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묘하게 달라. 왠지 얘는 ADHD 아닐까?”
6살 아이를 두고, 나름 고민했던 나의 말에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런 남편의 반응에 나 또한 함께 웃어 넘겼다. 그저, 여느 부모처럼, 그리고 여느 아이처럼.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이 함께 일어나는 여느 가족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때에는.
그렇게 대화를 웃어넘기고, 2년 후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후, 1주일이 지나자마자 아이는 1주일 치 결과를 바로바로 보여주었다.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 주는 아침, 한 모녀가 나를 붙잡았다.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가 그 아이를 지속적으로, 이유 없이 괴롭힌다는 이유였다.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면서 답답해졌다. 마음이 맞지 않는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싸운 적은 있지만 이유없이,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던 아이였기에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떤 아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없던 것도 아니었고, 지속적인 것도 아니었고, 일방적인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신경전의 이유였다. 그 아이도 내 아이도 아직 어리기에 서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한 자기 해석이 있었다. 답답한 것은 그 아이는 없는 이야기라도 지어내는데 내 아이는 지어내기는커녕, 있는 얘기도 잘 전달하지 않았다. 잊어버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흔한 ADHD의 대표 증상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도 많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지금’에 관련된 이야기는 조잘조잘거리고, 머릿 속 상상의 이야기는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지나간 이야기.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있던 일은 늘 “몰라, 생각이 안나, 까먹었어.” 하고 말했다. 그럴 때 마다 남자애라 그렇겠지, 지나갔었는데 이 날은 너무 얄미웠다. 그땐 그랬어, 그게 아니야. 이건 이랬어. 설명할 줄 모르니 상황은 상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냥 나는 미안해, 미안해. 죄송해요. 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그 모녀와의 전쟁의 서막이. 그 이후, 1년 간을 모녀는 우리 모자를 공격했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한대로 상세히 구술하는 딸애를 믿지 않을 엄마는 없었다. 반면, 기억나지 않아요.를 연거푸 말하는 내 아이는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라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정말 ‘기.억.이.나.지.않.았.던.것.이.다’
ADHD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상황을 둘러대는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다.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간 반복적인 일상(?)은 방금 일도 자주 기억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2시에 하교하며 말을 해도 ‘난 몰라’이다. 대부분의 일상을 세세히 기억하는 ‘예민증’ 엄마인 나로서는 답답하기 짝이없다. 아이가 거짓말 한다고도 생각해봤고, 부모와 사이가 안좋아서는 아닐까도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남편과 꼭 닮은 부분이라서 유전인가보다. 하하호호 넘긴 적도 있었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니었다.
남편은 잡다한 지식을 읽고, 기억하고 설명하길 좋아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도 척척 설명해주고 깊고 넓게 기억하지만, 사소하다 여기는 것은 (그 누구에겐 매우 중요할지라도) 자기도 모르게(?) 잊어버렸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잊어버렸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상의 것들을 ‘나처럼 예민하게’ 기억하려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잊어버리기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젠 어른이니까 어떤 순간엔 노력해야 함도 알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도 알고, 노력의 결과도 있을 때도(?) 있었다. 나도 몰랐고, 그도 몰랐지만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알아가게 되었다.’
아이의 '어쩔 수 없이 잊는 버릇'은 유전일까, 아닐까.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그런 내 생각은 맞는 걸까, 아닌 걸까. 그땐 맞았고, 지금은 틀리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그 해, 아이를 데리고 청소년 정신 의학과에 가서 ADHD 검사를 하며 남편과 나도 함께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성인 ADHD. 어렸을 때부터 있었는지 성인이 되어 생긴 건진 알 수 없으나 (그걸 본인이 알면 ADHD가 아닐 듯) 남편이 받은 성인 ADHD 판정의 결과를 들으며 '묘하게 다른' 내 아들과 '묘하게 닮았던' 그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어쩌면 남편을 원망하고 트집 잡으며 니 탓이야를 외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이유에 대한 해소가 있었던 것이 그 까닭일지 모르겠다.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묘하게 다른' 그 둘에 대한 의아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내 아이에게 불편한 것을 물려주었다고 하는 사실보다 그 의아함에 대한 해방감이 더 컸다.
사실 유전자라는 건, 바로 위에서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ADHD 성향을 가진 건 맞지만, 또 내 원가족을 떠올려봤을 때 그들이 가진 유전자가 아이의 유전자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는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유전자는 그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라는 점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 그래서 이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그의 삶을 살아갈 때에 조금이라도 덜 불편해하며 행복하다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로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다.
내 아이의 특별함(?)에 대해 알게 되는 때는 보통 초등학교 1학년 때라고 한다. 선생님께 전화가 오면, 그때에는 한참 자라고 있는 여느 아이들의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꼭 깨달아야 한다. 그냥 ‘유난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유난한 그들과 함께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