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김명상이 퇴원하고 나서 이상하게 변했다. 아니, 어쩌면 원래의 김명상으로 돌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병원에서 나온 그날 저녁, 김명상은 나를 불러냈다. 홍대 클럽 거리였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사람이 갈 곳은 아니었다.
클럽 입구에서 김명상을 봤을 때 놀랐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헐렁했지만 나름대로 멋을 낸 것 같았다. 머리도 왁스로 세웠다. 창백한 얼굴에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났다. 남자 화장품이었다. BB크림을 바른 것 같았다.
- 오늘부터 조르바처럼 살 거야.
김명상이 클럽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음악이 귀청을 때렸다. 일렉트로닉 비트가 가슴을 두드렸다. 김명상은 바로 바 쪽으로 갔다. 위스키를 주문했다. 스트레이트로.
- 조르바가 누구야, 명상아, 너 술 마시면 안 되잖아.
내가 말렸지만 김명상은 단숨에 위스키를 들이켰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침이 나왔다. 하지만 또 한 잔을 주문했다.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김명상이 음악에 몸을 맡겼다. 춤이라고 하기엔 어설펐다. 그냥 몸을 흔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명상의 표정은 진지했다. 마치 생의 마지막 춤을 추는 것처럼.
어떤 여자가 김명상에게 다가왔다. 스무 살 초반으로 보였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김명상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김명상이 여자의 골반를 잡았다. 여자도 거부하지 않았다.
새벽 2시, 클럽을 나왔다. 김명상은 그 여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취해서 비틀거렸다. 여자가 김명상을 부축했다.
- 어디서 좀 쉬었다 갈래?
김명상이 여자에게 물었다. 대담한 제안이었다. 여자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다음 날 김명상에게 전화했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 있었다.
- 죽을 뻔했어. 하지만 좋았어.
김명상이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김명상은 거의 매일 밤 외출했다. 클럽, 바, 술집을 전전했다. 다양한 여자들을 만났다. 하루는 대학생, 하루는 직장인, 하루는 외국인. 김명상의 핸드폰에는 여자들의 번호가 늘어갔다.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 말보로였다. 독한 담배였다. 한 번 피울 때마다 심하게 기침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 폐가 이미 망가졌는데 뭐.
김명상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연기가 김명상의 투명한 얼굴 주위를 감쌌다.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
12월 31일, 새해 전야. 김명상이 큰 파티를 연다고 했다. 자기 집에서. 부모님은 여행을 가셨다고 했다. 아마 김명상이 일부러 보낸 것 같았다.
파티에는 20명 정도가 왔다. 대부분 김명상이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여자가 많았다. 다들 김명상을 오빠라고 불렀다. 김명상은 각각의 여자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누구에게는 지적인 작가, 누구에게는 아픈 예술가, 누구에게는 열정적인 연인.
술이 물처럼 흘렀다. 소주, 맥주, 와인, 위스키. 김명상은 가리지 않고 마셨다. 폭탄주도 만들어 마셨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투명한 피부 아래로 혈관이 불거져 보였다.
음악을 크게 틀었다. 록, 일렉트로닉, 힙합이 뒤섞였다. 김명상이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셔츠를 벗어 던졌다. 마른 상체가 드러났다. 갈비뼈가 다 보였다. 수술 자국들이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 이게 나야! 씨발, 좆같은 몸이지만 아직 살아있어!
김명상이 소리쳤다. 여자들이 환호했다. 누군가는 김명상의 상체를 만졌다. 김명상은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자정이 되자 불꽃놀이를 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폭죽을 터뜨렸다. 김명상이 하늘을 보며 웃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김명상의 얼굴이 비춰졌다. 행복해 보였다. 진짜로 행복해 보였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마지막에 한 여자만 남았다. 연극배우라고 했다. 김명상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김명상과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나가려 했지만 김명상이 붙잡았다.
- 있어. 외롭잖아.
김명상이 내 옆에 앉았다. 여자는 김명상의 다른 쪽에 앉아 있었다. 셋이서 와인을 마셨다. 김명상이 자신의 병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던 얘기였다.
- 나 오래 못 살아. 의사가 그랬어. 잘해야 2년.
여자가 김명상의 손을 잡았다. 김명상이 여자를 끌어안았다. 둘이 키스했다. 내 앞에서. 나는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김명상이 또 붙잡았다.
- 가지 마. 증인이 필요해. 내가 살았다는 증인.
그날 밤 김명상은 계속 술을 마셨다. 담배도 피웠다. 여자와 계속 스킨십을 했다. 마치 마지막 밤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새벽 5시, 김명상이 화장실에서 토했다. 피가 섞여 나왔다. 여자가 놀라서 119를 부르려 했지만 김명상이 막았다.
- 괜찮아. 자주 있는 일이야.
김명상이 물로 입을 헹구며 말했다. 거울에 비친 김명상의 얼굴은 시체 같았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불타고 있었다.
2004년 1월, 김명상은 더 과격해졌다. 매일 다른 여자를 만났다. 술은 아침부터 마셨다. 담배는 하루에 두 갑씩 피웠다. 몸은 급격히 나빠졌다. 체중이 40킬로그램대로 떨어졌다.
어느 날 김명상의 집에 갔더니 낯선 여자가 나왔다. 김명상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나를 보고도 태연했다.
- 명상이는 자고 있어요.
여자가 말하고는 나갔다. 들어가 보니 김명상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온몸이 울긋불긋 했다.
깨운 뒤 물었다.
- 왜 이러는 거야?
김명상이 담배를 피우며 대답했다.
- 죽기 전에 다 해보고 싶어서.
- 이러다 진짜 죽어.
- 그게 운명이지.
김명상이 연기를 천장으로 뿜었다. 연기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2월, 김명상이 또 입원했다. 간수치가 위험 수준이었다. 의사가 절대 금주하라고 했다. 하지만 김명상은 병실에서도 몰래 소주를 마셨다. 간호사한테 걸려서 혼났다.
- 진짜 빨리 죽고 싶어요?
젊은 간호사가 울면서 말했다. 김명상이 그 간호사의 손을 잡았다.
- 죽으려는 게 아니라 살려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김명상은 진심인 것 같았다.
퇴원하자마자 김명상은 다시 클럽으로 갔다. 이번에는 나도 따라갔다. 김명상이 위험해 보였다. 언제 쓰러질지 몰랐다.
클럽에서 김명상은 미친 듯이 춤췄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이 가빠서 헐떡거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 살아있어! 씨발, 나는 살아있어!
김명상이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봤다. 하지만 김명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밤, 김명상은 세 명의 여자와 함께 클럽을 나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김명상이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을.
하지만 이해도 했다. 김명상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60년에 걸쳐 할 경험을 1년에 압축해서 하려는 것이었다. 술과 여자와 담배. 그것이 김명상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