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kirk》 사람이 곧 희망인 것을
이 글은 국내 유일의 OTT 미디어, <OTT뉴스>에 2월 13일 자로 기고된 글입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난파선을 경험한 사람은 잔잔한 바다 앞에서도 떤다." 하지만 잔잔하지 않은 바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라면 얼마나 떨겠는가. 제2차 세계 대전 작전 중 하나인 됭케르크 철수에 대한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장르: 액션
개봉: 17. 7. 20.
시간: 106분
연령제한: 12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2,805,578명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 분)가 엄청나게 쫓기고 있다. 쏟아지는 총알 사이로 대응해보려 하지만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선 총을 버리고 뛰는 수밖에 없다. 운 좋게 프랑스군이 지키는 곳에 도착해 살아남지만 이곳은 덩케르크, 사실상 고립되었다. 해안가에 줄줄이 서 있는 영국군은 질서 정연하지만 폭격이 떨어지는 그 순간, 뿔뿔이 흩어지기 바쁘다. 폭격이 끝나면 다시 질서를 지킨다.
토미는 전우를 묻어 주던 깁슨(아니린 버나드 분)과 눈이 마주쳐 부상자 호송을 위한 줄을 탄다. 그러면 남들보다 먼저 구조선을 타겠지 싶어서 눈치 빠르게 뛰어든다. 하지만 구조선은 출발을 앞뒀고 폭격은 현재 진행형. 건널 판을 거두기 전 운이 좋게 탑승에 성공했지만 부상병만 탑승 가능해 쫓겨나고 만다. 토미와 깁슨은 기지를 발휘해 부두에 머문다.
한편 도슨(마크 라이런스 분)과 피터(톰 글린카니 분), 조지(배리 키오건 분)는 덩케르크 구출을 위해 본인 소유의 요트를 출발시키고 공군 파리어(톰 하디 분)는 공중을 엄호하기 위해 몰살 직전의 덩케르크로 향한다. 사령관 볼튼(케네스 브래너 분)은 잔교를 지키기 위해 부상병을 위한 배를 떠내려 보내게 된다. 결국 부상병 구출을 위해 배마저 침몰. 40만 명 철수 계획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토미와 깁슨은 또 다른 전우, 알렉스(해리 스타일스 분)와 함께 다시 한번 구축함에 탑승하는 데 성공한다. 언제 또 침몰할지 모르는 배이기에 따뜻한 차 한 잔보다 출구를 먼저 확인한다. 도슨의 민간선은 침몰한 비행기에 있던 병사(킬리언 머피)를 구출해내지만 겁에 질린 그에게 차마 덩케르크로 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배를 돌린다고 말했지만 그 이상은 해줄 수 없어 병사가 있던 방문을 잠그는 게 최선의 배려.
파리어가 덩케르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연료계가 고장 나 기름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를 알려줄 동료 2호기도 독일기를 만나 추락했다. 토미와 깁슨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여전히 험난하다. 어뢰를 맞아 다시 또 침몰하는 배, 깁슨이 타이밍 좋게 지하실을 열어준 덕분에 도슨과 알렉스는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병사는 요트가 덩케르크로 가는 것을 보고 도슨을 제압하려 드는 과정에서 조지가 머리를 다치고 눈이 안 보이는 치명상을 입힌다. 조지가 많이 아픈 상황이지만 도슨은 덩케르크행을 감행한다. 그러던 중 적 폭격기와 마주한 기뢰 제거함을 확인하고 이를 엄호하던 아군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도우러 간다.
토미와 깁슨, 알렉스는 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좌초된 민간선을 타기 위해 뛴다. 방어선 바깥에 위치한 배에서 늦게 온 선원과 함께 밀물 때 만을 기다린다. 도슨은 파리어와 같이 싸우던 콜린스(잭 로우든 분)의 비행기가 추락한 것을 보고 구하러 간다. 낙하산 대신 바다에 추락하는 것을 택한 콜린스지만 지붕이 열리지 않아 익사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토미와 깁슨, 알렉스가 있던 배는 몇 발의 총알을 맞아 침몰하기 직전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몇 명이 나가야 하는 상황. 알렉스는 말이 없던 깁슨이 독일군 첩자이기에 그가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상 그는 프랑스군이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중 총알은 쏟아졌고 배는 슬그머니 출발하기 시작했다.
파리어가 적기를 격추하지 못하자 기뢰 제거함이 폭파하고 말았다. 도슨의 배는 콜린을 가까스로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토미와 깁슨, 알렉스가 있는 배는 총알받이가 되었고 독일군은 총공세를 시작해 방어선을 허물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럼에도 여러 개의 민간선이 덩케르크에 도달하면서 희망이 엿보이기 시작했던 그 순간, 간신히 출발한 구축함이 폭격을 받아 침몰하기 시작했다. 폭격기를 쫓는 파리어, 끝내 격추에 성공했지만 기름이 없어 추락하게 된다. 깁슨의 배는 결국 침몰해 탈출해야 하는 상황, 깁슨과 다투던 알렉스지만 깁슨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깁슨은 무언가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도슨의 배에는 침몰한 배를 타던 병사들이 탑승하기 시작했고 토미는 헤엄쳐 민간선을 향한다. 적기가 다시 돌아오는 상황, 파리어가 격추에 성공했지만 비행기가 폭파하면서 기름이 섞인 바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헤엄치던 병사들은 불타 죽어난다. “집에 데려다줘”라고 외치며 탑승한 병사들, 하지만 연료가 없는 파리어는 집에 가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만다. 마지막 적기가 덩케르크를 위협하는 상황, 파리어가 마지막으로 격추에 성공하며 덩케르크를 돌아본다. 도슨의 배 역시 폭격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도슨의 훌륭한 조종 실력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다.
철수는 대부분 패배지만 적어도 덩케르크에서는 승리였다. 조지와 파리어는 영웅이 되었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이 있었던 토미와 알렉스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로 인해 승자가 되었다. 오늘의 철수는 위대했으니.
영화 <덩케르크>는 덩케르크 혹은 됭케르크 철수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바다, 하늘, 땅에서 풀어쓴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잔교에서는 배에 타야만 하는 육군의 이야기를, 바다에서는 덩케르크 구출 작전에 동참한 민간선의 사정을, 하늘에서는 "공군은 뭐했냐"라는 비아냥을 뒤로한 채 최선을 다하는 스핏파이어 조종사의 상황을 담았다. 시점과 시간도 다른데 잔교에서는 일주일, 바다에서는 하루, 하늘에서는 한 시간의 진행 상황을 풀어쓴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아챌 수 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루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다운 연출법이다.
실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220척의 군함과 650척의 선박들이 338,226명의 병사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군함들이 도왔고 그래서 "작은 배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민간선의 구출 작전 합류는 실상 많은 군인들을 구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군함이 구해낸 비율이 80%라고 한다.
하지만 처칠이 말했듯 악천후 속,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탄과 증가하는 포병 사격의 집중 아래서 목숨을 걸고 아군을 구출해냈다는 사실은 동기부여가 되기 충분했다. 당시에는 패색이 짙었지만 철수에 성공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모두가 알듯이 결과는 연합군의 승리.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기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영화 <덩케르크>는 12세 관람가다.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시각적으로 담아냈기보다는 청각적인 부분에 신경 썼고 바다와 하늘이라는 푸른 이미지를 주로 담으면서 피와 시체에 대한 잔인함을 덜어냈다. 의도적인 연출이었는데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두고 "전쟁 영화가 아닌 현실의 시간을 재구성한 생존 드라마"라고 표현하며 "작은 배들의 기적"의 '드라마틱'한 부분에 집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의 참혹함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비행기 엔진 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시계 초침 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감정선과 불안감을 떠안고 토미, 도슨, 혹은 파리어가 된다. 끝내 작전을 성공시켰을 때 이들과 이입되면서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온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건 이런 청각적 효과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현실에 사는 우리가 전쟁통에 빠질 수 있는 순간은 영화 속이 아니면 어렵다. 하지만 '생존 드라마'라는 결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다. 암울하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 희망이 되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코로나라는 전쟁통에서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 역시 사람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훌륭하게 코로나로부터 철수해보자, 도움의 손길은 여전히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