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추럴 본 덕후다. 어려서부터 덕후였고 인생에서 덕후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덕후의 미덕(?)은 주변 사람 미치게 하는 수집과 집착인데 그건 거의 구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는 영화관에 돈을 쏟아부었다면 조금 커서는 책 구입에 돈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주 구입-거래처(?)인 알라딘에는 돈을 참 많이도 썼다! 이는 매년 실시하는 알라딘 서점(이하 알라딘)의 '당신의 독서 기록'을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는데, 매해 몇 층쯤은 거뜬히 올릴 정도로 책과 콘텐츠를 사는 나 자신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반성 아닌 반성과 근거 없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살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고 인터넷 서점도 알라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너무나 킹 받게도 (거의) 알라딘에서만 책을 사는가.
물론 장르를 불문하고 주 구입처를 한 곳 정해놓고 사는 것이 뭐든 편리하다. 식재료를 살 때도 ‘*마트’, ‘마*컬리’, ‘쿠ㄷ*’, ‘***트레이더스’, ‘*마켓’ 등 여러 경로가 있지만 꼭 쓰고야 마는 하나가 꼭 있지 않던가. 이때도 선택의 이유는 여럿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사로잡는 한 가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 편리함은 들어간다. 여기서 편리하다는 게 단지 익숙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나의 취향과 선택을 망설일 새도 없이 결제 클릭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곳, 그러면서도 결제하는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만-족’으로 이끌어 내는 ‘그것’까지 포함돼 있다.
이런 여러 편리함 덕분에 알라딘에서 몇 년간 ‘플래티넘’ 회원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순수) 구매금액이 30만 원이면 ‘플래티넘’ 요건을 충족시킴에도 두 배인 약 67만 원을 써버렸다. 악! 나는 어디에 이렇게 많이 쓴 것인가.
일단 전자책을 무지 많이 샀다. 책은 부동산이다. 더 이상 책을 둘 장소가 없다. 게다가 전자책을 종이책보다 단 몇 퍼센트라도 싸다. 알라딘은 매달 적립금 천 원을 주고, 가끔 ebook 사탕 이벤트를 해서 운 좋으면 몇 천 원의 쿠폰을 ‘겟’할 수도 있다. 전자책 캐시로 전자책을 사면 구입할 때 단 몇 초라도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며, 일반 카드 구매보다 적립률도 높아서 다음 구매 때 도움이 된다.
이렇게 쌓은 적립금으로 책을 살 때 고를 수 있는 굳즈 구입에 한결 부담 없이 담게 만드는데, 알라딘은 굳즈 맛집이라 거의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수준이고 같은 가격의 기성품을 사는 것보다 품질이 낫거나 독서와 관련된 디자인이 많아 책 읽는 나의 정체성을 내가 사용하는 물품 곳곳에 은은히 녹아들게 해 같은 물품이라도 쓸 때 기분 좋게 하므로 이 또한 안 살 수 없게 만든다.
전자책을 이용할 때도 다른 전자책과 달리 인터페이스가 편리한데 그중 제일 좋은 것은 밑줄 지원이다. 스마트 패드라면 유용할 형광펜 기능이 흑백 대조가 거의 유일한 디스플레이인 전자책 리더기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인데(아무리 화면에 색대비를 높여도 잘 안 보인다), 밑줄 기능으로 보면 확실히 잘 보인다. 단순한 니즈에는 단순한 기능을 구현할 줄 아는 미덕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밑줄 긋기의 편리함과 각종 포인트의 공격 아닌 공격으로 지난 몇 년간 알라딘에서 전자책만 약 500권을 샀다. 그 500권에는 소설, 인문, 에세이 등 읽는 것뿐 아니라 컴퓨터책, 학습서 같은 것도 있다. 이건 또 앞서 말한 단순함과 달리 스마트 패드에서 열었을 때 선명하게 보이고 확대가 가능한 점, 장르 특성상 엄청 두꺼워서 종이책으로 가지고 다녔다면 기동력이 엄청 떨어졌을 텐데 스마트 패드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나를 구매로 이끌었다.
종이책을 살 때도 빠른 양탄자 배송은 나를 미치게 한다. 나도 안다. ‘이렇게 빠른 배송이 인류에게 과연 좋은가’라는 생각………. 하지만 책을 만들면서도 책을 사러 오프라인 서점에 갈 여유가 없는 내게 양탄자로 사뿐히 날아오는 당일 배송은 너무 달콤하다. 아침에 구매하면 퇴근할 때 ‘자,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퇴근 메이트’라고 쓱 갖다 준다.
케이팝 CD는 알라딘 특전도 있다. 알라딘은 중고서점도 있고 게다가 매장도 많아서 좋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또는 나의 책을 비교적 고가에 매입해주기도 해 나의 독서 비용 부담을 줄여준다. 너무 짜증 나는 데 너무 사랑하는 알라딘. 알라딘에게 부탁하고 싶은 딱 한 가지는 제발 배송받아봤을 때 책 상태가 좋았으면, 모퉁이가 멀쩡한 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품, 교환은 귀찮아서라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이상하게 알라딘에서 사게 되면 열에 몇 번은 교환을 하게 된다. 대문자 I의 나로서는 고객센터에 문의하는 것조차 부담스럽지만 할 수밖에 없다… ㅜㅜ 부디 이 점만은 개선이 되었으면… 그러면 알라딘에서 돈을 더 많이 쓰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라딘은 ‘사랑’이니까. 사랑한다. 알라딘!
물론 온라인 서점마다 특화된 부분이 있긴 하다. 예스**은 북클럽 비용이 저렴하고, 펀딩 제도가 있어(이건 알라딘도 있지만 서로 겹치지는 않음) 새로운 책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공연 및 티켓팅에 특화돼 있어 공연 예약은 무조건 예스**이다. 교*문고의 경우 온오프라인 서점(그것도 대형!)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조금의 발품만 팔면 온라인 가격으로 오프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자체적으로 전자책 리더기와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서 책을 배송하는 동안 전자책으로 며칠간 미리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도 있고 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비교적 손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책을 직접 출판해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 중에서 가장 책이 깨끗하게 오는데 포장이 깔끔하고 그 포장을 싸고 있는 박스에도 정성을 들인다. 물론 나는 알라딘 송장 뒤 문구를 가장 좋아하긴 한다.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