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드중독, 골프중독 그리고 책 중독
우리 집엔 4명의 중독자가 산다. 두 명의 패드중독자와, 한 명의 골프중독자, 그리고 한 명의 책 중독자가 있다.
이제까지의 글로 예상했겠지만, 맞다. 바로 내가 책 중독자다.
골프중독자는 이미 성인이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고(다들 아시겠지만 40대에 남이 시키는 걸 덜컥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부인이 하는 말을 곱게 듣는 남편이 있다면 내 앞으로 데려와주길 바란다.), 두 명의 패드 중독자는 여러 책에서 읽은 바대로 '모범'을 보이며 그 앞에서 노상 책을 펴 읽고 있으니 언젠가는 함께 '책중독자'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23년 작가교실에 등록했다. 여러 동화와 관련된 이론수업을 시작으로 후반부에는 수강생들의 글을 현직 동화작가 혹은 평론가 등으로 활동하시는(소위 동화 분야에선 권위가 있는) 선생님들께 직접 합평받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내 글을 총 3편 정도 합평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그 기회라는 것이 점차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써보는 동화가 내 뜻대로 잘 써질 리 만무했고, 취미 삼아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을 뿐 그 글들을 평가해 왔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때 한 동화작가님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작가 교실 수업을 듣는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었어요."
천 권?
5개월에 천 권이 가능한 권수인가? 도서관에 하루 종일 산다 해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권수에 나는 절로 입이 떡 벌어 질뿐 감히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솔직히 지금 떠올려 보아도 내가 잘못들은 게 분명한 것 같은 그 현실감 없는 숫자.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 작가님을 따라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기어코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어봐야 좋은 글을 쓰고 이야기의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니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천.. 권... 은 좀 무리였고. 나는 현실가능한 챌린지를 스스로 정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한 달 100권 읽기.
그렇게 눈뜨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책을 끼고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내가 가는 곳마다 책을 들고 아니며 어디서든 책을 읽어댔다. 동화책이 아무리 얇다고는 하나 한 권당 최소 1-2시간은 할애해야 했고, 더군다나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으니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나는 그렇게 한 동안 책을 옆에 끼고 다니며 미친 듯이. 정말 미친 듯이 책만 읽어댔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위해 책을 읽는다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들도 포기할 수 없어 소설책과 청소년 소설을 함께 섞어 읽으니 한 달 100권 읽기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에 100권 읽기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3달에 걸쳐 챌린지를 종료하는 사이 나는 집에서 책 중독자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텔레비전과 휴대전화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원래 쇼츠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아 어렵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뭐랄까. 해방감이 드는 그 느낌이 좋았다.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그 느낌. 다른 잡다한 생각은(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랄지) 접어두고 책 속의 활자들로만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마 브런치 작가님들은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글을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읽기도 좋아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렇게 내가 책에 빠져 나를 찾아가는 그때.
가족들의 나에 대한 불만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엄마는 맨날 책만 봐."
"책이나 보고. 쯧쯧. 텔레비전 좀 같이 보며 시간 좀 보내자."
"엄마가 내 옆에 있는 게 소원이야."
그렇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렇게 가족들에게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세상에..책을 읽다 쯧쯧.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현실은 이리도 예측불가하다.) 세상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건 상관없었지만, 아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퍽이나 날카롭게 내 정신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렇다고 책을 손에서 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나를 놓아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였으므로.
그래서 나는 가족들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는 할애해서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해 주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서서히 내 곁에 책을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책을 좋아한다며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해주기도 했다. 내 사랑스러운 강아지들!
여전히 나는 책 중독자의 삶을 사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즐겁다.
아직 정식 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책 중독자로 살 수 있어서 즐겁고 이런 내 이야기를 글로 적어낼 수 있어 즐겁다.
이번 주도 연재 요일을 어기고야 말았지만, 매일밤 글을 쓰고 자겠다는 나만의 약속은 꾸준히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즐겁게 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오늘 밤은 쓰고 자야지.』 EP05. 엄마는 책중독자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