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명함이 있다 이말이야.
젊은 사업자 모임에서 나를 당혹게 했던 것은 명함이었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소개를 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어떠한 제품을 만드시는지 어떤 것을 하는지 여쭤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몇몇 분들이 자신이 어떠한 인물인지 보여줄 수 있는 명함을 꺼내서 보여주셨다. 영유아 소품 숍을 운영하시는 분의 명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브랜드의 로고, 이름과 대표, 전화번호 인스타그램 아이디까지 단번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멋지다. 진짜 멋지다. 근데 난 뭘 보여줘야 하지?'
나의 빈곤한 지갑에는 오래돼서 스크래치로 흐릿한 주민등록증이 전부였다. 그래서 부리나케 인스타 사진을 보여드렸다.
그렇게 명함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아직 명함을 만들 레벨은 아니니까 하며 그냥 무심코 넘겼다.
"아직 제대로 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주제에 무슨 명함이야"
무의식적으로 나는 명함을 만들어서 보여줄 레벨이 아니라는 것이 깔려있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읽고 있던 책 '비상식적 성공 법칙'에서 직함의 위력이라는 챕터가 얼얼할 정도로 나의 뺨을 후려쳤다. 저자는 자신의 셀프 이미지 바꾸기 위해서 명함에 자신이 원하는 직함을 넣는다.
"Super energizing teacher, Super prolific writer, Super loving father.슈퍼 선생님, 작가, 아빠"
필요할 때 알맞은 직함을 만들어서 스스로가 정한 한계를 넘고자 하였다. 그 챕터를 읽는 순간 젊은 사업가 모임에서 명함을 주고받았던 순간이 떠오르며 찌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 내가 나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그들과 선을 긋고 있었구나. 왜 난 명함을 만들면 안 될 놈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대표' 'CEO'라고 써 놓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업자등록증 있으면 다 대표 아닌가?"
그래서 오늘 당장 내가 원하는 직함을 다 때려 박은 나만의 명함을 만들어서 주문했다. 저자처럼 각기 다른 직함 명함을 만들면 비싸니까 내가 되고 싶은 직함을 다 명함에 때려 박았다.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고, 사업가가 되고 싶다.
약어로는 CAAE (CREATIVE ARTIST, AUTHOR, ENTREPRENEUR) 스스로 만들어 놓고 간지가 나는데 하며 자화자찬했다. 한편으로 너무 과한가 싶었지만 누구에게 명함을 보여줄 것도 아니기에 일단 때려 박았다.
과연 이게 이런 직함이 무슨 소용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멋지게 박혀있는 나의 이름과 브랜드명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묘한 만족감을 준다. 나스스로가 의문이 들때 미래의 '나' 자신이 넌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보면 볼 수록 묘한 뿌듯함이 든다. 명함이 집에 도착하면 지갑에, 핸드폰에, 방안에 붙여야지. 그리고 몇 번이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아주 꼭꼭 씹어 읽어봐야지.
"난 창의적인 아티스트, 작가, 사업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