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The Movie》, 뻔한 맛 제일 잘 하는 방법의 교과서
여러 가지 변수가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 그 속에서 연대와 헌신, 희생과 성장이 방향성을 만들고, 그 방향이 마침내 성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스포츠를 사랑하게 만든다. 영화 <F1 더 무비>는 무릇 인간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성장드라마’를 아주 뻔하면서도 제일 잘 만든 교과서 같은 작품이며, 동시에 극장에서만 줄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담아낸 미미(美味)다.
감독: 조셉 코신스키
장르: 스포츠/드라마
개봉: 25.06.25.
시간: 155분
연령제한: 12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470.3만 명(개봉 68일째 기준)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건달 혹은 카우보이, 마치 오늘만 살기 위해 몰입하는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분)는 데이토나 24에서 하위권으로 밀리던 팀을 선두로 이끄는 구세주지만 우승이나 트로피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곳에서 달리길 바라는 헤이스는 오랜 친구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부탁 아닌 제안으로 포뮬러 원 최하위 팀인 익스펜시파이 에이펙스GP에 합류한다.
에이펙스에는 떠오르는 유망주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 분)가 있었으나, 소니는 조슈아를 풋내기 취급하면서 서로의 갈등이 깊어진다. ‘꼴통’과 ‘꼰대’의 만남에서 고통받는 에이펙스는 순간의 희망과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 반전을 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선보인다.
소니의 전략이 몇 차례 들어 맞자, 에이펙스는 특유의 시너지를 낳기 시작한다. F1에서 보기 드문 여성 테크니컬 디렉터는 소니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차량을 개조했고, 소니는 ‘JP 밀어주기’ 전략을 돌발적이면서도 과감하게 실행하며 점차 에이펙스의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상위권까지 올라온 상황, 소니의 지시를 무시한 조슈아가 차량 사고를 당하면서 긍정적이었던 분위기가 꺾이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익명의 제보로 인해 업그레이드 된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소니 역시 사고를 당하며 리타이어한다. 루벤은 이 덕에 30년 전 소니가 당한 큰 부상을 알게 됐고, 심각한 부상이라는 이유로 소니를 해고한다.
더는 달릴 수 없는 소니는 에이펙스 이사회 멤버 피터 배닝(토바이어스 멘지스 분)으로부터 불쾌한 제안을 받게 되고, 다시 도약하고 싶은 조슈아와 에이펙스는 F1 캘린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부다비로 향한다…
‘정보의 홍수’에서 ‘도파민의 홍수’가 된 현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것이 도파민의 주재료가 될 것인가? 생각보다 답은 단순하다. 인간은 아주 심플하게도, 불확실성에서 확실함을 찾을 때 도파민이 터진다. 도박과 게임이 이런 프로세스를 잘 이해한 시스템이며, 애석하게도 인류 역사에서 도박이 흥행하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
극단적인 도파민이 아니라 건강한 도파민을 경우로 들자. 스포츠는 어쩌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나 열등감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라면, 내가 그 팀의 어떤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는 현실성과 이뤄내기 어려운 것을 달성했다는 성취감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것이 21세기에도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다.
각본 없는 드라마는 스포츠의 메인 셀링 포인트다. 그렇다면 스포츠를 영화관으로 옮길 때는 각본이 생기니 그저 드라마가 된다. 이것이 스포츠란 장르가 영화계에서 쉽사리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만약 스포츠 영화가 성공했다면 대개 각색된 실화거나, 실화에 비슷하게 잘 포장된 각본을 잘 담은 경우다.
<F1 더 무비>는 후자의 경우로 가장 교과서적인 성공을 잘 풀어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포뮬러 1이라는 진입장벽이 높고, 엘리트 혹은 부자들의 스포츠처럼 보이는 이 장르를 몰입감 넘치게 만들었다.
스포츠 콘텐츠에서 성공의 공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발단에서는 몰락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 주인공이 판을 뒤집을 거 같은 가능성을 전개에서 보여준다. 그러나 기존의 구성 혹은 시스템에 충돌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에는 서로의 연대와 희생, 헌신 등의 이유로 절정에 도달한다. ‘우리가 해냈어’ 혹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어’와 같은 멘트와 함께 결말. 결말이 만약 절망적이라면, 그건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 구조에서 사이 사이에 주인공이나 주변인의 사연이 나오고, 구구절절한 관계성이 위기와 절정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든다. 보통은 이 부분에서 신파적인 문제를 빚곤 하는데, <F1 더 무비>는 ‘우리 이번에 우승 못 하면 망해’와 같은 클리셰 장치와 언뜻 예상가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면 이 정석과 같은 영화가 복잡미묘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사랑하는 현 세대를 매료시켰을까?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음향과 앵글,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은 당연하게도 포뮬러 1이라는 스포츠가 만든 것이므로 과감하게 배척하겠다. 먼저 캐릭터를 잘 짰다. ‘언더독’ 혹은 ‘한물간 퇴물’이라는 캐릭터도 클리셰에 가깝지만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관계성을 짜느냐도 미묘한 매력을 낳는다. 브래드 피트는 너무나도 영화 스타라 주인공으로 몰입하기 쉽지만, 댐슨 이드리스는 영화 속에서도, 밖에서도 ‘루키’다. 캐스팅이 주는 캐릭터성이 찰떡같은 나머지, 우리는 F1 선수들에 대해 몰입하기가 쉬워졌다. 이들을 보고, ‘아, F1 선수들은 멋있고, 화려하고, 그렇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여차하면 나락으로 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 감칠맛 나는 하비에르 바르뎀이나 킴 보드니아, 케리 콘돈은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스토리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클리셰 파괴’는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F1이라는 스포츠는 이미 창의적인 주제다. 팬층도 두텁고, 열광하기 적절한 스포츠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F1이 축구처럼 대중적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F1 더 무비>를 앞두고 입문을 도와주는 여러 콘텐츠가 이미 나왔다. <포드 V 페라리>도 그랬고, <F1, 본능의 질주>도 있었다. 그래서 관중들은 <F1 더 무비>를 보거나, 본 후 여러 콘텐츠를 ‘파도타기’하 듯 더 살펴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현실에서 열리는 포뮬러 원과 실제 선수들에 대한 매력적인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F1은 야구나 축구와 달리 배울 것이 더 많았고, 이런 학습의 진척도를 높일 수 있는 콘텐츠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스토리라인을 더욱 매력적으로 도왔다.
본업이 스포츠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 특히나 한 종류의 스포츠에만 목매다는 사람으로서 - 다른 스포츠를 보고도 카타르시스를 터질 수 있냐는 질문에 항상 갸우뚱했던 거 같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에 대한 재미와 열광할 만한 기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러 방면에서 자극제다. <탑건: 매버릭>을 만들었던 조셉 코신스키가 <스파이더헤드>로 줬던 실망을 다시 이렇게 감동으로 되돌리다니, 이 역시 도파민이다. 코신스키 감독은 이제 SF 장르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을 현실로 끌고 오는 방법을 배운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한스 짐머의 음향은 거를 것 없이 훌륭하다.
마지막으로, 근래 들어 영화계는 한국 힙합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어느새 힙합은 안 멋져’라는 구절이 떠오를 정도로 국내 영화계는 ‘안 멋진’ 콘텐츠는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됐다. 충무로를 떠들썩하게 했던 베테랑 감독들이 아니면 소비자들은 티켓을 사지 않는다 - 그마저도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흥행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멋진’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F1 더 무비>가 보여줬다. 끝내주는 음향과 트랙리스트, 화려하면서도 몰입되는 영상 효과와 스토리라인,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연기력의 조합은 영화에서 줄 수 있는 별미를 여전히 제공한다. 그리고 우린 이런 별미를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극대화되기에, 기꺼이 돈을 주고 보는 것이다.
촬영을 위해 FIA(국제자동차연맹)와 F1의 10개 팀 모두 설득이 필요했고, 이들을 담기까지 약 1년 정도 걸렸다. 촬영은 2023, 2024 시즌의 여러 그랑프리 주말 동안 진행됐다. 메르세데스의 페라리의 사이에 가상의 포뮬러 1 팀을 위한 차고가 설치됐다.
조슈아와 소니가 당한 사고는 모두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인다. 특히 소니는 1990년 마틴 도넬리의 실제 사고 사례와 유사한데, 이 사고로 도넬리는 우측 다리 부상을 입었고, F1 커리어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F1의 전설적인 선수, 루이스 헤밀턴에게 자문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에 비해 실제 F1 규정, 전략과는 반하는 이야기가 다수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예선 시작 후에는 드라이버를 교체할 수 없으며, 떠돌이 생활을 한 소니가 ‘2개 대회의 풀 시즌 중 80% 이상 참가’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FIA 슈퍼 라이선스를 갖고 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전략 면에서 의도적으로 충돌하는 고의 사고는 모터스포츠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특히 세이프티 카를 활용하는 전략은 과거 페르난도 알론소의 우승을 유도했던 2008년 크래시게이트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F1 최악의 우승으로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현재 F1에서는 영화 속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아이폰의 애플 TV 앱을 사용하면 햅틱 예고편을 시청할 수 있다. 애플 비전 프로를 사용하면 브래드 피드가 직접 운전하는 장면을 이머시브 비디오로 볼 수 있다.
에이펙스의 차량은 메르세데스와 협력해 제작됐다.
브래드 피트는 F2 챔피언 루치아노 바케타에게 5개월간 훈련받으며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소화할 수 있도록 운전을 배웠다.
애플은 에이펙스의 차량에 노출되는 브랜드를 모으기 위해 실제로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타미 힐피거, 샤크닌자, 익스펜시파이 등이 영화 속 스폰서로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블랙핑크의 로제가 'Messy'라는 곡으로 영화 트랙리스트에 참여했다. 로제는 마이애미 그랑프리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체커 깃발을 흔든 바 있다. 참고로 로제의 노래는 소니와 케이트의 키스신에 등장한다. 한편, 페기 구도 'D.A.N.C.E'라는 트랙으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 선수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막스 베르스타펜의 대사가 다소 얌전하다. 이는 실제와는 사뭇 다르다(?)
사진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