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봄, 김명상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아침마다 보건실에 들러 혈압을 재고, 점심시간에는 약을 한 움큼씩 삼켰다. 그런데도 여전히 방과 후면 오락실로 향했다. 이제는 진호와 상민도 자주 빠졌다. 고등학교 준비를 한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김명상의 그 절박한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날도 김명상과 둘이서 오락실로 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김명상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한 계단 한 계단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어 보였다. 중간에 한 번 멈춰서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기도 했다.
오락실 안은 여전히 어둡고 습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김명상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백 원짜리 하나. 김명상은 그 동전을 한참 들여다봤다. 동전의 무게를 가늠하듯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 오늘은 이거 하나로 끝까지 가볼 거야.
김명상이 황금 도끼 게임기 앞에 섰다. 동전을 넣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동전을 투입구에 넣었다. 짤랑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김명상은 여전히 흰 수염 노인을 선택했다. 도끼를 든 드워프 전사. 화면에 캐릭터가 나타났다. 김명상의 손가락이 조이스틱 위에 올려졌다. 떨림이 있었다. 미세했지만 분명했다.
1장이 시작되었다.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김명상의 드워프가 도끼를 휘둘렀다. 예전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정확했다. 모든 동작에 낭비가 없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옆에서 고등학생들이 구경하기 시작했다.
- 어, 저녀석.
- 요즘 잘 안 보이더니.
- 예전만 못하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김명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화면에만 집중했다. 2장, 3장을 무사히 통과했다. 땀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했다. 김명상이 왼손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안경알에 김이 서려 있었다.
4장 중간보스가 나타났다. 거대한 괴물이었다. 김명상의 드워프가 거리를 유지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괴물의 공격 패턴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타이밍이 어긋나 괴물의 공격을 맞았다. 체력이 절반이나 줄었다.
- 아...
김명상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이스틱을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투명한 피부 아래로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간신히 중간보스를 물리치고 5장에 도달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적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김명상의 드워프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도끼가 원을 그리며 적들을 쓸어버렸다.
그때 김명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마른기침이었다. 한 번 시작된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김명상은 조이스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기침을 하면서도 계속 게임을 했다.
- 명상아, 그만하자.
내가 말했지만 김명상은 고개를 저었다.
- 씨발 조금만 더..
말이 끊겼다. 숨이 차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래도 화면 속 드워프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
6장 보스가 등장했다. 김명상의 눈빛이 변했다. 흐릿했던 초점이 다시 또렷해졌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것 같았다.
드워프가 공격을 피하며 접근했다. 도끼로 괴물의 다리를 공격했다. 곧바로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공격했다. 드워프가 간신히 구르기로 피했다. 체력이 거의 없었다. 한 대만 더 맞으면 끝이었다.
김명상의 호흡이 더욱 거칠어졌다. 가슴이 풀무질하듯 오르내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투명한 피부가 종이처럼 하얗게 보였다.
괴물이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거대한 화염구를 모으고 있었다. 김명상의 드워프가 마지막 필살기를 발동했다. 화면이 번쩍였다. 도끼가 황금빛으로 빛나며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괴물이 쓰러졌다. ‘STAGE CLEAR’가 화면에 떴다. 하지만 7장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더 많은 적들이 나타났다. 김명상의 드워프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김명상이 쓰러졌다.
조이스틱을 잡은 채로 옆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재빨리 김명상을 붙잡았다. 김명상의 몸이 축 늘어졌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손은 여전히 조이스틱을 쥐고 있었다.
- 명상아! 김명상!
내가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119에 신고했다. 나는 김명상을 바닥에 눕히고 가슴을 두드렸다. 김명상의 눈꺼풀이 떨렸다. 천천히 눈을 떴다.
- 게임... 아직...
김명상이 중얼거렸다. 화면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드워프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체력이 다해 쓰러지는 중이었다. ‘GAME OVER’가 화면에 떴다.
- 53분... 53분...
김명상이 희미하게 웃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마치 큰 일을 해낸 것처럼.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김명상을 들것에 실었다. 김명상이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뼈만 남은 것 같은 손이었다.
- 내 대신... 클리어해줘...
그렇게 말하고 김명상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나는 멍하니 게임기 앞에 서 있었다. 화면에는 ‘INSERT COIN’이 깜빡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백 원을 꺼냈다. 동전이 무겁게 느껴졌다. 김명상에게 이 백 원은 단순한 동전이 아니었다. 자존심이었고, 증명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동전을 넣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김명상이 항상 선택하던 흰 수염 노인을 골랐다. 도끼를 든 드워프 전사. 하지만 나는 1장도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했다. 김명상처럼 할 수 없었다. 그 절박함, 그 간절함을 나는 가질 수 없었다.
병원으로 갔다. 김명상은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링거를 맞고 있었다. 투명한 수액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김명상이 나를 보고 웃었다.
- 못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명상이 낄낄거렸다.
- 당연하지. 내가 짱이야.
그 말이 맞았다. 나는 김명상처럼 할 수 없었다.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 수 없었다. 백 원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었다.
의사가 들어왔다. 김명상의 부모님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명상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장기들이 조금씩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김명상이 퇴원했다. 하지만 학교에는 나오지 못했다. 집에서 요양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매일 방과 후에 김명상의 집에 들렀다. 김명상은 침대에 누워 게임 잡지를 읽고 있었다. 새로 나온 게임들의 공략법을 외우고 있었다.
- 퇴원하면 바로 갈 거야.
나는 그런 김명상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러웠다. 나는 평생 그렇게 간절하게 무언가를 원해본 적이 없었다. 백 원 하나에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해본 적이 없었다. 김명상은 비록 몸은 약했지만,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살았다. 백 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