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의 제왕

by 부소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김명상과 나는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끈끈해졌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김명상이 우리 반으로 찾아왔고, 방과 후에는 으레 오락실로 향했다.


중학생이 된 김명상은 키가 조금 자랐지만 여전히 작은 편이었다. 교복이 헐렁했다. 특히 바지가 너무 길어서 늘 접어 입었는데, 그 모습이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김명상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안경 너머의 큰 눈이 세상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오락실은 우리의 성역이었다. 학교에서 도보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둘리 오락실’이라는 이름의 지하 오락실. 계단을 내려가면 퀴퀴한 담배 냄새와 습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고, 각종 게임기에서 나오는 전자음이 뒤섞여 묘한 리듬을 만들었다.


김명상은 그곳의 왕이었다. 아니, 전설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오락실에 들어서면 먼저 온 선배들이 김명상을 알아보고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 어, 명상이 왔네. 오늘은 뭐 할 거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선배가 물었다. 김명상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오락실 안을 둘러봤다. 게임기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눈빛이 장수가 전장을 살피는 것 같았다.


- 오늘은 닌자 베이스볼이나 해볼까.


김명상이 구석에 있는 게임기 앞으로 걸어갔다.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야구방망이를 든 닌자들이 적을 물리치며 전진하는 게임이었다. 김명상은 항상 초록색 닌자를 선택했다. 가장 작고 빠른 캐릭터였다.


동전을 넣자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김명상의 손가락이 조이스틱과 버튼 위에 올려졌다. 그 순간부터 김명상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평소의 냉소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로 집중한 맹수의 표정이 나타났다.


게임이 시작되자 김명상의 초록 닌자가 화면을 누볐다. 좌우로 움직이며 적을 타격하고, 점프와 구르기를 조합해 공격을 피했다. 콤보가 이어질 때마다 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10연타, 20연타, 30연타...


- 씨발, 점프해야지!


김명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실수는 거의 없었다. 마치 게임의 모든 패턴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게 대응했다. 1장 보스가 나타났다. 비행기 괴물이었다. 김명상은 거리를 유지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거기에 와리가리. 무한 잡기까지. 보스의 공격 패턴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어느새 김명상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어른들까지. 모두 숨을 죽이고 김명상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2장, 3장을 거쳐 4장에 도달했을 때, 구경하는 사람이 스무 명은 넘었다.


- 저 새끼 진짜 잘하네.

- 몇 학년이야?

- 중1이래. 근데 초등학교 때부터 여기 왔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김명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화면에만 집중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투명한 피부 위로 땀방울이 진주처럼 반짝였다. 손가락이 경련하듯 빠르게 움직였다.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들렸다.


5장 보스와의 전투. 거대한 악어가 나타났다. 역대 최고 난이도의 적이었다. 김명상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졌다.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초록 닌자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반격했다. 체력이 간당간당했다.


- 아, 죽겠다!


누군가 외쳤지만 김명상의 닌자는 죽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필살기를 발동했다. 화면이 번쩍이며 보스가 쓰러졌다. 환호성이 터졌다.


- 미쳤다!

- 개쩐다!


김명상은 잠시 손을 멈추고 목을 돌렸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난이도는 계속 올라갔지만 김명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김명상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김명상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얼굴이 평소보다 더 창백해졌고,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김명상은 멈추지 않았다.


7장 최종보스. 거대한 마스크를 쓴 최종보스가 등장했다. 체력 바가 세 줄이나 되었다. 김명상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미세한 떨림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김명상의 닌자가 보스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조금씩 체력을 깎아냈다. 첫 번째 체력 바가 사라졌다. 두 번째 체력 바도 절반이 줄었다. 하지만 김명상의 닌자도 체력이 거의 없었다. 한 대만 맞아도 게임 오버였다.


순간, 김명상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콤보를 이어갔다. 화면이 정신없이 번쩍였다. 보스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클리어!


게임 화면에 ‘CONGRATULATIONS’이 떴다. 오락실 전체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박수 소리가 터졌다. 누군가 김명상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명상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비틀거렸다. 나는 재빨리 김명상을 붙잡았다. 김명상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이 내 팔에 전해졌다.


- 괜찮아?


내가 속삭이자 김명상이 억지로 웃었다.


- 당연하지. 나야.


하지만 김명상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김명상을 부축해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김명상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편의점에서 이온음료를 사서 김명상에게 건넸다. 김명상이 벌컥벌컥 마셨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다 마시고 나서 김명상이 말했다.


- 백 원으로 삼십 팔분. 신기록이야.


자랑스러운 듯 웃는 김명상의 얼굴에는 아직도 흥분이 남아 있었다. 눈이 반짝거렸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김명상이 말했다.


- 있잖아, 게임할 때가 제일 좋아. 그때만큼은 내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병신 같은 이 몸도 잊어버리고, 그냥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어.


김명상이 자기 손을 들어 봤다.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근데 요즘은 예전만큼 오래 못하겠어. 몸이 안 따라줘. 씨발, 겨우 열네 살인데 벌써 늙은 건가.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명상의 그 쓸쓸한 웃음이 가슴을 찔렀다.


다음 날, 김명상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병원에 갔다고 했다. 이틀 뒤에야 김명상이 학교에 나타났다. 팔에 밴드가 붙어 있었다. 피검사를 했다고 했다.


- 의사가 그러는데, 무리하면 안 된대. 운동도 적당히 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웃기지? 청소년이 스트레스 안 받고 어떻게 살아.


김명상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김명상은 계속 오락실에 갔다. 아니, 오히려 더 자주 갔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불태우려는 것처럼.


그리고 김명상은 정말로 오락실의 전설이 되었다. ‘투명한 피부의 게임 천재’, ‘백 원의 마술사’, ‘닌자 마스터’... 여러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김명상에게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김명상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오락실을 나올 때마다 김명상은 말했다.


- 야, 다음엔 너도 같이 해. 2인용으로. 같이 하면 더 재밌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김명상만큼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명상의 그 절박함, 그 간절함을 나는 가질 수 없었다. 김명상은 매 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내일을 기다리는 평범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김명상의 곁에 있었다. 김명상이 게임을 할 때, 숨을 헐떡일 때, 승리에 도취되어 웃을 때, 나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설이 되어가는 친구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