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젊음의 나라
도서관은 가을의 끝자락을 품고 있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숲길을 걸으며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이번이 손원평 작가의 마지막 북토크라는 사실이 묘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녀의 첫 번째 북토크와 마지막 북토크에 모두 참석하게 되었다. 첫 번째 북토크에 갔을 때는 책을 읽기 전이었기에 온전히 와닿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젊음의 나라>를 읽고 간 터라 작가의 모든 말이 깊이 공명했다. 손원평 작가는 지난 여름에 <젊음의 나라>를 출간한 후 많은 북토크를 진행했고,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독자 만남을 하지 않고 다시 쓰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것은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였고, 나는 그 마무리의 순간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한동안 사라졌다고 했다. 꿈 없는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보내며 방황하다가 우연히 영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영화 자체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내는 짜릿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협업이 주는 관계의 힘듦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혼자 쓸 수 있는 글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영화와 소설, 두 가지 창작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인도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즉 가장 원형에 가까운 창작 활동인 글쓰기를 택하겠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녀는 만약 핵전쟁 같은 게 나서 모든 문명의 이기가 사라진 세상이 온다면, 아이들을 불러앉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옛날의 시대에도 분명히 작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도 그런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야기의 힘은 대단해서 사회를 바꾸기도 하고 꿈을 키워주기도 한다는 말이 깊이 새겨졌다.
<젊음의 나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29살 여성 유나라가 겪은 1년간의 일기 형식 소설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완전히 현실이 된 사회에서, 나라는 낙원으로 여겨지는 시카모어 섬에 가고 싶어 하고, 어린 시절 빛이었던 이모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등급제 노인 복지시설에서 일하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5년 전 단편에서 이미 등급제 노인 복지시설을 다뤘을 때만 해도 미래의 느낌이었지만, 이번 소설을 낼 때는 더 이상 SF가 아니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미래가 너무 빠르게 와버려 이제는 현재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작가는 두 아이를 8년 터울로 키우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체감했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거의 50만 명이었던 출생아가 둘째 때는 25만 명으로 거의 절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8년이라는 기간 동안 계단식으로 떨어진 출생률, 그리고 그 아이들이 떠받치게 될 대한민국 사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가족은 중요한 테마다. <아몬드>도, 영화 <침입자>도, 그리고 <젊음의 나라>도 가족을 다룬다. 가족은 가장 따뜻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잔인한 존재이기도 하다. 뇌과학적으로도 나를 생각하는 영역과 가족을 생각하는 영역이 붙어 있어 분리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에게 날것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라는 존재만 남았을 때도 햇살 같은 웃음을 지어줄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했다. 나의 배경, 나의 지식, 나의 모든 것을 다 덮어내고 그냥 나라는 존재가 남았을 때에도 나를 향해 햇살 같은 웃음을 줄 수 있는 존재는 가족뿐이 아닐까. 그것이 꼭 혈연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젊음의 나라>의 나라도 그런 사람을 찾고 싶어 하고 또 찾는다. 어린 시절 이모가 그랬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나라는 “삶은 고통과 지루함으로 가득하고 통나무 배를 타고 표류하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헤어난 땅에 살면서도 주인일 수 없는 삶”,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작가 자신도 20대 후반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더 이상 어리지 않지만 아직 젊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지 않는 시기, 열 개의 열린 문이 실시간으로 닫히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얼어버렸던 시간. 동네 정자에 앉아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중요한 통찰을 전했다. 방황과 불안은 가능성이 있을 때 생긴다는 것. 불안정한 입자가 움직이듯, 청춘이 불안한 이유는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결론이 나버린 것은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다. 안정적인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방황 자체가 갈 수 있고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음의 증거라는 말은, 불안으로 얼어붙은 청춘들에게 위로이자 격려였다. 그래서 어른들이 지나고 나면 “넌 젊어서 다 할 수 있지 않느냐”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고, 청춘은 그 말을 들을 때 짜증이 나지만 사실 그것은 가능성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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