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김명상이 수업 중에 갑자기 책상에 엎드렸다. 처음에는 잠든 줄 알았다. 김명상이 워낙 수업 시간에도 자유로운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옆자리 친구가 김명상을 흔들더니 선생님을 불렀다.
쉬는 시간에 김명상의 반으로 달려갔다. 보건실에 있다고 했다. 보건실 침대에 누워있는 김명상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창백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양호 선생님이 김명상의 배를 살짝 눌렀다. 김명상이 비명을 질렀다.
- 으악!
그 비명이 너무 날카로워서 나도 놀랐다. 김명상은 평소에 웬만한 아픔은 참는 녀석이었다. 오락실에서 손가락에 쥐가 나도 계속 게임을 하던 녀석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양호 선생님이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119였다. 맹장염이 의심된다고, 빨리 와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명상이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새우처럼 구부러진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김명상을 들것에 실었다. 나도 따라가려 했지만 선생님이 막았다. 수업에 들어가라고. 하지만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김명상의 그 창백한 얼굴과 비명소리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방과 후 바로 구월동 길병원으로 갔다. 김명상의 어머니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 맹장이 터졌대.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김명상의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술실 위의 빨간 불빛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을 보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의사가 나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명상의 상태가 워낙 약해서 회복에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복막염 위험도 있다고.
회복실로 옮겨진 김명상을 봤다.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팔에는 링거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배에는 거즈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렸다.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갔을 때 김명상은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 의식도 돌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 야... 왔냐...
김명상이 힘없이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말했다.
- 씨발... 존나 아팠어... 죽는 줄 알았어...
욕을 하면서도 힘이 없었다. 평소의 그 거친 에너지가 사라진 김명상은 그저 아픈 환자일 뿐이었다.
김명상의 아버지가 병실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분이었다. 김명상과 닮은 구석이 없었다.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다만 눈가의 주름이 깊었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 명상이 친구구나. 고맙다. 자주 와줘서.
김명상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손이 거칠었다. 오랜 노동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병실에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소독약 냄새와 약품 냄새, 그리고 김명상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비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병실 안과 밖이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사흘째 되는 날, 김명상이 조금 기운을 차렸다. 침대를 세워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배에 힘을 주면 안 된다고 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 밥 먹고 싶다.
김명상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죽만 먹을 수 있었다. 맑은 죽.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흰 죽이었다. 김명상이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 이게 뭐야. 풀 먹는 것 같네.
그래도 다 먹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고, 김명상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김명상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복도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링거 스탠드를 끌고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어 보였다. 복도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십 분이 걸렸다.
- 운동해야 빨리 낫는대.
김명상이 헐떡이며 말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겨우 백 미터를 걸었을 뿐인데 마라톤을 뛴 것처럼 숨이 찼다.
열흘째, 실밥을 뽑는 날이었다. 김명상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의사가 핀셋으로 실을 잡아당길 때마다 김명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입술에서 피가 났다.
실밥을 다 뽑고 나서 김명상이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 십 센티미터 정도의 상처가 있었다. 아직 빨갛게 부어 있었다.
- 흉터 남겠네.
김명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 괜찮아. 남자는 흉터 하나쯤은 있어야지.
내가 위로하려 했지만 김명상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이미 몸이 이 모양인데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 말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김명상도 자신의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주가 지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주일이면 충분했을 텐데, 김명상은 두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회복력이 떨어졌다. 의사는 김명상의 부모님께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면역력이 약해서 감염 위험이 크다고.
퇴원하는 날, 김명상이 병원 현관에서 심호흡을 했다.
- 야, 바깥 공기 좋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 제육덮밥 먹으러 가자.
우리는 분식집으로 갔다. 김명상이 제육덮밥을 시켰다. 하지만 몇 숟가락 먹지 못했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수술 부위가 당긴다고.
- 씨발. 제대로 먹지도 못하네.
김명상이 숟가락을 놓았다. 반도 먹지 못한 제육덮밥을 아쉬운 듯 바라봤다.
학교로 돌아온 김명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체육 시간은 모두 교실에서 자습을 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찼다. 가방도 제대로 들지 못해서 내가 대신 들어줘야 했다.
한 달이 지났다. 김명상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체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약해진 것 같았다. 얼굴은 더 창백해졌고, 팔다리는 더 가늘어졌다.
어느 날 김명상이 말했다.
- 있잖아, 맹장 터졌을 때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배 속에서 뭔가 폭발하는 느낌이었어. 그때 생각했어. 아, 이렇게 죽는구나. 별거 아니네.
김명상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 근데 안 죽었잖아. 살아났잖아. 그럼 뭔가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살려준 거 아닐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김명상의 그 질문이 너무 무거웠다. 열여덟 살이 던지기에는 너무 큰 질문이었다.
그 뒤로도 김명상은 자주 아팠다. 감기에 걸리면 한 달을 앓았고, 작은 상처도 쉽게 낫지 않았다. 하지만 김명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 나왔고, 공부했고, 나와 제육덮밥을 먹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명상이 또 병원에 실려갔다. 이번에는 장염이었다. 일주일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에는 폐렴으로 입원했다.
길병원이 김명상의 제2의 집이 되어갔다. 병실 번호를 외우게 되었고, 간호사들도 김명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 또 왔네, 명상아.
간호사들이 김명상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명상은 그럴 때마다 웃으며 대답했다.
- 네, 또 왔어요. 이쁜 누나. 여기가 집보다 편하네요.
농담이었지만 씁쓸했다. 정말로 김명상은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3학년이 되기 전 겨울, 김명상이 내게 말했다.
- 나 수능 볼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 당연하지. 왜 그런 소리 해?
- 그냥. 가끔 불안해서. 시험 날 또 맹장 같은 게 터지면 어떡하지?
김명상이 배를 만졌다. 수술 자국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는 흉터가 되어 하얗게 남아 있었다.
- 괜찮을 거야. 넌 강하잖아.
내가 말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김명상의 몸은 시한폭탄 같았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그리고 그 폭탄은 점점 더 자주 터지고 있었다.
김명상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급했고, 더 절박했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서둘렀다. 공부도, 친구관계도, 심지어 제육덮밥을 먹는 것도.
맹장이 터진 그날 이후로 김명상은 변했다. 더 거칠어졌고, 더 자유로워졌고, 동시에 더 절망적이 되었다. 죽음을 한 번 스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태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김명상이 살아갈 방식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