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Battle After Another》, 현재에 경종을 울리다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딸을 잃게 된 암울한 상황이라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톰 크루즈처럼 멋지고 화려하게 딸을 구출해 내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아버지는 늙었고, 과거의 총기를 잃었으며, 마음에 비해 몸이 따르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대변해 친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식 잃은 울분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장르: 범죄/액션/스릴러/드라마
개봉: 25.10.01.
시간: 162분
연령제한: 15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7.3만 명(개봉 4일째 기준)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혁명적 폭력” 혹은 “끝없는 전투”가 해결책이라고 믿는 ‘프렌치 75’는 급진적 자유 투쟁 단체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기 위해 테러리스트를 자처한다. 프렌치 75의 실질적 리더 퍼피디아 베벌리힐스(테야나 테일러 분)는 밀입국을 하려다 잡힌 불법 이민자들을 구출해 내는 작전을 지휘했고, 스티븐 J. 록조 대령(숀 펜 분)을 굴복시키면서도 성희롱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퍼피디아는 폭탄 제조 등으로 본인을 돕던 팻 칼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과 사랑에 빠졌고, 아이를 낳으며 가정을 꾸렸으나, 반골 기질로 의해 엄마라는 역할 대신 다시 테러리스트의 리더로 활동하다 체포된다.
록조를 퍼피디아에게 희롱을 당한 후 이상 성욕이 더 강해져 퍼피디아를 스토킹했고, 체포된 퍼피디아에게 프렌치 75 동료들을 밀고하면 보호해 주겠다고 말한다. 퍼피디아의 정보를 받은 록조는 프렌치 75를 궤멸시키기 시작했고, 퍼피디아는 죄책감으로 인해 록조를 떠나 잠적한다. 팻은 딸 윌라(체이스 인피티니 분)와 함께 박탄 크로스로 떠나고, 동료들이 한둘 체포되는 가운데 16년이 지나 윌라는 가라데를 배우는 어엿한 아이로 성장했다.
한편, 백인 우월집단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팀 스미스(존 후게나커 분)가 반이민 정책을 최전방에서 벌이던 록조를 자신의 모임에 초대한다. 급진적 급우 집단의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 록조는 과거 프렌치 75의 동료들을 잡아 정보를 얻어내고, 현상금 사냥꾼 아반티(에릭 슈웨이그 분)를 통해 윌라를 제거하려 한다.
이 정보를 미리 알게 된 또 다른 프렌치 75의 동료, 디앤드라(레지나 홀 분)가 윌라를 구출하고, 밥 역시 비밀 통로를 통해 간신히 벗어나지만, 과거의 암구호를 기억하지 못해 윌라가 향하는 은신처에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밥은 윌라의 가라데 스승 세르지오 세인트 카를로스(베니시오 델 토로 분)의 도움을 받아 수사망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옥상에서 건물 사이를 뛰려다 넘어지면서 경찰에 체포된다. 세르지오는 본인을 희생해 또 한 번 밥을 구해내고, 그 사이 윌라는 은신처인 수녀원에 도착하면서 엄마 퍼피디아가 프렌치 75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록조는 은신처를 급습해 프렌치 75 동료들을 체포하고, 윌라와 마주하게 된다. 록조는 곧바로 윌라와 DNA 검사를 하는데, 친자임을 확인하면서 아반티에게 윌리의 처리를 맡긴다. 밥은 세르지오로부터 받은 총으로 록조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대신 록조와 퍼피디아의 관계를 알게 된 스미스가 스포츠카를 타고 직접 록조를 산탄총으로 쏜다.
아반티는 용병들에게 윌라를 맡겨놓지만, 어느 순간 다시 돌아와 그들과 맞서다 죽는다. 윌라는 아반티 덕에 탈출하면서 차를 타고 도주하지만, 스미스가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를 본 밥 역시 스미스를 추격하고, 차 세 대가 오르락내리락 사막의 언덕길을 달린다. 스미스의 추격을 눈치챈 윌라는 사각지대를 활용해 차량 충돌을 유도하고, 암구호를 대지 못하는 스미스를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연이어 도착한 밥은 윌라와 감동의 재회를 나누고, 죽은 줄 알았던 록조는 그토록 원하던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입회에 성공하나 싶었으나, 가스를 마시며 사망한다. 집으로 돌아온 밥은 윌라에게 퍼피디아의 편지를 남겨주고, 아이폰 사용법을 배운다. 윌라는 밥과 퍼피디아의 사랑을 확인하고, 오클랜드의 시위에 합류하러 떠난다.
<테이큰>이라는 클리셰가 있음에도 영화 속 밥이 윌라를 구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은 상당히 저조했다. 극 중 밥은 이십대의 투지에 비해 박탄 크로스로 이주한 이후로는 마약에 절여 무능력한 아빠로 변했다. 그런 그가 위기감을 느낀 건 윌라의 상실, 즉 자기 인생의 전부인 딸을 잃었을 때였다. 밥은 부랴부랴 총을 찾고, 암구호를 기억하려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심지어 옥상에서 떨어져 테이저 건을 맞았을 땐, ‘결국 해내지 못했구나’라는 절망감 대신 ‘그럴 줄 알았다’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무능력한 밥에 비해 주변 인물들은 그야말로 유능했다. 가라데 스승 세르지오는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함을 매 순간 유지했고, 밥을 두 번이나 구해냈으며, 밥이 필요로 했던 총을 구해다 줬다. 그 사이 세르지오는 박탄 크로스의 불법체류자들을 질서정연하게 구출해내고, 밥을 위해 경찰에게 잡히며 희생양 역할도 수행한다. 과거 동료 디앤드라도 록조보다 빠르게 윌라를 구출하며 은신처까지 이동시킨다. 두 인물 모두 밥과 달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급진적인 면모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낳는다. 조금 더 예민하게 보자면 백인 혁명가 밥에 비해 유색인종의 세르지오와 디앤드라는 실질적인 혁명을 보일 수 있는 리더였다.
결국 세르지오와 디앤드라는 체포되고, 밥은 자신의 친자가 아닌 - 이를 알지 못한 것도 어쩌면 무능함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 윌라를 구한 이후 다시 한번 혁명가의 면모를 보인다. 아이폰 사용법을 배우려는 밥의 모습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① 후세대인 윌라로부터 배우겠다는 열린 자세를 갖추게 됐고 ② 기존의 보수적이고 무기력했던 기성세대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로 혁명의 선배(밥)였으나 변화 의지를 잃게 되면 후세대(윌라)를 잃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가 부녀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밥은 무능력하고,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끝까지 노력하는 캐릭터다. 보통 ‘노력’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끝없는’이 조금 더 포인트다. 영화 제목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끝없는 전투’로 번역돼 대사로 나온다. 이 대사를 뱉은 퍼피디아는 “모든 혁명은 악마와 싸우다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는 걸로 끝난다”며 변화 의지를 포기하고 배반자로 돌아서는 계기에 대해 설명한다. 이처럼 혁명 운동의 선배 세대는 거창한 목표와 급진적인 정신으로 폭력적이면서도 과감한 방법을 택했으나, 같은 인종을 살인하고, 결국에는 테러리스트에 머무는 모순을 보이며 자멸한다.
그 혁명 세대가 후세대를 낳았다. 밥과 퍼피디아가 윌라를 낳았고, 디앤드라가 ‘용감한 비버 자매회’를 운영하며 또 다른 후배들을 육성한 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과거를 덮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후세대까지 깡그리 묶어 연대 책임을 물며 규탄 받고 압박당한다. 마치 퍼피디아의 딸이라는 이유로 윌라가 ‘쥐새끼’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프레임과 프레임 간의 갈등이 반복되고, 그 프레임이 꽤 오래 전부터 형성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프레임을 깨는 것을 혁명이라 불렀으나, 그 과정은 다소 이율배반적인 나머지 진척 사항 없이 ‘갈라치기’로 끝난다. 정치적 좌우뿐만 아니라 인종적 차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블랙 코미디는 지구 반대편의 아시안에게 그럴싸한 웃음거리였으나, 미국 현지에서는 실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얻는 게 없는 전투임에도 끝이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모순이다. 혁명가라고 말하지만 변화 의지가 없는 밥, 흑인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만 백인 우월주의 집단에 가입하길 희망하는 록조, 사회적 변화를 목표로 운동을 시작했으나 결국에는 은행털이를 하는 퍼피디아, 주요 인물이 모두 자기모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 몇 시인가”라는 암구호의 대답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를 지배한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이었다. 실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우리를 지배하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이 많다는 걸 강조한다. 젊은 팻이 밥이 되는 동안, 왜 밥은 세르지오나 디앤드라가 되지 못했는가? 바로 이 시간을 허투루 사용했기 때문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정치적 토론을 기피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민자 문제로 시작해 인종적 갈등, 기득권과 사회적 약자 간의 마찰 등을 통째로 아우르기 때문이다. 현실을 투영한 영화적 배경은 우리에게 경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스크린을 보며 주인공 밥에 몰입해 무기력함과 무능력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 교훈의 끝은 어쩌면 아이폰 안에서 머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사회운동가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불편했거나 조금이라도 웃음이 나왔다면, 당신은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대강 알고 있는 셈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이 점을 노린 게 아닌가 싶다.
세르지오는 계속해서 마음속 파도를 상상하라고 한다. 동양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 있는 ‘파도’는 마지막 카 체이싱 액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윌라, 스미스, 그리고 밥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윌라가 차를 멈춰 세워 스미스를 제거한 것처럼, 우리가 조금이라도 세심하게 현재를 진단해 문제를 제거한다면 조금이라도 단합된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퍼피디아(Perfidia)는 스페인어로 배신(Perfidy)을 의미한다. 실제로 극 중 퍼피디아는 프렌치 75 동료들을 배반한다.
현상금 사냥꾼 아반티(Avanti)는 이탈리아어로 내일을 뜻한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를 각색한 작품이지만, 원작과 달리 모성애보다는 부성애에 집중한다.
과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 대신 <타이타닉>에 출연했으나, 다소 아쉬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약 28년 만에 호흡을 맞춘 영화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는 본인의 이름을 밝히는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의 극 중 이름인 ‘피터 파커’를 말했는데, 실제로 디카프리오는 샘 레이미 감독의 제안을 받아 <스파이더맨>에 출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본인 대신 친구 토비 맥과이어를 추천했고, 그렇게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부작이 탄생했다.
록조 역의 숀 펜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이름만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
체이스 인피니티의 첫 영화 작품이다.
백인 우월주의 모임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서 나오는 캐럴 ‘Hark! The Herald Angels Sing’는 흑인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의 버전이다. 피츠제럴드는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사진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