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동안 많은 수의 리커버와 개정판을 진행했다. 거기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었다. 물론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여럿이다. 판매지수일 수도 있고 표지의 만듦새의 발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훌륭함에도 인지도적인 면이나 판매적인 면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책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게 가장 대표적인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리커버는 많이 나왔다. 통상 ‘표지갈이’라는 업계 용어로 통용되던 것이 시장에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디자인이나 꾸밈, 만듦새에는 ‘좋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이런 여러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에선 결코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주객전도가 심하면 독자이자 소비자들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나는 독자이자 소비자이고 생산자인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분명 독자를 작가를 출판사를 위한 일인데 이게 정말 맞는 일일까. 이제는 어느 정도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얼마 전 아주 한국의 대표 작가의 한 작품이 리커버판으로 공개가 됐다. 서점 펀딩을 통해 출간 전 공개가 된 것인데, 이를 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작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시대가 변해도 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아주 유명하고, 작품이 가진 가치가 굉장하며, 작품이 품고 있는 주제 또한 한국인이라면 절대 모를 수도 공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맡는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공개된 모양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작가가 1969년부터 집필해 1994년, 그러니까 2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한국의 근대사를 이야기한 이 작품에 네덜란드 출신의 거장, 탈인상주의의 작가의 그림은 어울리지 않는다. 쉽게 ‘부조화’라는 단어를 꺼내고 싶진 않지만 이 조합은 부조화를 넘어 ‘괴랄(怪辣)’하다. 참고로 이 책의 첫 시작은 1897년 한가위가 배경인데 이 리커버 1권의 표지는 ‘아몬드 나무’인데, 비록 이 시대적 배경과 비슷한 시기인 1888~1890년 봄쯤에 그려졌고, 희망과 부활의 상징이라고는 하나 이 조합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서점을 들렀는데 새로운 리커버판 책이 또 하나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책표지에 금박을 두르고 책머리(top edge)와 책배(fore edge) 3면에 빛나는 금색을 칠한(금장, 金裝)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다. 1800년대 월든 호숫가에서 2년간 자연을 벗하고 살며 쓴 묵상과도 같은 글이 2000년대에 금색빛을 띠고 있는 것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설령 물을 수 있다 해도 물어보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