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by 부소유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회사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야, 뉴스 봐.”


동료가 텔레비전을 켰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전남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처음엔 그냥 사고려니 했다. 배가 기울어진 화면이 나왔다. 꽤 큰 배였다.


“수학여행 가던 애들 이래.”


누군가 말했다. 수학여행. 그 단어에 시선이 고정됐다.


“전원 구조됐대?”


“아직 모른대. 배 안에 있대.”


배는 계속 기울고 있었다. 45도. 60도. 90도.


“왜 안 나와?”


“가만히 있으래.”


가만히 있으라. 그 말이 귀에 박혔다. 휴게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텔레비전을 봤다. 말이 없었다. 오후 내내 뉴스를 봤다.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탑승’


단원고. 안산. 거기도 인천에서 멀지 않다. 학생들이 찍은 영상이 나왔다. 배 안. 기울어진 복도. 웃고 있는 아이들.


“괜찮아. 곧 구조온대.”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완전히 뒤집혔다. 선체만 보였다. 집에 와서도 뉴스를 봤다. 채널을 돌려도 다 같은 뉴스였다.


‘학생 실종... 구조 작업 난항’


아내가 들어왔다.


“왜 안 자?”


“그냥.”


“내일 출근해야지.”


텔레비전을 껐다. 잠이 안 왔다. 새벽에 다시 켰다. 상황은 똑같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사망자 수 증가... 실종자 수백 명’


며칠이 지났다. 시신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이름이 공개됐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 다 그 나이였다. 체육관 영상이 나왔다. 체육관.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1999년 그날 밤이 떠올랐다. 인천 체육관. 하얀 천들. 번호표. 아내가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거짓말이었다. 아팠다. 가슴이 아팠다. 뉴스를 끄고 싶었다. 끌 수 없었다. 생존자 인터뷰가 나왔다. 살아 나온 학생이었다.


“친구들이... 친구들이 못 나왔어요.”


울먹이는 목소리. 열일곱 살의 목소리. 나도 그랬다. 15년 전. 똑같은 열일곱.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손이 떨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았다.


“김민수 씨죠?”


“네.”


“저 박진우 어머니예요.”


진우 어머니였다. 15년 만이었다.


“뉴스 보고 계시죠?”


“네.”


“이 아이들도... 우리 진우처럼...”


말이 끊겼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너무 힘드시죠. 그 부모님들...”


나도 울었다. 베란다에서. 혼자. 세월호 희생자가 304명이라고 했다. 그중 학생이 250명. 250명의 진우. 텔레비전에서 노란 리본이 나왔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억. 그래. 기억해야 한다.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잊었다. 1999년을 잊었다. 그래서 2014년이 왔다. 또 잊을까. 또 반복될까. 무서웠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진우가 나왔다. 열일곱 살 진우.


“야, 물 차다.”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잠에서 깼다. 땀에 젖어 있었다. 4월인데 땀이 났다. 창밖을 봤다. 새벽이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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