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생각

by 부소유

김명상의 말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변명을 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바짝 마르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책상에 손을 짚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그 긴 속눈썹이 깜빡일 때마다 작은 그림자가 뺨 위에 떨어졌다.


- 어... 그게...


내가 더듬거리자 김명상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웃으면서 안경을 위로 밀어 올렸는데, 그 동작이 묘하게 어른스러웠다.


- 잘생긴 사람 처음 보냐? 너 예전부터 나를 그렇게 쳐다봤지? 다 알고 있었어.


그 아이는 내 옆 빈 의자를 빼서 앉았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교실 안에 울렸다. 몇몇 아이들이 우리를 힐끔거렸지만 금세 관심을 거뒀다. 김명상은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바라봤다. 그 자세가 초등학생답지 않게 능숙했다.


- 너 이름이 뭐야?


내가 이름을 말하자 김명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교과서를 집어 들어 펄럭거렸다. 낙서로 가득한 여백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그림만 그리네. 이거 뭐야, 로봇이야?


내가 그린 건담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명상은 연필을 집어 들어 내 그림 옆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선으로 간단하게 그렸는데도 제법 그럴듯한 로봇이 나타났다. 내 그림보다 훨씬 세련됐다.


- 나도 예전에 이런 거 많이 그렸어. 지금은 시시해서 안 그리지만.


그 아이가 연필을 놓으며 말했다. 손가락에 연필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 검은 자국마저도 투명한 피부 위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김명상은 손바닥으로 자국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 내일부터 같이 놀자. 너 오락실 가봤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가보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불량 학생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김명상이 다시 피식 웃었다.


- 역시 모범생이네. 내가 데려가 줄게. 와따야 와따.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등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마른 것을 넘어서 메마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걸음걸이에는 활력이 있었다. 마치 몸 안에 작은 엔진이라도 달린 것처럼.


다음 날부터 김명상과 나는 자연스럽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김명상이 내 자리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자기가 읽은 책 이야기였다. 열두 살 아이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었다. 니체, 사르트르, 카뮈 같은 이름들이 그 아이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김명상의 목소리에는 묘한 리듬이 있었다. 높았다가 낮아지고,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그 리듬에 빠져들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김명상은 도시락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도 따라갔다. 옥상은 원래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만 김명상은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떻게 열쇠를 구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운동장은 개미집 같았다. 아이들이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모습이 작은 점들처럼 보였다.


김명상의 도시락은 특이했다. 반찬이 거의 없고 밥만 가득했다. 그것도 흰쌀밥이 아니라 잡곡밥이었다. 검은콩, 팥, 수수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반찬은 김치 한 가지와 계란말이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김명상은 맛있게 먹었다. 아니, 먹는다기보다는 연료를 보충하는 것 같았다.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여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동작을 반복했다.


- 너희 엄마가 싸준 거야?


내가 묻자 김명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 엄마는 내가 잡곡밥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믿어. 병원에서 그랬대. 하얀 쌀밥보다 잡곡밥이 좋다고.


병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너... 아픈 데 있어?


김명상이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봤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 글쎄. 의사들은 그런 것 같던데, 난 잘 모르겠어. 그냥 남들과는 조금 다른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팔을 내밀었다. 햇빛 아래서 본 김명상의 팔은 더욱 투명했다. 파란 혈관들이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심지어 맥박에 따라 혈관이 팔딱거리는 것까지 보였다.


- 신기하지? 나도 가끔 거울 보면 신기해. 내 몸속이 다 보이는 것 같아서.


김명상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왠지 슬펐다. 그 투명함이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로워 보였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유리 조각 같았다.


방과 후, 김명상은 약속대로 나를 오락실로 데려갔다. 학교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지하 오락실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담배 연기와 곰팡이 냄새가 섞인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어둠침침한 공간에 오락기계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각종 전자음이 귀를 때렸다.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른들도 몇 명 있었다.


김명상은 익숙한 듯 아저씨에게 천 원짜리를 주고 백 원짜리 동전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는 게임기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황금 도끼’라는 게임이었다.


- 이거 해봤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명상이 동전을 넣고 1인용으로 시작했다. 캐릭터 선택 화면이 나오자 망설임 없이 흰 수염의 노인을 골랐다. 도끼를 든 드워프 전사였다.


게임이 시작되자 김명상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평소의 나른하고 냉소적인 표정이 사라지고 극도로 집중하는 얼굴이 되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버튼을 연타했다. 캐릭터가 화면을 종횡무진하며 적들을 쓰러뜨렸다. 콤보가 이어질 때마다 점수가 올라갔다.


- 씨발, 이리 와 이 개새끼야!


김명상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학교에서는 한 번도 듣지 못한 거친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의 김명상이 진짜 김명상 같았다. 창백한 피부에 붉은 기운이 돌고, 큰 눈이 번뜩거렸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스테이지가 계속되었다. 1장, 2장, 3장... 김명상은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옆에서 구경하던 중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 와, 쟤 진짜 잘한다.

- 몇 장까지 가는 거야?


김명상은 주변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직 화면에만 집중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투명한 피부 위로 땀방울이 구슬처럼 맺혔다가 흘러내렸다.


5장 보스를 깨자 환호성이 터졌다. 김명상이 잠시 손을 멈추고 목을 돌렸다. 목뼈가 우두둑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결국 김명상은 백 원 한 개로 40분을 넘게 플레이했다. 마지막 보스를 쓰러뜨리고 엔딩을 보았을 때,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김명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 어때? 재밌지?


내게 묻는 김명상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있었다. 그 미소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김명상이라는 아이가 그저 아픈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투명한 껍질 안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명상이 말했다.


- 나는 말이야, 명상이라는 이름이 싫어. 밝은 생각이래. 웃기지 않아? 명상은 원래 생각을 비우는 건데, 밝은 생각을 하래. 모순이야, 모순.


그러면서도 김명상은 웃었다. 해가 지는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은 빛이 김명상의 투명한 얼굴을 비췄다.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이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답고도 슬픈 불꽃처럼.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