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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15. 2024

May I be happy?

긴 방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짧은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방황하는 자신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방황하더라도 언젠간 길을 다시 찾아 걸어갈 거라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 자신의 내부에 있던 자신감이었을 뿐이었고 나를 외부에서 관찰할 수밖에 없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는 굉장히 불안해 보였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일련의 사태가 마무리되기 전까지의 나는 굉장히 전투적이었다. 물론 그 과정자체도 쉽지 않았고 번뇌 그 자체의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명예 회복과 사과를 받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과정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다. 시끌벅적했던 나의 싸움은 절반의 패배와 절반의 승리였다.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는 없었지만 썩은 옹달샘에 돌멩이를 하나 던져 작은 파장 정도라도 일으키는 목소리를 냈다는 것, 그 앞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는 것. 그것만큼은 일평생 쫄보로 살아온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주변인들에게 내 존재가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내가 미처 몰랐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생 당해본 적 없는 싸움을 끝내고 나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가장 큰 목표였던 사과는 당연히 받지 못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꼬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많은 것을 하나씩 복기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는 벼락같고 재난 같았던 그 상황에서 나에게 쏟아졌던 많은 말과 감정에 대해서 말이다.


그 벼락과도 같은 일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벼락 후에 쏟아지는 폭풍우처럼 엄청나게 많고 큰 응원을 보내줬다. 일면식도 없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그렇게 굳이 지나가는 길에 보인 나의 재난 앞에 진실되고 엄청나게 많은 응원의 말을 남겼다. 이 감사한 빚을 어떻게 갚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실제적인 싸움 조정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단 전화 몇 통을 했을 뿐이었던 출판 노조가 큰 도움을 줬다. 그들은 나에게 힘주어 이야기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실제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증언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증언하겠다는 동료들도 몇 명 있었다.


여기까지만 생각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자꾸 몇몇 사람이 생각나고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그 벼락같은 사건의 한가운데서 나와 함께 있었던 목격자가 생각이 났다. 그에 대한 생각은 실로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해도 결론이 쉬이 나지 않았었다. ‘어쨌든 가해자가 아니었고 그도 그냥 관찰자이었을 뿐이다’라는 마음과 ‘그래도 나의 부서장인데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사건 자체는 물리적인 폭력만 안 썼다 뿐이지 폭력의 현장 한가운데였는데. 그가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이며 그가 기획하고 만드는 책과는 괴리감이 있지 않은가’하는 점이었다.


애써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계속 울고 계속 몸이 아팠다. 사람을 만나고 웃고 있어도 속이 썩어났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항상 몸이 더 아파졌다. 그때마다 우연히 들은 음원사이트 히트 차트의 한 곡이 그런 내 속을 후벼 팠다.


‘May I be happy? 매일 웃고 싶어요. 걱정 없고 싶어요. 아무나 좀 답을 알려주세요. So help me. 주저앉고 싶어요.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요.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데이식스의 ’HAPPY’. 무려 대문자로 강조해서 쓴 ‘해피’이다. 누군가의 폭력으로 내 일상과 자부심은 박살 났다. 작정하고 박살 내려고 한 폭력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출판인으로서의 나의 자아는 박살 났다. 그리고 내 행복은 내 거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선언하고 나왔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계속 울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니… 그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그 인정의 계기가 명백히도 의도를 가지고 한 의도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너무 화가 났고, 그 시간 함께 있었던 동료는 말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래도 ’그는 이 일에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니까. 관찰자였으니까 입장이 다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이런 내 맘을 박살 낸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약 13년의 근속 시간 중 또 근 몇 년간 일상의,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낸 동료들의 메시지 창을 우연히 보게 된 일이었다. 거기에 동료였던 ’나‘는 없었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도 평화로웠고 나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내가 뭐라고 이미 사라진 존재인 내가 그들의 대화 주제일리 없었지만 그보다는 이들은 이토록 평화롭구나. 그런 사건이 있었어도... 어쩌면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박살 낸 ‘빌런’은 ‘나의 가해자’가 아니라 ‘나 자신’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란 것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생각, 머리, 시각이 서로 부조화를 일으켰다. 애써 정신승리를 하던 나 자신은 그 순간 무너졌다.


사과를 하지 않는 가해자의 어처구니없는 변명도 아닌 가잖은 말보다 동료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이래서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는 것인가. ’May I be happy’라는 노래의 가사가 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그래서 계속 울었다.


하지만 이후의 나는 그래서 더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렇게 계속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나를 응원하고 도와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시간을 어느덧 두 달을 넘어 석 달을 넘어가고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도 백일이면 잔치를 하는데 나도 그런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정리의 시간을 가지며 나는 드디어 근 석 달 만에 책 한 권을 읽어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 재끼던 나에겐 꽤나 느린 속도로 읽어낸 것이었지만 이 또한 나의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인인 것 같아서 기뻤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고통의 시간을 가졌던 것도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아쉬움은 정말 많다. 그래도 살아야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받은 많은 정성의 마음을 갚아야지… 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역시 내가 석 달 만에 읽어낸 책에 적힌 말이 힘이 되었다.


자기에게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 감사할 줄 알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정성스럽게 끓여 다시 다정한 글로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 덕분에.


책으로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또 책을 읽으며 용기와 삶, 행복을 배워왔던 나는 이번에도 또다시 책에게서 그 책을 쓴 사람의 다정한 마음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책의 문구 하나로 ‘May I be happy?’라는 나의 깊은 고민에 쉬이 ‘YES!’라고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책을 만나고 책을 읽고 책을 짓게 된 이후에 비로소 마음이 들끓는 걸 내버려 둘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였을까? 그렇게 떠오른 생각은 땔감처럼 쓰임이 있고, 덩달아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때론 이렇게 괴로운데도 이렇게나 가난한데도 죽어지지 않는다는 게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조차 책을 향하고 있고, 책 안에 자리 잡게 된 어느 페이지를 꿈꾸고 있고,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어우러질 준비를 하고 있다. (…) 어쩌면 책이 가져다준 가장 반짝이는 축복이다. (…)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종이 위에서 말하고 싶어 졌고, 모든 버려질 이야기들을 전부 읽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더욱이 읽고 싶다. 하야시 후미코가 차분히 필사적으로 써낸,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들처럼.“

- 임진아, <부지런히 나를 키우는 읽는 생활>, 185~186쪽(위즈덤하우스, 2022년)


나는 어느 날의 다짐처럼 행복해지기로,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것을 이야기로 쓰겠다고. 내 삶의 모든 것은 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데이식스의 노래를 듣고 울지 않는다. 이제는 웃는다. 노래 제목처럼. 오늘도 딸과 함께 이 노래를 함께 큰 목소리로 불렀다. 정말 행복했다. 회복이 이제 나에게 찾아오는 것 같아서. 때론 눈물이 나더라도 이제는 정말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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