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돌이의 한계
아빠 무슨 첫 경험이 그래요?
그렇다. 아빠의 첫 경험은 은밀하게 성공했다. 반도체가 뭔지도 모른 체 고등학생이 되었으며, 관심사는 시스템 반도체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메모리 반도체로 이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진정한 겜돌이가 되었다. 윈도우 환경의 게임도 계속 출시되었지만 콘솔 게임을 컴퓨터로 구동하는 에뮬레이션이라는 것에 빠졌다. 거의 중독되었다. 예를 들어 현재 아직도 잘 나가는 닌텐도 스위치나 이제는 구세대 게임기가 된 플레이스테이션 4에 나오는 모든 게임을 컴퓨터로 구동했다고 보면 된다. 현세대 게임기를 돌리는 것은 컴퓨터와 에뮬레이터의 한계가 있었다. 에뮬레이터는 당시 유행했던 오락실의 거의 모든 게임을 구동시켜 줬다. 에뮬레이터는 요즘 말로는 게임을 돌리는 앱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도 있다. MAME, 한국말로 ‘마메’라고 불렀다.
당시 난 마메로 구동 가능한 모든 수십, 수백 개의 게임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한 번씩 다 켜보는 것에 맛 들였다. 쉽게 말해서 게임을 찍먹으로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그 모든 게임을 무료로 구할 수 있었다.
앞에 썰이 길었다. 모든 게임이라고는 했지만 갑자기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내 컴퓨터의 RAM이 8Mb였는데 새롭게 풀린 특정 게임을 실행하려고 하니 경고 창이 떴다. 부족한 영어로 해석하기는 어려웠지만 16Mb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때 부족하다고 경고한 부품의 이름이 정확하게 DRAM이다. 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의 약자인데 풀네임이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는 이 DRAM이라는 녀석을 메모리 반도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 어떤 정보를 기억시켜 주는 반도체라고 볼 수 있다. DRAM이라는 이 녀석은 그것을 빠르게 잠깐씩 기억해 주는 단기기억 상실증을 갖고 있는 반도체다.
그저 당시의 난 너무나 게임을 실행하고 싶었고, RAM, 한국말로 ‘램’으로 알고 있었던 그것이 부족해서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 램을 구매하기 위해서 주변 컴덕후 친구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아본 결과 용산에 가야 했다. 90년대, 그 낭만의 시대를 이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도 없었던 시절이다. 비대면으로 물건을 구매하려면 그나마 홈쇼핑이 있었다. 홈쇼핑에 램이 올라올 일은 전혀 없었고 결론적으로 용산을 가야 했다.
무서운 형들이 가득한 용산 전자상가(나중에는 줄여서 용던이라고 부르는 그곳),
고등학생 혼자 그곳으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