게...”


반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갔다. 나는 복도 끝 흡연실로 갔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냥 거기 앉아 있었다.


월요일. 학교에 갔다. 교문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故 박진우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교실. 3반. 진우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창가 세 번째 줄. 책상 위에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다들 앉아.”


담임이 들어왔다. 우리를 둘러봤다.


“진우 장례는 내일 오전이다. 다들 교복 입고 와라.”


그게 다였다. 수업이 시작됐다. 평소와 같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점심시간. 옥상으로 올라갔다. 혼자였다.


“야.”


뒤에서 소리가 났다. 성민이었다.


“괜찮아?”


“응.”


“진우랑 같이 있었다며. 호프집에.”


“응.”


“왜 갔어?”


대답하지 않았다. 왜 갔는지. 그냥 가고 싶어서 갔다. 열일곱 살이니까. 호기심이 있었으니까.


발인날. 비가 왔다. 가을비치고는 굵었다. 반 아이들이 다 왔다. 선생님들도 왔다. 운구가 시작됐다.


“학교까지만 가자.”


담임이 말했다. 화장장까지는 가족만 간다고 했다. 영구차가 학교 앞에 멈췄다. 우리는 거기서 내렸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빗속으로 사라졌다. 교실로 돌아왔다. 진우 책상의 꽃을 치웠다. 담임이 시켰다.


시간이 흘렀다. 기말고사를 봤다. 겨울방학이 왔다. 3학년이 됐다. 반이 바뀌었다. 진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줄었다. 가끔 누군가 말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래서 더 안 했다. 수능을 봤다. 대학에 갔다. 서울로 갔다. 인천을 떠났다. 군대를 갔다. 제대했다. 취업했다. 결혼했다. 인현동에는 가지 않았다. 한 번도.


10주기 때 연락이 왔다. 진우 어머니였다. 추모 행사를 한다고. 가겠다고 했다. 안 갔다. 20주기 때도 연락이 왔다. 이번엔 갔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진우 부모님. 유족 몇몇. 그게 다였다. 그리고 25주기. 오늘. 다시 왔다. 혼자 왔다. 진우 부모님은 안 보였다. 돌아가셨는지, 오지 않으신 건지. 추모공간은 작았다. 도시는 빠르게 잊는다. 25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 있다. 매년 10월 30일. 아직도 열일곱 인 진우를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