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부소유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2005년 6월 15일 오후 5시 30분. 서울대병원 12층 1204호실. 심전도 모니터가 불규칙한 리듬을 그리고 있었다. 삐, 삐, 삐... 삐...... 삐.


김명상의 손을 잡고 있었다. 뼈만 남은 손. 차가운 손. 그래도 아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손. 창백함을 넘어 투명해진 피부 아래로 파란 혈관이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스물아홉 살의 손이 아니었다. 백 살 노인의 손 같았다.


- 야.


김명상이 눈을 떴다. 초점을 맞추는 데 한참 걸렸다. 노란빛이 도는 눈. 황달이 온 눈.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김명상이 있었다.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입술이 움직였다. 갈라진 입술.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목에는 튜브가 들어가 있었다. 인공호흡기가 대신 숨을 쉬고 있었다. 쉬- 쉬- 하는 기계음이 김명상의 숨소리를 대신했다. 김명상이 남은 힘을 모아 내 손을 꽉 쥐었다. 아프지 않았다. 너무 약한 힘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손아귀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은 천 근 같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마지막 말.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이미 일주일 전에 사라졌다. 대신 눈으로 말했다. 그 눈빛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29년을 함께한 친구의 눈빛을.


‘기억해줘.’


그것이 김명상의 마지막 부탁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꿈꾸고, 좌절하고, 그래도 끝까지 살아냈다는 것을.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이었다. 누군가는 퇴근하고, 누군가는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일상적인 삶. 평범한 삶. 김명상이 그토록 원했던 그런 삶. 심전도 모니터의 선이 점점 약해졌다. 산이 평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의료진이 들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김명상의 부모님이 아들의 다른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거친 손. 평생 노동으로 단련된 손이 죽어가는 아들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오후 5시 47분.


모니터가 일직선을 그렸다. 삐-- 하는 긴 음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김명상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더 이상 내 손을 쥐지 않았다. 그냥 놓여 있었다. 무게만 있을 뿐, 의지는 없는 손이 되었다.


김명상이 떠났다. 스물아홉 살 김명상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약속했다. 김명상의 감긴 눈 앞에서, 차가워진 손을 잡고. 기억하겠다고. 네가 얼마나 뜨겁게 살았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했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미쳐있었는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우정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펜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나갈 시간이다.


그 녀석은 정말 눈에 띄었으니까.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