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교문 앞에서 김명상을 기다렸다. 다른 중학교에서 온 신입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이었다. 하얀 꽃잎이 아스팔트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명상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 녀석의 새 교복은 여전히 헐렁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셔츠가 펄럭였다. 마치 건조대에 걸려있는 빨래처럼. 하지만 김명상의 표정은 밝았다. 오랜만에 보는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 야, 같은 학교라니. 운명 아니냐? 근데 어쩌냐? 이제 우린 오락실 갈 여유는 없을 것 같네.
김명상이 내 어깨를 쳤다. 손에 힘이 없었다. 깃털로 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교실로 향했다. 김명상은 1반, 나는 7반이었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첫 주가 지나고 우리는 일과를 정했다. 야간 자율학습 전 저녁 시간,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미소 분식’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와 스테인리스 테이블이 네 개뿐인 좁은 공간이었다.
메뉴판을 보며 김명상이 말했다.
- 제육덮밥 4천 원, 돌솥비빔밥 6천 원. 2천 원 차이네.
김명상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천 원짜리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나도 비슷했다. 고등학생에게 2천 원은 큰 돈이었다.
- 오늘은 제육덮밥.
김명상이 주문했다. 나도 따라서 제육덮밥을 시켰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덮밥이 나왔다. 돼지고기가 빨간 양념에 볶아져 있었다. 김명상이 숟가락으로 밥과 고기를 비볐다. 양념이 밥알에 고루 배었다.
김명상은 천천히 먹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듯이. 가끔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나는 그런 김명상을 보며 따라서 천천히 먹었다. 평소 같으면 5분 만에 해치웠을 밥을 20분에 걸쳐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김명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야, 노을 색이 제육덮밥 양념 색 같지 않냐?
나는 웃었다. 정말 그랬다. 빨간 양념처럼 하늘이 붉었다. 구름이 고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명상도 따라 웃었다.
- 근데 있잖아, 나 사실 돌솥비빔밥이 더 먹고 싶어. 뜨거운 돌솥에 지글지글 눌은밥 있잖아. 그거 긁어먹는 맛이 일품이야.
김명상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김명상이 돌솥비빔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없을 것이다. 늘 제육덮밥만 먹었으니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제육덮밥을 먹었다. 금요일이 되었다. 김명상이 지갑을 열었다. 천 원짜리 두 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김명상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오백 원짜리 동전 네 개를 더 꺼냈다.
- 오늘은 돌솥비빔밥 먹자.
김명상이 환하게 웃었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돌솥비빔밥 두 개를 주문받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늘 제육덮밥만 시키던 우리였으니까.
돌솥이 나왔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밥 위에 나물과 고기, 계란 프라이가 올려져 있었다. 김명상이 고추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돌솥에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김명상이 첫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씹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눈을 뜨더니 말했다.
- 이게 행복이구나.
과장이 아니었다. 김명상의 표정에는 진짜 행복이 있었다. 2천 원 더 비싼 돌솥비빔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표정이었다.
다 먹고 나서 김명상이 숟가락으로 돌솥 바닥을 긁었다. 눌은밥이 바삭하게 떨어졌다. 김명상이 그것을 아껴가며 먹었다. 한 알도 남기지 않았다.
- 다음 주는 다시 제육덮밥이네.
김명상이 빈 지갑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김명상의 성적표를 봤다.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문과에서는 2등이었다. 나는 겨우 중간 정도였다.
- 공부는 언제 하냐?
내가 물었다. 김명상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냥. 수업 시간에 집중하면 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김명상이 새벽까지 책을 읽는다는 것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머리라도 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우리는 모처럼 돌솥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김명상이 갑자기 말했다.
- 야, 우리 나중에 대학 가면 매일 돌솥비빔밥 먹자.
- 매일? 질리지 않을까?
- 안 질려. 제육도 매일 먹는데 질리지 않으니까. 평생 먹어도 안 질릴 것 같아.
김명상이 돌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6월의 어느 날, 김명상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 들으니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이제는 명상이의 집과 같은 구월동 길병원. 김명상은 일반 병실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회복이 더딘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주일이면 퇴원할 텐데, 김명상은 2주가 지나도 병원에 있었다.
- 병원 밥 맛없어 죽겠어.
김명상이 투덜거렸다. 병원 식판을 보니 맑은 죽과 김치 몇 점이 전부였다.
- 제육덮밥 먹고 싶다.
김명상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다음 날 보온 도시락에 제육덮밥을 담아갔다. 병원 규정 위반이었지만 김명상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김명상이 도시락을 열고 환하게 웃었다.
- 미쳤냐? 이거 들킬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김명상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가락 입에 넣더니 눈을 감았다. 눈물이 글썽였다.
- 이 맛이야. 이 맛.
김명상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육덮밥을 먹었다. 마지막 한 알까지 깨끗이 비웠다.
퇴원 후 김명상은 더 자주 아팠다.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갔다. 그래도 저녁마다 분식집에서 만났다. 제육덮밥과 돌솥비빔밥을 번갈아 먹으며.
2학기가 되었다. 어느 날 김명상이 말했다.
- 나 방송작가 하고 싶어.
뜬금없는 말이었다.
-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작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김명상의 눈이 반짝였다. 오랜만에 보는 열정적인 눈빛이었다.
- 근데 대학은?
- 글쎄. 가야겠지. 일단은. 부모님도 원하시고.
김명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제육덮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겨울이 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식 날, 김명상이 말했다.
-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돌솥비빔밥 한개 더 주문해서 나눠 먹자.
- 뭐? 돈 있어?
- 응. 아껴뒀어.
김명상이 지갑을 열었다. 만 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한 달 동안 아낀 돈이라고 했다.
우리는 돌솥비빔밥 추가 0.5 인분까지 먹기 시작했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다 먹었다. 김명상이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오락실에서 백원에 목숨을 걸던 중학생은 오간데 없고, 해탈한 표정의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친구의 말은 물론 농담이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 있잖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분식집 차릴 거야. 제육덮밥 2천 원, 돌솥비빔밥도 2천 원. 같은 가격에 파는 거야.
- 그럼 손해 아니야?
- 괜찮아. 가난한 학생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잖아.
김명상이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분식집 유리창에 비친 노을이 제육덮밥 양념 색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