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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Jan 23. 2024

누수 가해자가 되어보신 적 있나요?

Part20. 누수 가해자의 피해보상 일지

신혼집에 노크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아랫집 누수.  그 대가는 혹독했다. 급히 누수 원인을 찾아 해결한 뒤 남은 것은 피해보상이었다.


누수탐지 업체가 다녀간 다음날, 아랫집 따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어머니가 바쁘셔서 본인과 보상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며.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계속 본인 말씀만 하시고 내 앞에선 화만 내시다가 남편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말씀하시던 것에 기분이 살짝 상했던 참이었다.


따님과 멋쩍은 인사를 나눈 후 누수 초보(?)인 우리 둘은 우선 각자 업체를 알아보고 연락하자며 번호를 교환했다.




1) 공사 업체 정하기

-벽지, 장판 종류 파악하기
-최대한 아랫집에서 고른 업체로 선정하기

누수는 처음인지라 관련 블로그를 엄청 찾아봤던 것 같다. 공사업체는 누가 정하는지에 대해선 딱히 정해진 게 없어 보였으나 통상적인 가격대를 알아야 할 것 같아 애용하던 숨고 어플을 통해 견적을 요청했다.


피해보상은 '원상복구'의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 벽지와 장판 종류로 복구해 주면 된다. 종류에 따라서 가격이 차이 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누수 첫날 관리소 직원분과 확인한 아랫집의 벽지종류는 합지벽지, 장판은 2.5~2.7T였다.


확인한 스펙으로 몇몇 업체에 상담을 해보니 대략 23평 평수의 안방 한쪽 벽면과 천장 도배, 바닥 장판을 합치면 40만 원대로 확인했다.

실제 아랫집 피해 모습 (창문쪽 벽면과 창문쪽 천장만 젖었다)


그중 바로 공사가 가능한 한 곳을 따님께 보내드렸으나 아랫집에서 알아본 업체는 70만 원이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우리는 누수 피해가 있던 한쪽 벽면만 견적을 받은 거였고, 아랫집은 안방 전체 도배 가격을 알아보신 거였다.



뭐야, 이 참에 리모델링이라도 할 거야 뭐야.





처음엔 실제 젖은 곳만 원상복구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안방 전체가 젖은 것도 아니고 누수가 있던 곳은 딱 창문 쪽 벽면과 일부 천장이었다.

더 알아보니, 같은 벽지 모델이더라도 출고시기마다 색이 살짝 다르기도 하고 새로 바른 쪽과 아닌 쪽의 차이가 커 보이기 때문에 아주 적은 부분이 젖은 것이 아닌 이상 보통 전체 도배를 한다고 한다. 하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원래 멀쩡하던 방에, 내 탓도 아닌 윗집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복구 후에 한쪽 면만 다른 벽지를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긴 했다..!


추가로 한 블로그에선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라면 아랫집에서 고른 업체를 선정하길 추천했다. 추후 공사에 문제가 있을 경우 오히려 중간에서 또 고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아랫집에서 고른 업체로 하자!

전체 도배 가격은 내가 알아본 곳들과 비슷해서 아랫집에서 고른 업체로 하기로 하고, 공사 전 방문을 하셨을 때 같이 설명을 들었다. 잘 가 내 70만 원..!



2) 피해보상 범위 확인하기

-보상 범위는 초반에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중요


누수 첫날 관리소 직원들과 함께 확인한 누수피해는 안방의 벽지와 장판, 침대 그리고 잔짐들이다. 도배와 장판은 아랫집에서 정한 업체로 하기로 했으니 남은 건 침대와 잔짐들에 대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침대 구매 비용을 보내드리기 위해 기존에 사용하셨던 침대 모델명을 여쭤보았다. 너무 오래전에 구매해서 구매이력 확인이 어려워 최대한 비슷한 프레임과 매트릭스 구매처 링크를 보내주셨다.

사실 나쁜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좋은 침대를 일부러 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계속 마주칠 이웃이기도 하고 이왕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생각에 오케이를 하려던 참이었다.



잔짐들이야 거의 옷가지여서 세탁비 추가하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갑자기 붙박이장 해체, 재설치 비용을 추가로 말씀하셨다. 분명 관리소 직원분들이 붙박이장을 열어 안쪽까지 확인했을 땐 멀쩡해서 나한테 다행이라고까지 하셨는데?


도배, 장판 공사를 위해서 붙박이장을 해체하고 전체 시공을 한 후 다시 붙박이장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 게다가 붙박이장 하단부는 새로 교체해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엔 붙박이장 얘기도 안 꺼내셨는데 갑자기요..?

나름 좋은 마음으로 침대 비용을 배려하려던 찰나에 일이 점점 커진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붙박이장 하단도 젖었어요.
다시 한번 와보시겠어요?


아랫집 붙박이장


다시 방문해서 직접 보니 내가 무지했었다. 하긴 우리집도 인테리어 할 때 도배장판 후에 붙박이장을 설치했으니 해체 후 재설치를 하는 게 맞긴 하겠네.

하단 수리 비용은 침대로 흐른 물이 퍼져 붙박이장 아래까지 물이 들어가 하단부를 뜯어야 했다고 하셨다. 첩첩산중이로구나!!


처음 보상범위에 대해 얘기할 땐 없던 항목들이 자꾸 추가되는 느낌이 들어 가해자인 주제에 나도 모르게 자꾸 의심이 들었나 보다. 아랫집도, 우리도, 누수가 처음이라 초반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던 것 같다. 보상 범위는 초반에 잘 확인하고 논의할 것을 추천한다.




3) 기타

-지인찬스! 없던 지인도 만들어내기
-(선택사항) 합의서 작성하기


피해보상의 복병은 '붙박이장 해체 및 재설치 비용'이었다. 아랫집에서 고른 도배장판 업체가 추천한 곳은 90만 원이었다. 인테리어 쪽에 무지하다 보니 적당한 가격대가 얼마인지 알지도 못했고 주변에 관련 지인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지인이라.. 엇 리집 인테리어를 해주신 사장님이 있었지! 워낙에 공사를 잘 챙겨주시기도 했고 동네 분이셔서 이 동네 물가도 잘 아실 것 같았다.


전후 사정을 설명드리고 우리가 들은 비용들이 합당한 지 여쭈었다. 도배장판 비용은 통과. 같거나 비슷한 모델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다는 꿀팁도 말씀 주셨다. 다만, 붙박이장 해체 재설치 비용은 말이 안 된다며 다른 곳을 알아볼 것을 추천해 주셨다.


위 내용을 아랫집에도 말씀드렸고 다행히 동의해 주셔서 다른 곳을 알아보고 결론적으로 35만 원에 해결했다. 90만 원이 35만 원이 되는 기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도배, 장판 70만 원
붙박이장 해체, 재설치 35만 원 (하단 교체비 5만 원)
침대 프레임 & 매트리스 70만 원 (+배송비 5만 원)
= Total 185만 원


피해 보상 비용은 총 185만 원이 들었다. 여느 블로그에서 추후 계속해서 보상을 추가 요구하는 못된(?) 경우도 있다며 합의서 작성을 추천하는 글을 봤다. 우리도 쓸까 했지만 부동산 관련 일을 하시는 아빠찬스로 확인해 보니 연락을 주고받은 이력으로도 충분히 갈음이 된다고 하여, 최대한 문자로 모든 내용을 주고받고 기록을 남겨놓았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모든 피해 보상은 추석연휴 전에 마무리되었다. 보상 범위 왈가왈부부터 공사 업체 선정, 공사비용이 합당한 지까지. 여러모로 진이 빠진 여름이었다. 이후 더 이상의 누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비만 오면 마음 졸이며 혹시 몰라 베란다를 열어본다.


 

되돌아보면, 우린 적반하장의 가해자였던 것 같다.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를 의심까지 했으니까. 당시엔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오히려 아랫집에서 배려해 주셨던 것이 더 많았던 듯하다.

만약 우리 윗집에서 누수 피해를 줬다면 난 어땠을까. 인테리어 한 지 1년도 안된 분노를 담아 젖은 옷이며 가방이며 침구류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 받으려고 했을 수도.


구축아파트에 살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 같다. 자연재해 같은 일명 구축재해랄까.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올여름도 기대가 된다. 또 무슨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두근 부들부들!!



다음편) 나한테 하는 말인가? 구축아파트의 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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