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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Jan 15. 2024

누수 대처 방법을 아시나요?

Part19. 누수가해자가 되었습니다(2)

한바탕 집안의 물을 치우고 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전편 참고) 누수가해자가 되었습니다(1)



(딩ㅡ동)
아랫집에서 왔어요. 물이 한가득 새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아주머니가 서 계신다. 문을 열자마자 인사도 없이 대뜸 누가 화를 내니 상황 파악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화를 내던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옆에 계시던 관리소 직원분들이 같이 내려가서 보기 위해 우리집에 먼저 들렀다고 설명해 주셨다.





아랫집 안방에 흐른 내 눈물, 아니 누수..


어젠 분명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늘 새벽에 안방에서 자던 큰 아드님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에 잠에서 깼다고 한다. 한두 방울이 아니라 안방 창문 쪽 천장에서부터 벽까지 물이 흘러 침대까지 물이 뒤덮였단다.


(좌) 침대 틀 (우) 침대 틀 바닥 부분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창문과 가까운 침대 매트는 이미 흠뻑 젖었고 매트를 들어내자 원목으로 된 침대 틀에도 물자국이 선명했다.


어제 우리집에 물난리가 났을 때 원인을 찾지 못한 채로 돌아갔던 관리소 직원분들은, 이 물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안방 쪽 베란다와 안방을 찬찬히 들여다보셨다. 황망하게 서있는 내게 아랫집 아주머니가 쉴 새 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저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새벽에 갑자기 이 난리가 나니까. 아들이랑 우리 다 잠도 못 자고 물 짜내고 해도 계속 나오니까."

- 죄송합니다..

"저기도 좀 봐보세요. 아무리 닦아도 계속 젖어요. 여기도 봐보세요. 우리가 잠도 못 자고 어휴 여기도 보세요."

- 죄송합니다..


누수는 대부분 윗집이 가해자라는 말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원인은 더 살펴봐야겠지만 죄송하다는 말씀 밖엔 드릴 말이 없었다. 출근을 하셔야 된다는 아랫집 주인 아주머니와 번호를 교환한 뒤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1차로 확인한 관리소 측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누수 원인이 딱히 발견되지 않아 업체를 부를 것을 추천해 주셨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기도 하고 아침부터 갑작스레 생긴 이 사태에 머릿속이 하얘져 보통 어떻게 처리하는지 여쭈었다.


누수 원인 찾기 > 원인 해결하기 > 아랫집 보상하기


보상의 범위는 아랫집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랫집 안방 붙박이장까지는 물이 안 들어간 걸로 확인해 주셔서 도배, 장판, 그리고 여타 젖은 가구들 정도 보상해 주면 될 거라 말씀 주셨고, 보험이 있다면 보험사에 청구할 것을 조언해 주셨다.






1) 누수 원인 찾기

누수 탐지 업체 부르기 (아랫집과 일정 조율 필요)


며칠 후에 또 비 예보가 있어 한시가 급했다. 숨고 어플에 견적 요청 글을 올리고 리뷰들을 살펴 경험이 많은 업체를 바로 골랐다. 아랫집 아주머니께 편하신 날짜와 시간을 여쭙고 업체와 방문 일정을 정했다.


방문 당일, 업체 직원 두 분과 함께 아랫집 벨을 눌렀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응답도 없고 전화도 안 받으셔서 당황한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상하의 없이 팬티만 입은 거구의 사나이가 이제 막 잠에서 깬 얼굴로 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아들이 있을 거라고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우리가 방문할 걸 알고 있음에도 거의 나체로 문을 여는 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가해자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당황한 나보다 업체 측에서 먼저 들어가셨고 빤스남은 당황한 내색도 없이 앞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으셨다..




아랫집과 우리집을 모두 본 후 누수탐지 업체에서 확인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아랫집 누수 원인 : 안방 베란다 우수관의 방수층 크랙 사이로 물이 들어가 아랫집으로 흘러감

-우리집 물난리 원인 : 베란다 창틀의 물받이 구멍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늦어 베란다 창틀로 물이 넘쳐 들어옴


우선 아랫집 누수 원인은 우수관 속 방수층의 크랙이었다. 비가 많이 오던 그날, 폭포처럼 우수관에서 물이 내려오던 때에 넘친 물이 새어 들어간 것. 

인테리어 공사 때 잘못된 건지 물었으나 그 문제라기보다는 물이 잘 내려가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약해진 틈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하셨다.


이와 별개로 우리집 바닥에 물이 고여있던 원인은 베란다 창틀에 고인 빗물이 물받이 구멍으로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전주인 분이 물이 더 빠져나갈 수 있는 부분에 임의로 시멘트를 발라놓으셨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대체 왜 바르신 거죠)


누수 탐지 비용은 더 놀라웠다. 기본 출장비 11만 원, 탐지비 11만 원을 합해 총합 22만 원을 지불했다.




2) 원인 해결하기 

우수관 주변 방수, 우수관 관통 공사
일상배상책임보험 확인하기


속시원히 원인을 확인한 덕에 해결은 일사천리였다. 일정을 잡고 우수관 주변 방수와 관통 공사를 진행했다. 총비용은 부가세 포함 88만 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험 가입 여부! 일상배상책임보험이 있다면 보험비로 청구가 가능하다.

일상배상책임보험
-피보험자가 타인에게 인명, 재산 상의 피해를 입힘으로써 발생한 법률상 배상책임에 대한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
-단독 보험 불가 (화재보험, 운전자보험, 어린이 보험의 특약으로 가입 가능)
-자기부담금 2~50만 원 (그외 보험사 부담)


불행히도 우린 따로 특약을 들지 않아 이번 비용은 모두 우리 선에서 지출하게 됐다. 이번 계기로 특약을 추가할 때에도 30년 이상된 구축아파트를 받아주는(?) 보험사가 많지 않아 애를 좀 먹었다. 혹시 내 보험에 일배책 특약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금융감독원의 포털인 '파인' 사이트에 접속하여 '보험신용정보조회'를 하면 된다.



추가로 알게 된  하나의 슬픈 사실은, 바퀴벌레 막겠다고 몇 달 전 설치했던 우수관 트랩이 누수를 가속화시켰다는 이다.

트랩으로 인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빠르게 내려가지 못했고, 고여있는 동안 크랙이 있는 방수층 사이로 물이 새어가 아랫집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바퀴벌레 안 나와서 신나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게 물난리에 기름을 부었다니..  (참고글 : 구축아파트에서 바퀴벌레를 만났다면?)





공사를 한 이후 다행히 더 이상의 물난리는 없었다. 오래된 우수 관통도 교체하고 벌레 방지용 트랩 대신 우수관 커버를 씌우니 미관상으로도 그렇고 소음도 나지 않아 좋았다. 다음에 이사 가면 트랩은 개나 주고 처음부터 우수관 커버를 씌워야지...!



다음 글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아랫집 피해보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해자지만 할 말은 해야겠거든요..



다음편) 누수가해자의 피해보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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