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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용산이 뭐예요??

용팔.. 아니 그게 아니고.. 낭만이 있던 곳이지..

by 부소유

용산. 서울시 용산구. 지금은 서울의 핫플레이스다. 2000년 세기말, 용산이 현대화되기 이전에는 용산에 대한 괴담이 많았다. 용산역 굴다리에서 조폭을 만나서 맞고 현금을 빼앗긴 친구, 야동을 판매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보따리장수들, 불법 게임을 모아서 백업 CD로 판매하는 상인들, PC 부품을 구매하다가 눈탱이를 맞는 친구 등 다양한 괴담이 있었고 실제 당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용산은 어느덧 용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용산 던전의 약칭이다. 던전이라 부를 만큼 빌런도 많고, 함정도 많고, 찾고자 하는 아이템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어쨌든 램을 구하러 혼자 용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누가 봐도 아무것도 모르게 생긴 고등학생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용산역까지 이동했다.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그 거대한 역전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거대한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나도 모르게 어떤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구름다리 밖을 보니 용산이 어떤 곳인지 한눈에 보였다. 선인상가, 나진상가 등 PC 부품을 파는 곳과 저 멀리 두꺼비 상가와 같은 콘솔 게임기 관련 제품을 파는 상가건물이 크게 자리 잡고 여러 개의 동으로 복잡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난 아마도 터미널 상가라고 불렸던 본관 건물을 겨우 빠져나와서 용산역 주차장에서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때 수상한 사람들이 와서 뭐 구하는 게 있는지 물었고 그저 무서워서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눈길을 돌려서 선인 상가를 찾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찾아낸 선인상가, 그 거대한 공동 상가는 조금 과장하면 위엄 있어 보였다. 내부에 수십 개의 상가가 밀집해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과연 세기말 대한민국 최대의 전자 부품 상가라고 불릴만한 곳이었다. 이곳이 진정한 반도체 완제품이 천국이었다. 당시 램은 무조건 삼성 제품을 사라고 들어서 삼성 제품을 구하기 위해 상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 현대전자의 램만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곳에서 SEC라고 적혀있는 상표의 삼성 램을 보여줬다. 그것은 의심스럽게도 은박지에 씌워져 있었고 삼성이라는 마킹은 전혀 없이 그저 SEC라고만 적혀 있었다. 상인은 Samsung Elec. Corp. 의 약자라고 말하며 구매하지 않으면 한 대 때릴 기세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에 휩쓸려 8Mb 용량의 램을 겨우 구매했다.


그 당시로는 몇 주간의 용돈을 모아 몇 만 원이라는 큰돈을 사용해서 처음 PC의 부품을 직접 구매한 것이라서 걱정도 많았고 의심도 많았지만 어쨌든 용산 던전을 겨우 빠져나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PC 본체를 뜯어서 마더보드의 비어있는 램 슬롯에 인정사정없이 램을 꼽았다. 기존 8Mb 램 밑으로 8Mb의 램을 한 개 더 꼽아서 이제는 16Mb가 된 것이다. 이처럼 램이라는 부품은 두 개를 꼽아서 두 배로 늘려서 사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LG전자에서 잘 나가는 노트북 그램의 램 최저 사양이 무려 16Gb인데, 16Gb를 한 개 더 꼽아서 32Gb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Mb가 Mega 용량이고 Gb가 Giga 용량이며, 그 크기의 차이가 딱 1000배 차이가 나고 있으니, 세기말에 비해 지금 대충 잡아도 수천 배 이상의 기술이 발달했으니 기술 발전 속도가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겠다. 메모리 반도체인 램뿐만 아니라, 주 기억 장치, 보조기억 장치, 그 외에 그래픽카드, 시스템 반도체 모두가 발전을 거듭했으니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생각해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PC의 전원을 눌렀다. [삐!] PC의 본체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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