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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자리 3

by 부소유

은총이의 뒷다리가 본격적으로 무너진 것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처음에는 걸을 때 뒷다리를 약간 끌었다. 발톱이 바닥에 끌리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거실 한가운데서 뒷다리가 완전히 접혀버렸다. 은총이는 앞다리로 몸을 끌며 이동했다. 뒷다리 두 개는 축 늘어져 바닥에 질질 끌렸다. 마치 하반신이 다른 몸인 것처럼.


양 소장은 은총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다. 수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 슬개골이 완전히 빠져 있고, 관절 연골도 거의 닳았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수술은 어렵고요. 통증 관리 정도가 최선입니다.


소염제와 관절 영양제를 처방받아 왔다. 양 소장은 매일 약을 사료에 섞어 먹였지만, 은총이의 다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은총이는 더 이상 걷지 않았다. 거실 한구석에 깔아놓은 담요 위에 엎드려 하루를 보냈다. 가끔 앞다리로 몸을 일으키려 하면 뒷다리가 따라오지 못해 옆으로 넘어졌다. 넘어질 때마다 낑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양 소장의 가슴을 찔렀다.


어느 날 밤, 양 소장은 텔레비전을 끄고 약상자를 뒤졌다. 감기약, 소화제, 파스, 밴드. 약상자 한쪽 구석에 맨소래담이 있었다. 어깨가 결릴 때, 허리가 아플 때 꺼내 바르던 것. 양 소장은 그것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은총이가 담요 위에 엎드려 있었다. 양 소장은 은총이 옆에 앉아 뒷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다리가 가늘었다. 뼈 위에 가죽만 남은 것 같았다. 맨소래담 뚜껑을 열자 멘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양 소장은 검지에 연고를 묻혀 은총이의 뒷다리 관절 위에 발랐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원을 그리듯 문질렀다.


은총이가 고개를 돌려 양 소장을 올려다보았다. 백내장으로 하얗게 흐려진 눈이었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 아픈 것인지, 고마운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의 체온을 느낄 때 생기는 어떤 것인지. 양 소장은 묵묵히 은총이의 다리를 주물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양 소장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했다. 저녁 아홉 시, 뉴스가 끝나면 맨소래담을 꺼냈다. 은총이의 뒷다리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연고를 바르고 주물렀다. 삼십 년을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개의 다리에 약을 발랐다. 성실함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대단한 일을 해내는 힘이 아니라, 작은 일을 그만두지 않는 힘.


일주일이 지났다. 변화가 없었다. 이 주가 지났다. 여전히 은총이는 앞다리로만 몸을 끌었다. 최 여사가 말했다.


- 그 따위 걸 발라서 뭐가 달라지겠어. 사람 약을 개한테 바르는 게 말이 돼?


양 소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에도 맨소래담을 꺼냈다. 은총이의 다리에 연고를 바르고, 관절을 중심으로 천천히 원을 그렸다. 엄지로 무릎 안쪽을 누르고, 검지와 중지로 허벅지 근육을 쓸어 올렸다. 아파트 관리소장이 삼십 년간 시설물을 점검하듯, 은총이의 다리 구석구석을 손끝으로 살폈다. 여기가 아플까, 여기는 괜찮을까, 여기를 좀더 눌러줄까.


삼 주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양 소장이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거실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렸다. 발톱이 바닥에 닿는 소리. 복도를 내다보니 은총이가 걷고 있었다. 네 발로. 뒷다리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약간 휘청거렸고, 가끔 한쪽이 접히려 했다. 하지만 걷고 있었다. 네 발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약 오 미터를 은총이는 걸었다. 양 소장은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이 뜨거워졌다.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에게 욕을 먹어도 울지 않았다. 예산이 삭감되어 직원을 내보내야 할 때도 울지 않았다. 은퇴식에서 삼십 년 근속 감사패를 받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개 한 마리가 네 발로 걷는 것을 보며 눈물이 났다.


- 야, 은총아.


양 소장이 불렀다. 은총이가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얀 눈이 양 소장을 향했다. 꼬리가 한 번 흔들렸다. 아주 작게,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날 이후로도 양 소장은 매일 맨소래담을 발랐다. 은총이는 걸었다. 느리고 불안정했지만 걸었다. 수의사에게 이야기하면 웃을 일이었다. 맨소래담은 사람의 어깨 결림이나 근육통에 바르는 민간요법에 가까운 약이었다. 개의 퇴행성 관절에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양 소장은 믿었다. 약이 아니라 손을 믿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손으로 같은 곳을 만져주는 것, 그것이 약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삼십 년간 아파트를 돌보았던 손이 이제는 한 마리 늙은 개의 다리를 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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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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