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 이제야 알았어. 그 웃음의 의미를 말이야.
몇 살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는 허허 웃으셨다.
나는 그게 미워 할머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할머니, 웃지 마!"
"왜, 너 우는 모습 못생겼어."
그러면서 할머니는 또 허허 웃으셨다.
그럼 난 잔뜩 골이 나서는 "할머니, 미워!" 하며 등을 돌렸고
할머니는 입술을 씰룩 거리며 뭐라고 말을 거셨다.
그때의 나는 할머니가 미웠다.
속상해서 우는 나를 보고 왜 저렇게 웃으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딸이 엉엉 울었다.
엄마 때문에 속상하다며, 엉엉 울어댔다. 정확히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무엇이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떼를 쓰고 울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허허 웃음이 났다.
그러자 아들이 "엄마, 웃지 마. 지금 00 이는 우는데 엄마는 왜 웃어? 엄마 사이코패스야?"
아들이 그러건 말건 계속 웃음이 났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귀여웠다.
첫째의 작은 울음에는 항상 마음을 졸였었는데, 둘째는 그렇지 않았다.(아들, 미안.)
우는 것도 귀엽고, 말도 안 되게 화낼 때도 귀엽고.
음..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첫째 때는 늘 전전긍긍하며 육아를 했었는데 둘째 때는 그렇지 않아서랄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둘째는 예쁜 모습이 저절로 보였다.
그런데 울고 있는 아이에게 나의 웃음을 들켰다간 곤란한 일이 벌어질게 뻔했다.
그랬다간 그 울음은 대성통곡으로 바뀌고, 그럼 울음을 그치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등을 돌리고 작게 숨죽여 웃었다.
아이가 고집피우기를 멈추고 잠시 진정이 될 때까지.
아들은 늘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뭐든 한 김 식어야 하는 법이니까.
국도 한 김 식어야 푹 떠서 먹을만하고, 갓 지은 밥도 그러하다.
잠시 진정되고 나면 엉엉 울며 "엄마, 미워!" 하는 딸을 가만히 안아준다. 그러면서 조곤조곤 감정에 공감해 주고,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한 김 식고 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내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얼마 후, 나에게 작은 쪽지를 보낸다.
엄마 내가 화내서 미안해. 엄마는 내게 늘 다정하게 대해주니까 정말 고마워. 사랑해
어딘가 문맥이 어색한 귀여운 글을 보며 나는 한번 더 빙그레 웃는다.
어렸을 때 나도 할머니에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나라면 더 예쁘게 말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다.
할머니, 이제야 나 알았어. 그때 할머니가 나 많이 사랑했다는 거. 아니, 우리를 정말 지독히도 사랑하셨다는 건 알았는데 그 순간의 그 웃음까지 내가 예쁘고 귀여워서 그랬다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떠올려보니 할머니가 날 보며 웃으셨던 그 웃음들이 내가 딸을 보며 짓던 웃음이랑 같다는 걸 알았어. 그러고 보니 그 순간들이 참 따스하게 느껴지는 거 있지. 내가 그걸 이제껏 몰랐어. 예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이 안 나. 할머니 계실 때 더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줬다면 좋았을 걸. 할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