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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y 12. 2020

[사냥의 시간 (2020)]

《Time to Hunt》 꿀 수 있는 꿈이 악몽뿐인 세상에서

디스토피아 (Distopia),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 그게 한국이 되었을 때를 그려보자. 어쩌면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온라인으로 공개되었으니. 여기 한 영화는 절망이 된 세계를 그리려다가 절망적으로 개봉해버렸다. 본의 아니게 절망적인 현실로 인해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윤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사냥의 시간》.

ⓒ  movie.naver.com

이후의 내용은 설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준석 (이제훈)의 출소에 맞춰 맞이하러 간 장호 (안재홍)과 기훈 (최우식). 준석은 감옥에서 알게 된 형님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기 위해 돈을 찾아 눈에 불을 켠다. 재미를 위해 간 도박장에서 준석은 상수 (박정민)를 만나게 되고 도박장을 털어야겠다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한다.


 밑바닥에서 성공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장호가 던진 그 말에 기훈은 마음이 움직여져 불법이 판치는 세상에서 불법적으로 돈을 훔치려 한다. 총기를 빌리고 CCTV 위치까지 확인하는 등 조직적으로 계획한 준석과 친구들은 계획대로 도박장을 털어내는 데까지 성공한다. 장호가 돈과 함께 하드디스크를 가져가자 도박장 조직원들은 하드디스크를 찾기 위해 추적한다. 결국 총기상 봉식 (조성하)을 협박해 준석의 정보를 알게 된 조직원들은 조금씩 죄어오기 시작한다.


 이상한 징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도박장에 출근한 상수는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도박장에서 벗어난다. 태국으로 떠나려 하는 준석, 장호, 기훈. 하지만 준석은 계속 불안감을 느끼고, 혼자 남은 상수를 걱정한다. ……

ⓒ imdb.com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 (2010)》 이후로 발표한 두 번째 작품. 영화에서의 성공을 도와줬던 배우들이 대거 출현했다. 이제훈과 박정민은 다시 한번 친구로 재회했고 배제기, 특별출현 조성하까지. 윤성현 감독과의 호흡이 모두 좋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젊은 감독의 연출법답게 조금 더 트렌디한 음악과 카메라 워킹, 그리고 《파수꾼》과는 달리 긴박하고 몰입하기 쉬운 연출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초반의 전개 속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든다. 천천히 사람을 매료시켰던 전작과는 다른 모습이다.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은 어느 영화에서나 숨 막히게 다가온다. 아직은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어쩌면 진짜 저렇게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함이 공존한 채 영화를 보게 때문이다. 경제가 망하면서 달러로 매매가 이뤄지고 우리가 재미를 볼 수 있는 건 도박 같은 불법스런 것 밖에 없다. 등장인물 중 한 (박해수)은 도박이 아닌 사람의 목숨으로 재미를 본다. 죽기 직전까지 준석을 위협하고 재미로 살려준다. 숨바꼭질하듯이. 영화 속 세계는 이미 상식이 무너진 지 오래다.


 총을 들고 싸우고 어떤 이유로든 상대를 격멸해야 한다는 설정은 마치 게임 '배틀그라운드' 같다. 등장인물들 모두 다양한 복장으로 다양한 종류로 총을 겨눈다. 게임 같은 설정에 앵글도 1인칭 혹은 3인칭처럼 잡는다. 내가 준석이 되어 직접 당하고 직접 쏜다. 이런 느낌을 잘 전달해줬다.



- 네가 살던 세상이 아니야, 명심해. 어디에 있든 벗어날 수 없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숨통을 죄어올 때, 우리는 안심시키는 위로의 말을 내뱉는다. 상수가 얼른 도망치래, 우리 멀리 왔으니 못 쫓아와, 아무 일 없어- 등. 말은 그럴싸하지만 마음은 진정이 안된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그걸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족속들이 등장해버렸다. 당하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디스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거고 그래서 희망이 없는 것이다. 죽이는 쪽은 급한 게 없지만 죽는 쪽은 모든 게 긴박하다.

ⓒ movie.naver.com

 사냥감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되려 능동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결말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붉은 영상미를 보여주지만 마지막만큼은 파래진다. 하지만 파란 곳에 있더라도 마음 만은 붉은 바다다. 그 바닷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사냥감의 역할이었던가.


 에메랄드빛 바다가 꿈꾸며 한탕 크게 해냈지만 결국 꾸는 꿈은 검붉은 악몽이었다. 믿고 있었던 선은 절대 선이 아녔다. 믿을 수 있는 건 내 가족들 뿐. 다시 좇아간다, 악몽 속에 있는 가족들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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