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2025)]

《No Other Choice》, 분재(分財)를 위한 과감한 분재(盆栽)

by 아무개

식물을 가꾸는 분재(盆栽)는 고상하고 우아한 모습과 달리 과격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분재용 철사를 사용해 뿌리와 가지의 모양을 잡고, 때로는 가지치기를 통해 식물의 효율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가족 등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행위인 분재(分財)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따른다. 재력(財力)이 있어야만 나눌 것이 생기고, 또 내 밥그릇이 공고해야 대물림할 부가 생긴다. 나의 기술력을, 경쟁력을, 유산을 지키고, 내 자식들에게만 주기 위한 싸움은 분재(盆栽)의 과정처럼 보인다. 이와 유사하게 종이밥을 먹어가며 악행을 거름 삼아 내 가족과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영화, <어쩔수가없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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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장르: 스릴러/코미디/범죄/드라마

개봉: 25.09.24.

시간: 139분

연령제한: 15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250.1만 명(개봉 18일째 기준)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적어도 ‘다 이루었다’라는 감흥 뒤에 이어지기엔 부적절한 말이었다.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 분)는 장어와 함께 돌연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두 아이, 반려견 두 마리와 어릴 적부터 살았던 주택을 지키기 위해 구직 활동을 한다.


25년 넘게 먹은 게 결국 종이밥이라고, 만수는 잘 나가는 제지 회사 재취업을 노려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만수는 최선출(박희순 분)의 자리가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최선출을 죽이려고 옥상에서 화분까지 들어봤으나, ‘누군가 빠지면 공간이 생긴다’는 말에 그의 빈자리를 노리는 잠재적 후보들이 떠올라 주저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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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지 않으면 다 죽이는 수밖에. 만수가 택한 건 경쟁력 쌓기보다는 경쟁자 제거였다. 만수는 가상의 회사 ‘레드 페퍼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구직 활동을 하는 경쟁자들의 스펙을 확인한다. 만수는 자신을 3순위라 평가하고, 참전 용사 아버지의 권총을 들고 앞선 1, 2순위의 후보자들의 뒤를 밟는다.


1순위 후보 구범모(이상민 분)는 우아한 음감실을 따로 둔 단독주택에 거주하지만, 추레하고 불결하게 알코올에 젖어 사는 인물이었다. 범모는 아내 이아라(염혜란 분) LP 카페라도 차리자고 제안하지만, 범모는 25년 넘게 종이로 먹고살았기에 ‘어쩔 수가 없다’며 장인 정신을 드러낸다. 이를 스토킹한 만수는 범모의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범모를 죽이러 집에 침입한다. 그러나 범모의 집에 범모는 없었고, 아라가 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걸 목격한다. 당황한 만수는 집을 빠져나오다 집으로 향하는 범모를 보고 두 번 당황한다. 급하게 면접이 잡혔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로 범모를 잡아보지만, 범모는 결국 아라의 외도를 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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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에 빠져 떼굴떼굴 구르는 범모를 뒤로 둔 채, 만수는 다시 한번 집에 침입해 암살을 도모한다. 음감실에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듣는 범모, 음악 소리를 키워 암살하려는 만수, 만수를 보고 ‘올해의 펄프상’ 상패로 만수를 제압하려던 아라는 고급스러운 음감실에서 뒤엉키며 싸운다. 범모는 외간 남자를 만수로 착각하고, 아라는 본인의 외도 사실을 범모가 알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이 와중에 범모는 만수에게 총을 한 발 맞았고, 불륜을 알고도 묻지 않은 것에 노한 아라가 한 발 더 쏘면서 사망한다. 만수는 크게 당황하며 쫓기듯 도망치고, 범모가 땅에 묻힌 걸 확인한 후 본인의 유일한 범행 증거인 권총을 회수한다.


2순위 후보 고시조(차승원 분)는 구둣가게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하나 있었고, 제지업에 대한 예술성도 있는 고시조. 만수는 그런 시조를 꾀어 권총으로 살인하고 시신을 트렁크에 싣는다. 집에 돌아와 시조가 들어갈 땅을 파다 잠에 든 만수. 아침이 되니 경찰이 찾아오고, 제 발 저려 죄를 고백하려 했으나 막상 잡혀간 건 아들 시원(김우승 분). 집안의 경제적 활동을 돕기 위해 친구 동호(임태풍 분)의 아버지 원노(김형묵 분)네 핸드폰 가게를 털다 체포된 것이다. 미리는 속옷까지 벗으며 미인계로 선처를 요구하다가, 불륜 증거를 보유한 만수가 협박조로 원노를 위협하며 사건을 무마한다. 시원이 훔친 핸드폰은 만수가 미리 파 둔 구덩이로 향하고, 그날 밤 만수는 시조의 시체를 전기톱으로 분해하려다 분재용 철사로 접어 같은 구덩이에 둔 채 사과나무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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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일부 본 시원은 미리에게 이야기하고, 만수는 마지막으로 선출을 찾아가려 한다. 그 사이 경찰이 오지만, 경찰은 범모와 시조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면서 만수의 안전을 당부한다. 만수는 선출의 집까지 쫓아가 비싼 술로 그를 꼬드긴다. 술기운에 기분이 좋은 선출은 친히 폭탄주를 말아주고, 만수는 살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9년간 지켜온 금주를 깬다. 음주 상태의 만수는 폭주해서 앓던 이를 펜치로 직접 빼고, 술이란 술은 다 먹다가 잠든 선출을 구토로 질식사하게 설계한다.


그사이에 걸려 온 미리의 전화. 미리는 사과나무 아래의 시체를 발견하고, 만수에게 사실을 묻기 위해 영상통화를 걸었다. 미리가 넌지시 만수의 악행을 눈감아주자, 만수는 마지막 살인까지 마무리하며 집에 돌아온다. 예상대로 만수는 제지 회사에 재취업했고, 경찰은 불륜을 숨기려던 아라의 거짓 증언을 증거 삼아 범조가 시조를 죽인 후 잠적했다고 결론 내린다. AI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제지 공장에서 만수가 하는 거라곤 불을 켜는 것 정도. 첫 출근을 떠나는 만수 뒤로 딸 리원(최소율 분)이 처음으로 가족 앞에서 첼로로 한 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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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붕괴

넥타이 동여맨 채 비즈니스 수트를 입고 출근하는 남편, 여우 같은 아내, 토끼 같은 자식, 반려견이 뛰놀 수 있는 정원과 전원주택, 음주 시 자식에게 손찌검할 때도 있지만 직장에선 ‘싫습니다’가 어려운 예스맨까지. 모든 것이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이상향이다. 이런 낙원이 180도 바뀌어 몰락했을 때, 그리고 그 몰락을 거스를 수 없을 때를 담아낸 것이 <어쩔수가없다>다.


영화 속 가장 큰 ‘어쩔 수 없는’ 것은 AI 시대의 구조조정이다. 기존의 인력을 합리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정리해고가 진행됐고, 철밥통 같았던 내 평생직장은 장어로 엿 바꿔 먹었다. 기계 도입에 반대하며 기계를 파괴했던 ‘전통적’ 러다이트 운동과 달리 만수가 택한 건 동업자 제거였다. ‘소등 시스템’에 대적할 만한 가능성이 없었기에, 비인간적인 만수의 선택은 말 그대로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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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만수를 두고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 만들어진 남성성이라는 환상과 ‘가장은 이래야 한다’라는 강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한계가 뚜렷한 사람이다. 그런 남성성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환상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애처로운 존재로서의 면을 파고들려고 했다”고 표현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만수 가족의 해산은 마치 AI 시대의 구조조정처럼 이미 예고된 결과다. 미리가 돈을 모아야 한다며 테니스 학원 수강을 거절한 것, 딸 리원이 가족 앞에서 안 켜던 첼로를 켠 것은 예상치 못한 변화다. 이에 대응하지 못한 만수는 마치 제지 공장에서 같이 일한 동료들이 해고되는 것처럼 끝내 반려견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해체되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전통은 붕괴한다.


또 박찬욱 감독은 전작 <헤어질 결심>이 여성성을 탐구한다면, <어쩔수가없다>는 남성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과잉 해석일 수 있지만 시쳇말로 ‘테토력’이 점차 감소하는, 그리고 노화에 따른 중년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의 감소가 영화 속 남성 등장인물에게 보인다. 만수뿐만 아니라 살해당하는 범모와 기조, 선출 모두 전통적인 가장으로서 한때 활약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외도를 보고도 호통치지 못하거나, 딸바보로서 손님의 진상 짓을 묵묵히 받아주거나, 이혼 후 공허함으로 적적하게 시간을 보낸다. 주인공 만수 역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지만, 의심의 근거라곤 고작 “아내가 예뻐서”가 전부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에 가까우므로 관객의 연령에 따라 이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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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의 완성 = 이병헌의 노련함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흥행 보증수표가 된 건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그가 연기한 여러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가 만수냐고 묻는다면, 사실 ‘맞다’고 말하긴 애매하다. 다만,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캐릭터는 만수가 맞다. 나이가 들어도 ‘카우보이’의 면모를 제대로 담은 <F1 더 무비>의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분), 딸 잃은 흐리멍덩한 혁명가를 소화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 연기력으로 작품 자체를 끌고 갔다면, 만수 역을 소화한 이병헌 역시 작품 전체를 통과하는 ‘몰락한 가장’의 모습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9년간 참았던 술을 마시던 순간, 앓던 이를 뺀 후의 쾌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순간,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살인을 얼렁뚱땅 실행하던 순간 등 괜히 박찬욱 감독이 이병헌의 노화를 기다린 게 아니구나 싶은 ‘능구렁이 모먼트’가 있었다. 겉으론 진중한데, 결국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어야 했기에 이 블랙코미디의 완성은 이병헌의 연륜과 노련함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병헌을 보조해 주는 주변 인물 역의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등 연기도 훌륭했다. 특히 아슬아슬한 선 타기 중 가정을 지키기로 하는 미리 역의 손예진도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블랙코미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병헌 외의 다른 만수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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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작품? 어쩔 수가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영화관에서 볼지, 말지 고민했던 건 사실이다. 가뜩이나 비싼 티켓 값에 기대치를 낮추는 평가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꺼이 티켓을 구매했던 이유는 어릴 적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을 만 19세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봐야만 하는 작품이 <F1 더 무비>와 같이 무조건 블록버스터나 SF 장르만 있는 게 아니다. 간신히 4K를 송출하는 집 스마트 TV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아무리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도 결국 집안일을 생각하고, 핸드폰 액정을 보게 된다.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에 절여져 있는 뇌에 오롯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돈 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그럴싸하다. 적어도 그 돈이 아깝지 않기 위해선,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감독들의 결과물이 가장 적합하다.


최근 박물관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여러 점의 작품들을 진열했던 이전과 달리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주변 분위기를 조성한다. 단 하나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 ‘몰입형 전시’를 만들었다. <헤어질 결심>을 영화관에서 봤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건, 어느 전시회나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감각들을 영화로써 느낄 수 있었다는 쾌감이었다. 크게 펼쳐진 파란색의 색감과 드라마틱한 구도의 변화는 방구석 티비로는 담아낼 수 없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시각적, 청각적 묘사를 음미하기 위해선 영화관에 가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어쩔수가없다>의 방향으로 생각하자면, 대부분 시대의 변화에 거스를 수 없다. 제지를 예술로 봐주는 사람은 점차 줄고 - 심지어 죽기도 했다! - 마찬가지로 영상을, 영화를 예술로 봐주는 사람도 점차 줄 것이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쉽고, 간편하고, 합리적이었다. 만수가 AI 공장 관리에 대해 주저했던 것은, 본인과 같이 제지를 예술로 보는 기술자들이 줄어든다면, 결국엔 본인 모가지에 도끼를 대는 일이 어느 순간 올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박찬욱 감독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영화 트렌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힘을 빼고, 예술성을 호소하며, 조금이라도 ‘기술자’들이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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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트리비아

원작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 소설 <액스(The Ax)>다. 때문에 제목 후보로는 <도끼>, <모가지> 등이 있었다.

원작에서는 총 7명을 죽여야만 했다.

특별 출연 유연석의 데뷔작은 <올드보이>였다. 22년 만에 유연석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제목에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이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였으면 해서”다.

형사 역할의 오달수는 <어쩔수가없다>를 포함해 박찬욱 감독과 가장 많이 작업한 배우가 됐다(총 6회).

범모 역의 이성민은 대역 없이 노출 연기를 했다.

영화 속 미리와 아라는 동일한 디자인의 니트를 각각 파란색, 빨간색으로 착용해 등장한 적 있다. 이는 다른 운명을 맞이하는 두 인물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수의 정원 입구에 있는 위성류는 ‘범죄’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는 바로크 작곡가 마랭 마레의 ‘르 바디나주(Le Badinage)’로, ‘장난’ 혹은 ‘희롱’을 뜻한다.

시나리오에는 없었으나, 제작 과정에서 만수 역의 ‘몸 개그’가 점차 늘어났다.


사진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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