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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Aug 11. 2024

임산부석에 앉아본 적 있나요?

Part3. 임산부석에 대한 고찰, 그리고 반성

임신 전엔 한 두 달만 돼도 딱 보면 임산부구나 하고 티가 나는 줄 알았다.


근데 웬걸, 두 달이 지나도, 석 달이 지나도, 네 달이 지나도 당최 티가 나질 않는 것이다. 직접 만져보면 아랫배가 살짝 묵직하고 단단해진 게 느껴졌지만, 육안으로는 임산부 배인지 똥배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제야 알았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자세히 들여다봐도 임산부임을 눈치채기가 어렵다는 것을.. 특히 초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임산부 뱃지'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무적일 줄만 알았다...)

임산부 '먼저'


그렇다면, 왜 임산부임을 알려야 할까?

임신을 하기 전엔 저 뱃지가 왜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차피 배가 불러오면 임산부로 보일 테고, 배가 불러왔을 때부터 몸이 힘들어질 텐데 그전에 굳이  임산부임을 알려야 할 이유가 있나...?


역시 아주 큰 오산이었다. 육안으로 임산부임이 티가 나기 전부터 입덧, 속 쓰림, 저혈압, 혈액순환, 부종, 배땡김 등 온갖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절대 안정이 필요했다. 특히나 초기에는 유산의 위험도 큰 위험한 시기이므로 더더욱 안정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대중교통에는 임산부석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버스에는 노약자석과 함께 핑크 좌석이, 지하철에는 4-5칸에 한 칸씩 다인석 양쪽 끝에 핑크 좌석이 임산부 배려석이다. 특히 지하철에는 바닥에도, 좌석 바로 뒤에도 떡하니 '임산부 먼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배려'이지 그 배려가 '의무'는 아니라는 점이 참 애매하다.  달에 한두 번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편히 임산부석에 앉아서 간 것은 확률적으로 50% 정도이다. 그 반 중에서도 반은 임산부석이 비워져 있어서, 반은 누군가 앉아있었지만 내 임산부 뱃지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50%의 확률로 못 앉는 경우는 사유가 다양하다. 임산부가 아닌 분이 앉아서 잠에 들어버린 경우, 잠들지는 않았지만 앞에 임산부가 왔는지 관심 없이 핸드폰만 보는 경우, 분명 임산부 뱃지를 봤지만 모른 체하는 경우까지.



하루는 퇴근길에 사람이 너무 많고 그날따라 몸이 너무 힘들어 일부러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단순히 내 SNS에 빡친 감정과 함께 업로드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찰칵하는 소리에 제발 위를 올려보고 깨달으라는 의도가 더 컸다.


50대로 보이는 부부였는데, 남편은 옆자리에서 내 뱃지를 유심히 보시고도 가만히 계셨고, 아내 분은 뭐가 그리 심각하신지 핸드폰에 푹 빠져 계셨다.


"찰칵!"


내 카메라 소리에 잠시 고민하던 남편 분은 이제야 깨달은 듯이 아내분께 본인 자리로 옮기나를 가리키며 여기 비켜드리라고 하셨다.


"아우 진짜"

아내 분은 남편분께 외마디와 함께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내게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지하철에 있다 보면 가끔 이런 안내 방송이 나온다.

"저희 지하철에는 임산부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초기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세요."


예전엔 관심이 없던 이 안내 방송이 지금의 내겐 참 오아시스 같다. 방송이 나오면 그래도 임산부석에 앉은 분이 주변을 둘러봐주지 않을까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말이다.


결혼 전의 나 또한 임산부석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가끔 다른 곳에 자리가 다 찼을 땐 임산부석에 앉아 있기도 했다. 나름 임산부가 오면 비켜줄 생각이었다.

임산부가 된 지금은 방송처럼 자리를 아예 비워두는 것이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임산부 뱃지를 일부러 더 보여주며 눈치를 보는 임산부와, 매번 주변을 둘러볼 수 없는 승객 모두 껄끄럽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탑승 전 임산부 뱃지를 태그하면 임산부석에 '곧 임산부가 탑승할 예정입니다. 혹시 임산부가 아니시라면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라는 방송이 미리 나오면 어떨까?

임산부 뱃지가 가까이 오면 임산부석에 진동이 오면 어떨까?

하지만 배려가 의무가 되는 순간, 또 다른 논란이 생기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애매하다.


임산부석이 매번 비워져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제발 앉아있는 분이 나를 한 번만 봐주길 기대할 뿐이다. 혹시라도 임산부석에 앉는다면, 문이 열릴 때마다 주변에 임산부가 없는지 봐주길 바란다. 고개 숙이고 핸드폰만 보거나 잠에 들 거라면 다른 자리에 앉아주시면 어떨지..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산부석에 앉은 아줌마 대신 옆자리임에도 대신 자리를 비켜준 어느 대학생, 뒷자리였음에도 어깨를 툭툭 치며 본인 자리를 양보해 주던 아주머니, 나 대신 임산부석에 앉은 아줌마에게 한소리 해주시던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도 출산 후에 임산부석은 비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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