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는 실수할 권리를 갖고있다.
우리는 영어를 틀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심자는 틀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채워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관문입니다. 난 모르는 초심자다. 그러니 자신 있게 틀려도 된다.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하여야 합니다.
꼭 학교를 가든 모임을 가든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는 껴있습니다. 어쩜 그렇게도 발음이 유창하고 고급스럽게 문장을 만드는지. 내가 말하는 발음이 이상할까, 혹은 비웃음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대로 말 한마디도 못한 채로 모임이 끝나고 맙니다.
저 또한, 그러한 경험을 수 없이 했습니다. 말을 해서 틀릴까 봐. 혹, 영어를 쓰고 스펠링이 틀릴까 봐 주저하기를 수십 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인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우고 하려하는 시도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 저는 어디서 왔습니다” 그 한마디에도 그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근차근 모르는 단어를 알려주고, 심지어 욕도 알려주면서 한국어를 배우려 하는 그 마음가짐을 자체를 존중합니다.
반면에 한국은 영어를 틀린다는 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습니다. 사교육 열풍, 대입, 사회생활까지 어디를 가나 영어를 요구하니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마치 죄악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죄악”.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인정 못하게 하는 문화 자체가 모순입니다.
저희가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못해서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영어는 분명 유용한 툴입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잘하게 되었을 때 이득은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틀려야 합니다. 하지만, 틀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 감정 자체가 걸림돌이 되어서 여러분의 언어 학습을 방해합니다.
아일랜드에서 봉사단체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일랜드인 네이티브 친구가 특정 단어 알파벳이 생각나지 않아서 제3국에서 온 친구 앞에서 스펠링 철자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한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도 영어가 어려워, 모르니까 찾아보는 거야” 그때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일랜드 젊은 여성 친구에게 “Do you know some other Irish dialects?” (다른 아일랜드 방언을 알고 있니?)를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는 당당하게 저에게 “dialect가 뭐야?” 물어봤습니다.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원어민도 모르는 단어가 있네. 원어민이라고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그래,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공부하면 원어민보다 나아질 수 있겠구나" 그 생각에 이르자 기분이 허탈했습니다.
모르니까 찾아본다. 당연합니다. 영어를 잘 모르니까 공부하는 겁니다. 모름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모습 앞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는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모름을 인정하고 틀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틀리세요. 틀리고 찾아보면 됩니다. 틀렸다고 누가 웃었나요? 그때 더 당당하게 배우려는 자세로 틀린 것을 교정해달라고 하세요. 그 당당함 앞에는 여러분이 스펠링이 틀리거나, 발음이 이상하다 해서 비웃을 사람은 감히 없습니다.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하다 틀렸다고 지적하면 고마움을 표시하고,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물어보면 됩니다. 모름을 인정하고 외국 친구들 앞에서 “What is the meaning of the word?” (그 단어 의미가 뭐야?)가 입에 붙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의 영어실력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