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

by 부소유

김명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숨겨왔던 본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도 몰랐다.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했다. 투명한 피부와 빨간 머리의 대비가 기괴했다. 귀에는 피어싱을 했다. 세 개나. 은색 링이 귀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김명상이 전화했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번지점프를 하러 간다고 했다. 강원도 어딘가의 높은 다리였다. 나는 말렸지만 김명상은 이미 버스를 타고 있었다.


저녁에 김명상에게서 동영상이 왔다. 다리 난간에 서 있는 김명상이 보였다. 카메라를 향해 중지를 들어 보이더니 소리쳤다.


- 씨발, 재밌게 살다 가야지!


그리고는 뛰어내렸다. 비명소리가 들렸다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밑에서 찍은 두 번째 동영상에서는 김명상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일주일 뒤, 김명상이 오토바이를 샀다. 중고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배기량 1200cc. 초보자가 탈 만한 것이 아니었다. 면허도 없었다. 무면허 운전이었다.


새벽 3시, 김명상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엔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여니 김명상이 헬멧을 벗고 있었다.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폭주족 같았다.


- 타봐!


김명상이 뒷자리를 두드렸다. 나는 무서웠지만 탔다. 김명상이 액셀을 돌렸다. 오토바이가 포효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새벽의 텅 빈 도로를 질주했다. 속도계가 150킬로미터를 넘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눈을 뜨기 힘들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였다. 김명상이 갑자기 한쪽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 이게 사는 거야!


나는 김명상의 허리를 꽉 잡았다.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김명상은 계속 웃고 있었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그 녀석은 결국 문신까지 했다. 왼쪽 가슴에 불사조를 새겼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새. 김명상의 소망이 담긴 문신이었다. 하지만 김명상의 몸에는 재생의 능력이 없었다.


문신을 하고 온 날, 염증이 생겼다.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체질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명상은 후회하지 않았다.


- 멋있잖아. 불사조.


김명상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빨갛게 부어오른 문신이 오히려 아팠다.


여름이 왔다. 김명상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겠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수천미터 상공에서. 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말렸다. 김명상의 부모님께도 연락했다. 하지만 김명상은 이미 예약을 했다고 했다.


스카이다이빙장에 함께 갔다. 김명상이 교육을 받고 장비를 착용했다. 낙하산 가방이 김명상의 몸집보다 커 보였다. 교관과 함께 탄뎀으로 뛰기로 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작은 경비행기였다. 창밖으로 김명상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점점 작아졌다. 하늘의 점이 되었다.


20분 뒤, 하늘에서 작은 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명상이었다. 자유낙하를 하고 있었다. 1분 동안 떨어졌다. 그리고 낙하산이 펴졌다. 천천히 내려왔다.


착지했을 때 김명상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소리쳤다.


- 씨발! 개쩔어!


그리고는 토했다. 위액과 피가 섞여 나왔다. 교관이 놀라서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김명상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 다시 하고 싶어. 한 번 더.


미친 소리였다. 교관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가을, 김명상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복싱이었다. 동네 체육관에 등록했다. 링 위에 올라가서 스파링을 하겠다고 했다.


체육관 관장이 김명상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말랐다고. 펀치 한 방 맞으면 쓰러질 것 같다고. 하지만 김명상이 계속 조르자 결국 허락했다.


첫 스파링 날, 김명상은 3분을 버티지 못했다. 1분 만에 다운됐다. 상대는 고등학생이었는데도. 코피가 터졌다. 입술도 찢어졌다. 하지만 김명상은 다시 일어났다.


- 한 번 더!


김명상이 피를 닦으며 말했다. 관장이 말렸지만 김명상은 듣지 않았다. 다시 링에 올랐다. 이번에는 30초 만에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갔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뇌진탕 증세도 있었다. 일주일 입원했다.


병실에서 김명상이 말했다.


- 그래도 링 위에 서봤잖아. 주먹질도 해봤고.


김명상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왔다. 김명상의 도전은 계속됐다. 패러글라이딩, 서핑, 암벽등반. 위험한 것은 다 해봤다. 그리고 매번 사고가 났다. 병원을 들락거렸다.


12월의 어느 날, 김명상이 내게 노트를 보여줬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절반 정도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 아직 50개나 남았어.


김명상이 노트를 넘기며 말했다. 남은 목록을 봤다. 에베레스트 등반, 아마존 탐험, 우주여행...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김명상의 몸 상태로는.


- 다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하나라도 더 해보고 싶어.


김명상이 펜으로 하나를 더 그었다. ‘친구랑 술 마시며 밤새 수다’. 오늘 한 일이었다.


새벽, 김명상이 취해서 말했다.


- 있잖아, 나 무서워. 죽는 게.


처음 듣는 고백이었다.


- 그래서 더 미친 듯이 사는 거야. 무서우니까. 멈추면 생각나니까.


김명상이 눈물을 흘렸다. 취한 눈물이었지만 진심이었다.


- 씨발, 재밌게라도 살다 가야지. 안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그 말이 김명상의 진짜 마음이었다. 광기 어린 행동들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삶의 강렬함으로 덮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듬해 1월, 김명상이 마지막 도전을 했다. 동해 바다 겨울 수영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파도가 거칠었다. 바람이 칼처럼 불었다. 김명상이 옷을 벗었다. 뼈만 남은 몸이 드러났다. 문신과 상처들이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 간다!


김명상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파도가 김명상을 덮쳤다.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웃음소리가 들렸다.


- 차갑다! 씨발, 살아있다!


김명상이 파도와 싸우며 소리쳤다. 1분도 안 되어 입술이 파래졌다.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파도에 몸을 맡겼다.


결국 내가 들어가서 김명상을 끌어냈다. 김명상은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다. 체온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구급차 안에서 김명상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재밌었어... 진짜... 재밌었어...


그것이 김명상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하지만 김명상은 후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충분히 재밌게 살았다고, 조르바보다 더 미치게 살았다고 말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