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부터 주변에서 남편과 서로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나는 사진을 봐도 잘 모르겠는데 눈매나 풍기는 느낌이 비슷하다나.
외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의 성격은 누가 봐도 정반대다. ISTJ와 INFP. MBTI조차 하나 빼고 모두 다르다.
나는 현실적, 사고적, 계획적이라면 남편은 이상적, 감성적, 즉흥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나 우울해서 빵 샀어.
잠깐 유행했던 T와 F를 구분하는 질문에 있어서도 우리의 답변은 역시나 달랐다.
상대적으로 T발C지 라는 욕을 먹는 T입장을 대변하자면,
왜 빵을 샀지 > 빵을 사면 우울이 해결되는 건가 > 그렇다면 우울할 땐 빵을 사줘야겠군!> 근데 무슨 빵을 샀을까? > 다음에도 혹시 우울해 보이면 그 빵 사줘야지!
라는 사고의 흐름으로 상대에게 무슨 빵을 샀는지, 왜 빵을 샀는지 묻게 된다.
반대로 F는 '우울해서'에 포커싱 되어 감정적인 위로부터 건네곤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왜 우울할까? > 이유를 물으면 혹시 더 우울해지려나? > 우선 위로부터 해주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지!
상대의 우울함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은 같으나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내뱉는 말은 서로 다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 차이는 드러난다. 의도는 같을지언정 내뱉는 말이 달라 사소한 것에도 오해가 종종 생기곤 했다.
여보, 양말이 왜 여기에 있어?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라 그저 양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어서, 왜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았는지 궁금해서,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다음엔 그 장애물을 없애고 해결하기 위해서 묻는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그저 깜빡하고 다른 곳에 둔 것뿐인데 왜 두었냐는 말이 공격적으로 느껴지고 본인이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감정이 상하게 된다.
헛웃음이 나오는 이런 상황들이 재밌어서 그럼 어떻게 말해주는 게 좋은지 물었다.
"우리 여보 양말 갖다 놓는 거 깜빡했나 보구나?"
대답을 듣고 서로 엄청 웃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편은 내가 웃는 게 웃겨서..
다른 예시 상황들도 듣고 보니, 해결방법을 먼저 얘기하기보다는 상대가 왜 그랬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공감을 먼저 해주면 된다'라고 나름 정리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내뱉기 전 남편이 해준 말들을 떠올리며 ~해서 그랬구나, ~하기 힘들었나 보구나 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반대로 남편은내가 싫어하는 두리뭉실한 감정적인 공감보단 해결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오해가 생길 일도 없었고 서로 만족해하며 지냈다.
여보 요즘 너무 T화 됐어!!
너무 서로에게 맞췄던 걸까. 남편이 너무 T스러워졌다..!
얼마 전부터 새롭게 시작한 운동 덕에 근육통이 와 팔이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 내게, 내일 또 운동하면 풀린다는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내 아픔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주는 말이 없어 문득 서운해졌다. T도 사람인데, T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닌데..
"아니 나 여기가 아프다고~~"
- 오랜만에 운동했으니 당연한 거야~ 그럴수록 같은 부위에 운동 더 하면 거기에 근육 생길걸?
"너 T발 C야..? 원래 여보로 돌아와!!"
(#. 왜 T가 욕을 먹는지 알게 된 순간..)
갓 1년 신혼부부로 살아보니 '부부는 닮는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던인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맞추며살다 보면 닮아갈 수밖에.
다만 그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린 그동안 맞춰간답시고 그 정도를 넘어서 자아를 잃고(?) 너무 상대방화가 되었으니까.
10년 연애를 했음에도 결혼이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고유의 내 모습은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맞춰가는 적당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린 여전히 서로 맞춰가며 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