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르셀 에메의 단편. 원고지 104매, A4용지 13매 분량이다. 일기 형태의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2. 최근에 읽고 있는 손원평 작가의 장편 <젊음의 나라>와 같은 형식이다. 손원평 작가는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일기 형태로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SF라는 장르도 겹치고 근미래적인 배경도 비슷해서 아마도 본 소설을 먼저 읽고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일기 형식의 소설이 익숙한 상태로 읽기 시작해서 어색하지는 않았다.
전체 세계관을 생각한 발상은 흥미롭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존권 카드라는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촘촘하게 사건을 연결하는 부분은 탁월했지만 조금 예상되는 이야기의 흐름, 혹은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서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생각하기 쉽지 않은 발상으로 시작해서 시대적인 모순을 은연중에 풍자하는 서술기법이 탁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마르셀 에메의 더 유명한 단편 소설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우리는 한정된 시간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정된 삶 안에서 각종 한계가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동안 더 나은 글을 읽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줄거리 :
새로운 배급제 소문이 돈다. 비생산적인 소비자를 관리하기 위해 생존 시간 카드가 적용되는 것이다. 화자는 작가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에 크게 분노한다. 좀 더 생존하기 위해 도의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한자리를 부탁했지만 한발 늦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활에 불편이 생겼고 그에 따른 불만도 많았다. 어렵게 받은 배급표 한 장으로는 24시간 생존 가능하다. 화자는 관청에 간곡한 사정을 보내서 24시간을 추가로 받아냈다. 화자는 이제 짧게 주어진 시간을 바쁘게 알차게 보내려고 애쓴다. 로캉통이 비존재가 되어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화자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 달을 온전히 사는 페뤼크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능력자로 봤다. 뒤몽 부부의 부부 싸움을 보며 모순을 느낀다. 일시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는 로캉통의 아내 뤼세트 옆을 지켜준다. 곧 다가오는 화자의 일시적인 죽음 차례에 불안을 느낀다. 그렇게 3월 16일에 끝난 일기는 4월 1일에 다시 시작된다.
시간, 계절, 환경의 변화에 어색함을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로캉통이 다시 사라졌는데 뤼세트는 즐거워하는 모습이 모순이다. 화자는 어떤 가난한 노동자를 돕기 위해 돈을 전달했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배급표 한 장을 받았다. 친구 말레프루아는 생존법이 만들어낸 좋은 효과를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한 더러운 모임도 생겨나고 있었다. 화자는 4월 16일 다시 죽음을 맞이하고 5월 1일에 돌아온다.
화자는 벌거숭이가 된 상태로 깨어나 놀란다. 생존법을 다르게 겪는 사람들끼리의 갈등이 생기고 있다. 말레프루아와도 점점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졌다.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이슈가 공론화되면서 화자와 같은 사람은 좀 더 살아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렇게 결국 배급표를 구입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화자는 글쓰기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당황스럽게도 일시적 죽음이 기차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벌거숭이가 되어 6월 초에 깨어났다. 넘치는 배급표로 인해서 한 달에 36일을 살았다는 사람을 만난다.
로캉통의 집에서 페뤼크가 다른 남자와 일시적 죽음을 겪었다가 로캉통과 셋이 한 침대에서 깨어나는 일도 결국에 벌어지고 있었다.
화자에게 배급표가 여러 장 생겼다. 그럼에도 36일을 살았다는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로캉통은 배급표를 구매해서 앙갚음을 하려고 했지만 아내가 떠나고 남은 그의 처량한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날 로캉통이 실제로 죽음을 맞이했다.
6월 32일이 되자 화자는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고 있던 날짜가 계속 여기저기서 언급된다. 답답하게도 말레프루아와는 이에 관한 대화가 안된다. 화자는 알리자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결혼도 약속한다. 그녀는 여행을 다녀와서 6월 60일 전에 만나자고 했지만 화자의 배급표는 끝나버린다.
7월 1일에 깨어나 사람들과 31일 이후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엘리자도 화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부자는 월말과 월초 사이에 1967일, 즉 5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철학자를 만났지만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고, 엘리자를 만났지만 그녀와 잘 되리라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화자는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어 한다.
7월 6일에 결국 생존 시간 카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화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4. 인물 분석 :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화자는 초반에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부조리한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관심에서 모순으로, 모순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다시 희망으로 바뀌는 화자의 생각 변화가 흥미롭다. 게다가 그 희망을 글쓰기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이런 근미래 사회에서도 결국 아날로그의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은 조지오웰 <1984>의 윈스턴 스미스와도 조금 중첩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주변 인물 중 화자의 친구 말레프루아는 도의회 의원이면서 사회 지도층에 속해 있어서 화자를 적극 도와줄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자기중심적 회피형 인물이라서 화자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고 게다가 마지막에는 화자가 사랑하는 여성까지 빼앗아가는 듯한 묘사까지 되어 있어서 적당히 어디에도 있을 법한 반 주인공이라고 보인다.
노인으로 나오는 로캉통과 그의 젊은 아내 뤼세트의 이야기도 꾸준하게 서술되며 그들 부부 생활의 모순과 의구심을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카데미 회원으로 나오는 레뤼크는 한 달을 정상적으로 다 살고 있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전략적이고 음흉한 사람으로 나오는 게 흥미롭다. 그 외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각자 우리 주변에서 볼법한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있는 점도 탁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