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상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2주 만이었다. 의식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의사는 앞으로 3개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김명상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은 이번에는 1인실이었다. 보험이 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지만, 김명상의 부모님은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넓은 창으로 봄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김명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 말랐다. 팔에 꽂힌 링거 바늘 주변으로 멍이 시커멓게 들어 있었다. 혈관을 찾기 힘들어서 여러 번 찔렀다고 했다.
내가 들어가자 김명상이 고개를 돌렸다. 눈에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사람답지 않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지도책이 펼쳐져 있었다. 한국 전도였다. 빨간 펜으로 여기저기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강릉, 경주, 전주, 여수, 제주도. 김명상이 가고 싶은 곳들이었다.
- 여행 가고 싶어.
김명상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지도 위의 도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릉의 경포대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싶다고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해변에 앉아 태양이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것. 김명상은 붉은 태양을 손짓으로 그렸다. 허공에 원을 그리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수학여행 때 갔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그때는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고. 특히 석굴암의 본존불을 제대로 보고 싶다고 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도 했다. 의사가 절대 금주하라고 했지만, 죽기 전에 전주 막걸리 한 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비빔밥도 먹고 싶다고. 병원 죽만 먹다가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다고. 여수 밤바다를 걷고 싶다는 말도 했다. 버스커버스커 노래처럼 낭만적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바다 냄새를 맡으며 걷고 싶다고.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제주도는 마지막이었다. 한라산은 못 오르겠지만 낮은 오름을 올라가보고, 언제든 바다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섭지코지에서 바람을 맞고, 성산일출봉 아래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김명상이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더 자세한 계획이 적혀 있었다. 몇 박 며칠, 어디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 교통편은 어떻게 할지. 마치 정말로 갈 수 있을 것처럼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 일주일이면 충분해. 아니, 열흘 정도?
김명상이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김명상이 병원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링거를 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같이 가자.
김명상의 얼굴이 밝아졌다. 진짜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아니,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여행 계획을 더 구체적으로 세웠다. 인터넷으로 숙소를 검색하고, 맛집을 찾고, 가볼 만한 곳을 추가했다. 김명상은 노트북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검색했다. 가끔 기침이 나와서 멈추기도 했지만.
4월 초, 벚꽃이 만개했다. 병원 앞 공원에도 벚꽃이 가득했다. 김명상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휠체어라도 타고 나가고 싶다.
의사에게 물어봤다. 30분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동행해야 한다고. 산소통도 가져가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김명상은 휠체어를 타고 병원 앞 공원에 나갔다. 간호사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김명상은 행복해 보였다.
벚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김명상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꽃잎이 떨어졌다. 김명상이 손을 들어 꽃잎을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손에 힘이 없어서 꽃잎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쉬었다. 김명상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산소 마스크 너머로도 봄 냄새가 났다고 했다. 흙 냄새, 꽃 냄새, 새로운 시작의 냄새.
- 진짜 여행 가고 싶다.
김명상이 중얼거렸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30분이 지나자 간호사가 돌아가자고 했다. 김명상의 입술이 파래지기 시작했다고.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병실로 돌아온 김명상은 지쳐서 바로 잠들었다. 겨우 30분 밖에 나갔을 뿐인데 체력이 바닥났다.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명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깨어나자마자 또 지도를 펼쳤다. 이번에는 해외 지도였다.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프라하. 유럽 도시들에 동그라미를 쳤다.
- 다음 생에는 유럽 여행도 가야지.
김명상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 생이라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일주일 뒤, 김명상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 나왔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산소 마스크를 항상 써야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래도 김명상은 침대 머리맡에 지도를 붙여놓았다. 한국 지도와 세계 지도.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곳들을 매일 바라봤다.
어느 날 김명상이 말했다.
- 못 가도 괜찮아. 계획만 세워도 행복해.
하지만 그 말과 달리 김명상의 눈은 간절했다. 정말로 가고 싶어 하는 눈이었다.
4월 중순, 김명상이 갑자기 제안했다.
- 병원 옥상이라도 가자. 거기서 서울 야경 보자.
의료진을 설득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김명상이 계속 부탁했다. 마지막 소원이라고. 결국 저녁 7시, 의사와 간호사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허락이 떨어졌다.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명상이 내 손을 잡았다.
- 이것도 여행이야. 병원 안 여행.
옥상 문이 열리자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불빛들이 반짝였다. 남산타워, 한강 다리, 아파트 불빛들. 김명상이 휠체어에서 일어나려 했다. 간호사가 말렸지만 김명상은 난간까지 걸어갔다. 내가 부축했다.
바람이 불었다. 김명상의 얇은 머리카락이 날렸다. 병원 가운이 펄럭였다. 김명상이 두 팔을 벌렸다. 마치 날아갈 것처럼.
- 여기가 제주도야. 저기가 파리고. 그리고 저기는...
김명상이 서울의 불빛들을 가리키며 상상의 여행지를 만들었다. 나는 그 상상에 동참했다. 그래, 여기가 제주도고, 저기가 파리라고.. 10분쯤 지나자 김명상이 쓰러질 뻔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재빨리 휠체어에 앉혔다. 산소 마스크를 다시 씌웠다. 하지만 김명상은 웃고 있었다.
- 좋은 여행이었어.
병실로 돌아오는 길, 김명상이 말했다.
- 진짜 여행은 못 가겠지? 알아. 하지만 꿈은 꿀 수 있잖아.
그것이 김명상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병원 옥상에서 본 서울 야경. 상상으로 만든 제주도와 파리. 그것이 전부였다. 며칠 뒤 김명상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지도는 여전히 벽에 붙어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들이 선명했다. 가지 못한 곳들, 가고 싶었던 곳들, 꿈꿨던 곳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