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한 작품
놀랍게도 성인이 되어서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인생 후반부에 써낸 희곡 <오셀로>다. 최종철 번역,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다.
우선 두께가 얇아서 좋았다. 민음사 출판의 이방인 못지않은 혹은 그 보다 조금 더 적은 해설 분량마저 빼면 얇은 두께의 작품이다. 이방인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해설이 없는 판본도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열자마자 역자 서문이 있는데 서문의 첫 단락을 읽자마자 바로 기분이 안 좋아졌다. 바로 이 작품의 스포가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이 작품을 모르고 봤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노출되어 있다. 작품의 서사에 관계없이 그저 희곡 작품 그 자체를 즐긴다면 상관없겠지만 서사의 궁금증을 갖고 볼 독자라면 서문을 과감하게 뛰어넘을 것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는 이미 늦었고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다. 물론 서사의 다른 관점에서 즐기기를 바라는 역자의 생각은 알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런 안내가 오히려 불편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본 역자 최종철 교수는 연세대 명예교수로 작년에 원전의 내용을 국내 최초 운문을 시도해서 전작 완간을 했다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가 민음사 판본의 <햄릿>, <리어왕>, <맥베스>를 모두 번역했다고 하니 무조건 서문을 건너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감히 흉내도 못 내는 그의 운문을 적용한 탁월한 번역은 무척 좋았다.
어쨌든 본 작품 <오셀로>는 이제는 희곡이라는 조금 특수한 장르 문학에다가 고전 중의 고전으로 조금 우려를 갖고 읽었으나 아주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흥미진진한 굉장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이제 나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다는 호기로운 자부심도 생기는 동시에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 만으로 진정한 문학도가 된 듯한 쓸데없는 자아도취에 빠져들기 딱 좋았다. 놀랍게도 최근에는 우연히 마주친 불문과 교수님께서 <오셀로>를 읽으시냐고 관심 있게 물어보셨을 때에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영문과 교수가 되어 있는 듯한 기분으로 ‘네 그렇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본 작품의 소개에 앞서 다른 서평 혹은 독후감과 다르게 뻘글의 분량이 이토록 길게 된 이유는 작품에 대해 뭐라고 감히 소감을 남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늦게 읽어서 그렇지 원체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서사의 구조가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짧은 분량에다가 대사도 섬세하고 유머러스할 뿐 아니라 고대 신화, 종교, 역사, 철학적인 상징요소들이 많아서 배경지식이 많았다면 진짜 흠뻑 빠지기 좋을 탁월한 작품이다. 따라서 석학들이 잡아서 논문을 쓰기 딱 좋은 작품이겠다 싶었다. 물론 그냥 가볍게 읽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나머지 비극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주인공 오셀로가 그의 부하 이야고의 속셈에 제대로 걸려들어서 그의 다른 부하인 카시오, 그리고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와 관계가 어려워지는 이야기다. 그 이외에 몇 명의 등장인물이 더 나오지만 오셀로, 이야고, 카시오, 데스데모나 이 4인의 이야기가 희곡의 중심을 이룬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흥미롭지만 ‘이야고’의 활약이 아주 놀랍다. 요즘 말로는 아주 매력적인 빌런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이야고’의 활약이 웃기기도 하고 궁금하고 기가 차서 계속 이 작품을 읽을 수도 있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스데모나’와 때로는 용맹하지만 바보 같은 무어인 주인공 ‘오셀로’ 또한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야고’ 앞에서 이들은 그저 정말 눈치 없고 맹목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전형을 아주 섬세하고 탁월한 시야로 해석해서 보여준다.
특히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둘이 서로 대화가 엇나가며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은 현대의 어떤 연인에게 적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리얼한 대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사랑하는 감정과 혼재된 의심, 시기, 질투, 배신의 감정이 아주 극적으로 나타난 탁월한 희곡 작품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정말 내 생각일까.
내가 결정하는 것은 진짜 내가 결정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