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상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더 이상 일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김명상의 아버지가 전화로 알려주었을 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본관 12층 1204호실이라고 했다. 간병동 특실이었다. 병원 로비는 거대했다. 천장이 높고 유리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 밝음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고 있었으니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12층에 도착했을 때, 복도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른 병원보다 더 진한 냄새였다. 죽음의 냄새를 덮으려는 것처럼 강한 소독약 냄새. 1204호실 앞에 섰다. 문 옆에 '면회 제한'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감염 위험 때문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병실은 예상보다 넓었지만 의료 기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 인공호흡기, 링거 펌프, 산소 발생기. 각종 기계들이 내는 소리가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삐- 삐- 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쉬- 쉬- 하는 인공호흡기 소리가 섞여 있었다. 김명상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니, 누워 있다기보다는 놓여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침대가 45도 정도 세워져 있었는데, 완전히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자세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배였다. 복수가 차서 임산부처럼 불룩 나와 있었다. 가는 팔다리와 대비되어 더욱 기괴해 보였다. 배 부분의 병원 가운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피부가 당겨져서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얼굴은 더 이상 창백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노란빛이 돌았다. 황달이 온 것이었다. 눈의 흰자위도 노랗게 변해 있었다. 입술은 갈라져 있었고, 코에는 산소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양팔에는 수많은 바늘이 꽂혀 있었다. 링거, 수혈, 약물 주입을 위한 것들이었다. 멍이 시커멓게 들어 있었고, 어떤 부분은 부어올라 있었다. 혈관을 찾기 힘들어서 목에도 중심정맥관이 삽입되어 있었다.
김명상의 어머니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며칠 밤을 새웠는지 얼굴이 초췌했다. 김명상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뼈만 남은 아들의 손과 어머니의 손이 대비되어 보였다. 내가 들어오자 김명상이 눈을 떴다. 초점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를 알아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려 했다. 웃으려는 시도였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 왔...구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새는 소리 같았다. 김명상의 어머니가 물컵에 빨대를 꽂아 입에 대어주었다. 김명상이 몇 모금 마시려 했지만 삼키기 힘들어했다. 물이 입 옆으로 흘러내렸다. 침대 옆 테이블에는 약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르핀, 이뇨제, 간장약, 항생제. 차트를 슬쩍 봤더니 하루에 투여되는 약물이 20가지가 넘었다. 그런데도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창밖으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멀리 남산이 보이고,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하고, 웃고,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병실 안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아니, 거꾸로 가고 있었다. 죽음을 향해.
김명상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시 쉬고 오겠다고. 복도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오겠다고.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김명상과 단둘이 남았다. 김명상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내 손을 잡으려는 것 같았다. 손을 잡아주었다. 차가웠다. 그리고 가벼웠다. 깃털 같았다.
김명상이 무언가 말하려 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가까이 귀를 대었다.
- 미안...해...
겨우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무엇이 미안한지 물으려 했지만 김명상이 고개를 저었다. 말하기 힘든 것 같았다.
의사가 들어왔다. 젊은 레지던트였다. 차트를 확인하고 김명상의 배를 눌러봤다. 김명상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픈 것 같았다.
- 복수를 빼야 할 것 같은데요. 숨쉬기 더 힘들어지기 전에.
의사가 설명했다. 배에 바늘을 꽂아서 물을 빼내는 시술이라고. 일시적으로 편해지지만 금방 다시 찬다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김명상의 어머니가 돌아왔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김명상도 동의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고. 시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유리창 너머로 의료진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김명상의 배에 굵은 바늘을 찌르는 것이 보였다. 노란색 액체가 튜브를 통해 빠져나왔다. 김명상의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한 시간쯤 지나서 다시 들어갔을 때, 김명상의 배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3리터를 뺐다고 했다. 김명상이 숨쉬기가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
저녁이 되었다. 병원 식사가 왔지만 김명상은 먹을 수 없었다. 죽조차 삼키기 힘들어했다. 링거로만 영양을 공급받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갈 무렵, 김명상이 내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이 있었다.
- 내일...도...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도 오겠다고. 모레도 오겠다고. 김명상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실을 나오면서 뒤돌아봤다. 김명상은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기계들이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었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소리들. 하지만 그 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밖을 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서울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김명상은 저 불빛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병원 밖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김명상의 손의 감촉이 계속 느껴졌다. 차갑고 가벼운 손. 뼈만 남은 손. 그래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손. 아직은 살아있는 손.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김명상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불룩한 배, 노란 얼굴, 마른 팔다리. 그리고 간신히 올린 미소. 그것이 마지막 미소가 될까 봐 두려웠다.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김명상이 찾는다고. 또 새벽이었다. 죽음이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기도했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기도했다. 명상이가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