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글쓰기의 역사

교환일기와 편지, 그리고 글쓰기

by 책중독자 진진

나의 글쓰기의 역사를 이야기 하자면 중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전에는 십년이면 중학생 시절을 거슬러 갈 수 있었지만, 무려 00년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기억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 등산이라도 다녀온 듯 숨이 찼다.

무려 삐삐가 있던 시대였다. 유치한 숫자들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었지만, 번거로운 낭만이 있던 그시절. 나는 절친 K와 교환일기를 주고 받았으며 친구들에게 편지를 몇 장씩 써내려가기도 했고, 매년 다이어리를 사서 일기를 적어나갔다.

초등학교때부터 절친인 K와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곤 각자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당시 내가 살던 J시(지금은 C시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중학교를 추첨으로 정했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다른 학교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도 애틋했는지,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교환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일기를 주고 받았다.(이번주는 내가 쓰고, 다음 주는 K가 쓰는 식이었다.) 그렇게 적어나간 교환일기는 무려 세 권이 넘어갔다.

지금이라면 카톡 하나만 보내면 됐을 일을 우리는 그렇게 번거롭게도 교환일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번거로운 과정만이 주는 낭만이 있었다. 그 일기 속에는 일주일간 내게 일어난 모든 일(학교에서의 일과 친구와의 일 심지어 내가 본 드라마의 내용까지)이 시시콜콜하게 기록됐다. 우리의 중학교 시절이 모두 담긴 교환일기는 나와 K의 추억이자 흑역사 였다.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도 그러했다. 예쁜 펜과 알록달록한 편지지를 사서 친한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우리에게 우정의 징표였다. 게다가 그 양이 무려 깨알같은 글씨로 거뜬히 2-3장이나 되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모든 생각과 감정을 기록했던 그 편지들. 어버이날, 남편의 생일 날 겨우 편지 한 장 쓸까말까한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의 나는 대체 어떤 말들을 적었던 것을까? 구체적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그때의 편지와 교환일기장이 하나도 남아았지 않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로부터 조금 자란 내가-아마 대학생 때 쯤이었을 것이다.-낡은 초록색 캐리어에 가득 들어 있던 그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다 너무나도 오글거려 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것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것이다.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나, 열등감, 시기, 질투, 서운함, 좋아하는 아이에 대한 내용까지. 갖가지 내용이 들어있을 그때의 글들을 다시 읽는 다는 생각만으로 머리털이 쭈뼛 서버린다. 그래, 흡사 공포영화와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 글들을 내 앞에서 읽어댄다면 나는 귀를 틀어막고, 그래요. 나 그렇게 못났고 유치했어요. 제발 그만! 그만! 하며 소리를 질러댔겠지. 아마 훌륭한 고문도구가 되어줬을 게 분명하다. 그 그들이 그렇게 쓰일 일을 겪지않고 그냥 조용히 추억속에 묻혀 지금 처럼 '글쓰기의 역사'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역사는 친구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에서, 시시콜콜한 편지 속 수다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내 수다스러운 글들이, 나의 흑역사의 기록이 내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는 플랫폼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난다. 게다가 이렇게 글쓰기의 역사로 잘 포장하고 보니 나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더욱 드는 것이다.

글을 쓰길 참 잘했다.

오늘 밤의 나는 어린시절의 나와 함께 이렇게 글을 쓴다.

『오늘 밤은 쓰고 자야지.』 EP02. 글쓰기의 역사. 끝.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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