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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그리고 박상영

나의 외딴방을 생각하며

by 부소유

교보문고에서 열린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 30주년 개정판 출간 기념 북토크에 참석했다. 사회는 인기 소설가 박상영이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평일 퇴근 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자들로 가득 찼다. 나는 <외딴방>을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신경숙의 문체에 깊이 매료된 작가 지망생으로서 이 자리가 특별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박상영 작가는 자신이 신경숙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아주 오래전 창비 남산 사옥 근처 카페에서였으며, 당시 문학 리뷰 대회에서 2등을 수상한 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을 때 신경숙 작가가 “꿈을 꼭 이루라”고 격려해주었다는 일화를 공유했다. 그 꿈이 실현되어 이제 동료 작가로서 함께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문학이 어떻게 세대를 잇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외딴방>은 장편소설로 출간되기 전 단편으로 먼저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신경숙 작가의 첫 작품집 <겨울우화>의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된 이 작품은 원고지 70~80매 정도의 짧은 분량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단편을 쓸 당시에는 장편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작가에게는 마음속에서 발화되고 있는 씨앗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작품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말을 꺼내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단편 <외딴방>은 그런 침묵의 표현이었고, 동시에 지금은 내가 이 일을 할 수가 없구나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씨앗을 뿌리고 발아시키고 모내기를 해서 열매가 되기까지 여덟 번의 손길이 필요하듯, 작품도 그런 시간과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비유가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신경숙 작가는 데뷔 후 10년이 되던 시점에 자신에게 깊은 질문이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자기 일에 대한 진지한 점검의 시기이며, 이 질문을 통해 자기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시기에 마침 [문학동네]에서 연재 기회가 주어졌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연재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장을 쓰고 나서 2장을 쓸 수 없어 도망가기도 했고, 마감을 지키지 못해 펑크를 낸 적도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작가는 자신을 불량한 작가라고 표현하며 당시를 회상했는데, 그 솔직함이 오히려 작품을 쓰는 일의 고통과 진정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다.


<외딴방>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동창의 전화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받은 그 전화에서 친구는 “너는 우리를 잊었느냐”고 물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 어디에도 그 시절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신경숙 작가는 대학에 가고 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외딴방 시절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을 수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그 말은 “나는 우리를 잊었느냐”,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는 건 아닌가”라는 아픈 질문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그 말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것은 10년간의 침묵과 성숙, 그리고 여러 상황이 맞물려 가능해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답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했던 희재 언니, 은정이, 안양순, 하계순 같은 이들의 삶이 제대로 보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라는 것은 이 소설 속에 들어 있는 많은 이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외딴방>의 독특한 구성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은 원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의 시간, 미래의 시간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6년 전의 시간을 현재형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과거형으로 거슬러 내려가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두 시간이 가운데서 만나 하나가 되는 구조였다. 이를 통해 16살에서 19살까지의 시간과 1994년의 현재가 서로 교차하며,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부분에서 얼마전 읽었던 테트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그리고 그 단편 소설의 영화 버전인 <컨텍트>가 생각났다. 시간을 원으로 생각하고, 현재 과거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것은 외계 생물체 헵타포드의 언어였고, 주인공 루이스의 생각이었다.


박상영 작가는 이를 “인터스텔라 이전에 외딴방이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적절한 비유였다.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되어 만나고, 독자들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성을 일으키는 작품. 박상영 작가는 고등학교 때 대학별 고사를 치르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사촌 형 집에 얹혀 살며 이 책을 읽었고, 전혀 모르는 세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의 내면에 그대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때 느낀 외로움이 이해받는 기분, 이것이 문학이라면 인생을 바쳐도 멋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고백했다.


연재 당시의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1장이 발표되자 작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전 작품 세계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이 사람이 정말 산업화 현장에서 일하며 야간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작가는 그런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웠고, 작품보다 ‘신경숙’이라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작품에 대해 말하기를 삼가했고, 심지어 출간 후에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30년 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처음으로 작품을 천천히 읽어보았다는 고백도 의미심장했다. 고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과거의 절실했던 자신을 현재의 기준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대부분 그대로 두기로 했다. 틀린 것은 바로잡되, 그때의 절실함으로 쓴 문장들을 지금의 눈으로 바꾸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작품이 출간된 후 가장 기뻤던 반응은 당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찾아와 “나 누구야, 기억나?”라고 말해준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세월이 흐른 후에는 “우리 엄마가 누구누구예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등포여고 1회 졸업생이었던 작가에게는 그 아래 기수들이 있었고, 그들이 찾아와 준 것이다. 작품이 작가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이들의 증언이 되어준 것이다.


한경신 선생님이 연재 중 매번 긴 편지를 보내주며 소감과 당시 산업체 특별학급의 현실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이 연재되던 시기에 그 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망각되고 잊혀지기 쉬운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모두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의 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질문에서 작가는 한국 독자와 해외 독자의 반응이 비슷하다고 답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번역을 거쳐 읽은 작품인데도, 받는 질문이 똑같다는 것이다. 형식에 대한 질문, 과거를 현재형으로 쓴 이유, 등장인물들의 사회적 위치 등. 그리고 이것이 실화냐는 질문도 항상 받는다고 했다. 작가는 이건 소설이라고 답하지만, 누구나 이것이 자전적 소설임을 안다.


박상영 작가가 낭독한 구절은 모래펄을 걸으며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었다. “오늘 이 해변에 찍힌 나의 발자국은 외딴방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도망치듯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지 못했던 장소.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 오늘 여기에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물에서 더 이상 엄하지 않고 곧바로 열여섯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되돌아 나올 수도 있으리라.” 이 문장들을 들으며 시간의 원형적 구조가 얼마나 아름답고 슬프게 구현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신경숙 작가가 직접 낭독한 부분은 더욱 강렬했다. 희재 언니와 나가 옥상에서 서로에게 “그럼”이라고 대답해주는 게임. “나는 잠을 잘 잤어. 사흘 나흘 깨지 않고 잘 잤어.” “그럼.” “동생이 학교 졸업하고 대학 간 다음에 안 하겠지, 안 그래?” “그럼.” 현실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서로 긍정해주는 이 게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서로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가는 “답답하면 그런 게임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 게임의 이면에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짓눌려 있었다.


마지막 질문 시간에 한 독자가 1995년에 구입한 초판본과 신경숙 작가의 산문집 <내 마음의 빈집 한 채>에 받은 사인을 보여주었다. “꿈을 이루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은 후 자신도 책을 출간하겠다는 꿈을 품어왔고, 최근 출간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작가에게 지금의 꿈과 마음속 빈집이 무엇인지 물었다. 신경숙 작가는 인간에게는 마음 안에 빈집이라 할 수 있는 폐허가 존재하며, 아무도 그곳에 갈 수 없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 잠깐 다녀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금의 꿈은 연재 중인 <크리스티나의 사소하고 대담한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고 했다.


북토크가 끝나갈 무렵, 작가는 목소리가 자꾸 안으로 잦아드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은 같은 하나이며,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서로 아주 긴 시간 좋게 함께 있기를,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서로 다른 처지에서 함께 가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인사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이날 북토크를 통해 나는 <외딴방>이 단순히 1990년대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 성장과 연대, 망각과 증언에 대한 보편적 서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10년을 기다리며 씨앗을 키워낸 이야기, 침묵 속에서 익혀낸 문장들, 부끄러움을 넘어 증언하기로 한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나에게도 아직 쓸 준비가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들을 성급하게 꺼내지 않고, 충분히 익히고 성찰하며, 진정으로 쓸 수 있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문학이 어떻게 개인의 고통을 보편의 언어로 승화시키고, 시대의 증언이 되며, 세대를 넘어 연대의 끈을 만들어가는지 목격했다. 신경숙의 문체에 매료되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나는 문체를 넘어 한 작가의 치열한 문학적 여정과 진정성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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