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

by 부소유

깊은 밤, 핸드폰이 울렸다. 새벽 3시 14분. 화면에 뜬 이름은 김명상이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더니 숨소리만 들렸다.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이었다. 천식 환자의 숨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을 참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김명상이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오지 않는 듯했다. 배경에서 병원 특유의 기계음이 들렸다. 심전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음, 링거 펌프의 작동 소리, 멀리서 들리는 간호사의 발자국 소리.


- 나야.


김명상의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쉰 목소리를 넘어서 갈라진 소리였다.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나오는 잡음 섞인 음성 같았다. 전화를 들고 일어나 앉았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밖에서는 찬 바람 소리가 들렸다. 늦겨울 추위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김명상이 또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 무서워.


단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천 근이었다. 그동안 김명상이 보여준 모든 허세와 강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병원으로 갔다. 새벽이라 버스도 없어서 택시를 탔다. 운전사가 왜 이 시간에 병원에 가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주황색 선을 그렸다. 병원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당직 경비원만 졸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의 형광등 몇 개가 꺼져 있어서 어두컴컴했다. 704호. 김명상의 병실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4인실이었는데 다른 환자들은 잠들어 있었다. 코 고는 소리와 잠꼬대가 섞여 들렸다. 김명상의 침대는 창가 쪽이었다. 커튼이 반쯤 쳐져 있었다.


김명상은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새벽의 서울은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김명상의 옆모습이 창문에 반사되어 이중으로 보였다. 실제보다 더 투명해 보였다. 가까이 가자 김명상이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붓어 있었다. 울었던 것 같았다. 침대 옆 테이블에는 약봉지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물컵은 비어 있었다. 물을 따라주려 했지만 김명상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뼈만 남은 손가락이 내 손을 꽉 쥐었다. 힘은 없었지만 간절함이 전해졌다.


침대 밑에 일기장이 떨어져 있었다. 주워서 테이블에 올려놓으려 했더니 펼쳐진 페이지가 보였다. ‘2월 15일. 오늘도 살았다. 내일도 살 수 있을까.’ 짧은 문장이었지만 김명상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김명상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요즘 자꾸 꿈을 꿔. 어렸을 때 꿈.


김명상의 시선이 허공을 떠돌았다. 과거를 보는 것 같았다.


-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꿈. 넌 옆에서 구경하고. 백 원으로 두 시간씩 버티던 시절.


그 시절을 나도 기억했다. 김명상이 황금 도끼와 닌자 베이스볼을 하던 모습. 화면에 집중하며 욕설을 내뱉던 모습. 그때의 김명상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새벽 4시가 되자 김명상이 링거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를 부르려 했지만 김명상이 말렸다. 조금 있으면 올 거라고. 정해진 시간이 있다고. 링거 봉투를 보니 진통제와 영양제가 섞여 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져 김명상의 혈관으로 들어갔다. 생명줄 같았다. 이 선이 끊어지면 김명상도 끊어질 것 같았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푸른빛이 하늘에 번졌다. 김명상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또 하루가 시작되네.


그 말에는 안도와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하루를 더 살았다는 안도, 그리고 오늘도 버텨야 한다는 두려움.


간호사가 들어왔다. 새벽 근무 간호사였다. 젊은 여자였는데 김명상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 또 못 주무셨어요?


김명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링거를 교체하고 혈압과 체온을 쟀다. 차트에 뭔가를 적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 열이 또 올랐네요. 의사 선생님께 보고할게요.


간호사가 나가고 김명상이 한숨을 쉬었다.


- 매일 이래. 열이 오르고 내리고.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아.


6시가 되자 병실에 햇빛이 들어왔다. 김명상의 창백한 얼굴에 빛이 비췄다. 피부가 더욱 투명해 보였다. 혈관이 파랗게 비쳐 보였다. 김명상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첩을 열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찍은 사진, 고등학교 때 분식집 앞에서 찍은 사진, 대학교 동아리 공연 사진.


- 이때가 좋았어.


김명상이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며 말했다. 과거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아침 7시, 회진 시간이 되었다. 의사와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김명상의 차트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의학 용어들이 오갔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좋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의사가 김명상에게 설명했다. 간 수치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신장 기능도 떨어지고 있다고. 더 강한 약을 써야 한다고. 김명상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의사가 나가고 김명상이 말했다.


- 점점 망가지고 있어.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는 내 손을 다시 잡았다.


- 자주 와줘. 특히 새벽에. 새벽이 제일 무서워.


약속했다. 자주 오겠다고. 새벽에도 오겠다고. 김명상이 처음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실을 나올 때 뒤돌아봤다. 김명상은 다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침 햇살 속에서도 여전히 외로워 보였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아이 같았다. 그날 이후로 새벽 전화는 자주 왔다. 때로는 3시, 때로는 4시, 때로는 5시. 항상 비슷한 시간이었다. 죽음이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이라고 김명상이 말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병원으로 갔다. 택시비가 부담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명상에게 새벽은 지옥이었고, 내가 유일한 구원이었다.


3월의 어느 새벽, 김명상이 전화로 말했다.


- 오늘은 오지 마. 그냥 통화만 하자.


그날 우리는 새벽 내내 통화했다. 김명상이 옛날 이야기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함께 놀았을 때, 함께 꿈꿨을 때. 목소리는 약했지만 추억은 선명했다.


해가 뜰 무렵 김명상이 말했다.


- 고마워. 새벽을 함께해줘서.


그 후로 한 동안 명상이에게 전화가 오지 않더니 어느 날 새벽,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김명상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의식이 없다고.


새벽 세 시의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깬다. 혹시 김명상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는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