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김명상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가장 먼저 서로를 찾았고, 하교할 때도 함께였다. 다른 아이들이 우리를 ‘붙어 다니는 콤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김명상은 그런 별명을 즐기는 것 같았다.
김명상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 대놓고 다가가서 물었다.
- 뭘 봐? 꼽냐? 잘생긴 사람 처음 보냐?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김명상의 그런 행동이 불편했다. 왜 굳이 시비를 거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김명상 나름의 방어기제였다. 먼저 공격함으로써 상처받을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5월의 어느 날, 체육 시간이었다. 우리는 운동장에서 피구를 했다. 김명상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는데,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젓가락처럼 가늘었다. 무릎 관절이 유독 크게 도드라져 보였고, 종아리에는 살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김명상은 열심히 뛰어다녔다. 공을 피하는 동작이 날렵했다. 마치 공의 궤적을 미리 읽는 것처럼 정확하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십 분쯤 지나자 김명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원래도 창백했지만 푸른빛이 돌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 입술까지 파래졌다. 체육 선생님이 김명상의 상태를 보고는 즉시 벤치에 앉으라고 했다.
- 김명상, 너 괜찮냐? 보건실 갈래?
김명상은 고개를 저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풀무질하듯 오르내렸다. 투명한 피부 아래로 갈비뼈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였다. 나는 김명상 옆에 앉아 등을 토닥였다. 등뼈가 손바닥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 괜찮아. 그냥... 숨이 좀 차서 그래.
김명상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경련에 가까웠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김명상이 물었다.
- 야, 나 지금 어때 보여?
- 그냥... 좀 창백해 보여.
- 창백? 씨발, 난 원래 창백한데. 더 창백해 보인다고?
김명상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통을 꺼냈다. 하얀 알약 두 개를 꺼내 물 없이 삼켰다. 약을 삼키는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오랜 습관처럼.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김명상은 벌써 책을 읽고 있었다. 아까의 일이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책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이 가끔 경련하듯 움찔거린다는 것을.
며칠 뒤, 김명상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감기로 조퇴했다고 했지만, 나는 불안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김명상의 집으로 향했다. 김명상은 학교 근처 낡은 빌라에 살았다. 3층짜리 건물의 2층, 현관문에는 ‘김’이라는 명패만 달려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김명상의 어머니가 나왔다. 김명상과는 달리 평범한 외모의 중년 여성이었다. 다만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그 주름 속에 걱정이 가득했다.
- 명상이 친구구나. 들어와. 명상이가 많이 이야기했어.
김명상의 방은 책으로 가득했다. 벽 한쪽을 가득 메운 책장에는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이 빼곡했다. 철학서, 문학전집, 과학책들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김명상이 나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 야, 뭐 하러 여기까지 갑자기 왔어?
투덜거리면서도 김명상의 표정은 밝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김명상의 얼굴을 비췄다. 역광 때문에 얼굴의 윤곽이 흐릿하게 번졌다. 마치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 그냥... 안 와서.
내가 어색하게 말하자 김명상이 침대를 두드렸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 김명상은 내 무게와 자기 무게를 비교하는 듯 침대의 기울기를 바라봤다.
- 나 어제 병원 갔다 왔어. 정기 검진. 의사가 또 잔소리하더라. 무리하지 말라고, 약 잘 먹으라고. 씨발, 내가 약장수도 아니고.
김명상이 머리맡 탁자를 가리켰다. 각종 약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빨간 약, 파란 약, 하얀 약, 노란 약. 마치 무지개를 분해해 놓은 것 같았다.
- 이거 다 먹어야 해. 아침에 다섯 알, 점심에 세 알, 저녁에 네 알. 비타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가끔은 내가 약으로 만들어진 인간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명상은 담담했다.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해했다. 김명상이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너 ‘그리스인 조르바’ 읽어봤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명상이 책장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내게 던졌다.
- 읽어봐. 존나 재밌어. 조르바라는 미친놈이 나오는데, 진짜 제대로 미쳤어. 근데 그 미친놈이 제일 제정신인 것 같기도 하고. 살면서 한 번쯤은 조르바처럼 살아봐야 하는데.
김명상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 나도 크면 조르바처럼 살 거야. 여자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살 거야.
그 말을 하는 김명상의 눈빛이 반짝였다.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뜨거운 눈빛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김명상이 준 책을 품에 안고 걸었다. 책은 묵직했다. 김명상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 김명상의 글씨가 있었다.
‘야, 이 책 읽고 나처럼 살려고 하지 마. 근데 너무 모범생으로만 살지도 마. 가끔은 미친놈처럼 살아야 재밌어. - 잘생긴 명상이가’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잘생긴 명상이가, 라는 서명이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정말로 김명상은 잘생겼을까? 아니, 적어도 김명상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김명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김명상은 학교에 나왔다. 여전히 창백했지만 기운은 차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물었다.
- 야, 책 읽어 봤냐?
- 응, 어제 조금 읽었어.
- 어때? 조르바 미친놈 맞지?
김명상이 킥킥거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야, 근데 있잖아. 나는 진짜로 조르바처럼 살 거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고.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래야 후회 안 하잖아.
그 순간 교실 문이 열리고 다른 반 여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예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김명상이 그 여학생을 보더니 갑자기 일어나 다가갔다.
- 야, 너 이름이 뭐야?
여학생이 당황한 표정으로 김명상을 봤다. 김명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 나는 김명상이야. 너 진짜 예쁘다.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모든 아이들이 김명상을 쳐다봤다. 여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뭐라 말도 못하고 뛰쳐나갔다. 김명상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 야, 왜 그래?
내가 물었다. 김명상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냥. 예뻐서. 예쁜 애한테 예쁘다고 말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
그리고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나는 봤다. 김명상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투명한 피부라 감출 수 없는 수줍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김명상은 학교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이상한 외모에 이상한 행동까지 하는 아이. 하지만 김명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수업 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여학생들에게 대놓고 작업을 걸었다.
- 야, 너 진짜 미쳤어?
내가 물으면 김명상은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 응, 미쳤어. 근데 미친 게 더 재밌잖아. 너도 한번 미쳐봐. 스스로 잘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김명상의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부럽기도 했고, 그런 김명상이 좋기도 했다. 투명한 몸 안에 불타는 영혼을 가진,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