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하하하(ㅜㅜ)”
괜찮다고 했지만 눈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아니요. 더 치료받으셔야 해요. 지금은 그럴 때에요”
선생님은 반쯤 열려있던 다른 쪽 방문을 닫으며 말했다.
의외로 단호했던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의 강한 의지에 나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했다. 이 대화를 방 너머에서 듣고 있던 부모님은 불만이 가득했다. 그냥 자연스러운 아니냐고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겪는 그런 일. 그런 일에 유난스럽게 대응하는 나와 선생님에 기분 상해했다.
아이를 낳고 하루하루를 분투하며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일상에 나는 나 자신이 산산조각 나고 있는 걸 느꼈다.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처음 된 나로서는 모든 것이 어렵고 새롭고 두렵고 분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눈물의 나날이었다. 이 시기를 오로지 기쁨만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어딘가 고장 난 엄마는 아닌가. 아이를 망치는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아이를 낳고 30일 전후, 출생신고를 하면서 신청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서울아기 건강 첫걸을 사업’의 일환으로 베테랑 방문간호사가 집을 방문해 처음 하는 육아를 가르쳐 주고 심리적인 부분에서 케어할 부분이 있으면 관찰, 지도해 주다가 관련 부서에 인계해 주기도 하고 추후 관리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필요한 조치를 찾아준다.
아기를 낳기 전에도 감정기복이 심했지만 '심리 상담'이란 단어에 가진 묘한 오해 때문에 차마 상담을 받아볼 생각을 못했던 나는 이 방문간호사 선생님의 권유로 심리 상담 및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니냐, 그 정도는 다 겪는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묘한 절망감을 느껴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순간 선생님은 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낫는다고. 맞잡은 손에서 선생님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가족들이 방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주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나아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 내가 스스로도 이렇게 산산조각 나듯 부서졌다고 느끼는데 이걸 그냥 두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다른 가족들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 이제는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된 치료를 통해 나는 계속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도 하나씩 헤집기 시작했다. 그 좌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원망의 말을 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나의 상처가 낫기만, 그것만 생각했다. 잠깐 이기적인 것이라고 이 과정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리적으로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었기에 2년 간, 총 25번의 방문 케어를 받았다. 한 번에 적게는 30분 많게는 한 시간씩 상담을 받고 육아 교육을 받았다.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서 나를 가르쳐 주고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25번의 마지막 방문을 끝으로 우리는 안녕을 고했다. 마지막 방문의 날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손 편지를 건네고 진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이제부턴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 시점에 난 우연히 책을 쓰게 되었다. 1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책을 쓰고 만든 후 선생님께 책을 보냈다. 책을 읽어본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경민 씨한테 2년 뒤에 이루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엄마로서 잘 살고 싶고, 엄마가 엄마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그런 방법이 뭐가 있는지 찾고 싶다고 말을 했었어요. 제가 보기엔 경민 씨가 그 길을 찾은 것 같아요. 경민 씨가 그때 그 말을 기억하고 애쓴 게 자랑스럽고 잘 이겨낸 것 같아서 좋아요. 이거 다른 산모들한테 말해줘도 되죠? 어려움을 겪는 산모들에게 이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당신들도 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나는 기쁘게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산모들이 있다면 꼭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을 보고 감동받았다고도 말했다. 누군가에게 변화를 끝끝내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지만 나 자신을 잘 살아내는 것으로도 감동과 용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배웠다. 그렇게 절망과 환희를 통과하며 키운 아이가 꽉 채운 48개월, 다섯 살이 되었다. 지난 5년 간 멋진 사람을 둘이나 만나서 나는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진짜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 인생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을 뒤늦게나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혼자 다 겪은 것 같고 혼자 손해 보고 혼자 울고 혼자 해낸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 또는 악의 또는 의무, 책임 그리고 선행 등으로 나를 하나씩 채울 수 있었다. 그 시절을 통과할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순간들에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지금의 내가 좋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마음이 닿길 바라면서.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가서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아, 그 말이 이 뜻이었구나'하며 행복했으면 해서.
*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 받은 심리 검사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이 정도면 사람 앞에 서있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버틴 거예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연 없는 삶은 하나도 없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해주셨다. 선생님은 늘 나를 보며 "괜찮아요. 이 정도면 괜찮은 거예요"라며 인생을 심플하게 생각해 보자고 말해주기도 했다. 맞다. 생각보다 인생은 심플했다. 내가 할 것과 해야 할 일. 그리고 못하겠다 싶은 것은 안 하는 것.
인생이란 게 별난 것도 없지만 그 안에서 내가 행복과 길을 찾아가는 것. 헤매면 헤매는 대로. 지치면 잠시 쉬어가는 것으로. 그 대신 그 과정에서 내 마음에 집중해야 된다. 나에게 만큼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그러면 병난다. 나처럼. 마음의 병이 나면 항상 파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파장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나를 위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솔직하게 사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사랑하자. 파이팅!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