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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22. 2024

내가 아는 멋진 이름들

김경민… 나는 항상 내 이름이 싫었다. 이름이 싫은 이유는 여럿 있었다. 하나만 대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단 ‘기역(ㄱ)’이 두 번 연달아 나오는 게 싫었다. 굳이 기역을 두 번이나 힘주어 발음해야 읽을 수 있는 불편함이, 이름이 주었던 중성적인 느낌도 싫었다.


내가 원했던 이름은 청소년 시기, 그러니까 1990년대쯤 유행했고 적당히 평범하면서도 세련된, 그래서 한 반에 한 두 명씩 있을 수도 있어 한데 섞일 수 있는 이름이었으면, 발음했을 때 느낌이 청량하고 맑은 그래서 부를 때마다 밝은 느낌이 난다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누가 들어도 여자아이 이름 같아서 내가 이름만으로 판단받을 상황(학원 반 배정 같은 것)이 와도 남자아이로 오해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적당한 이름을 원했다.

왜 할아버지는 이런 애매하고 예쁘지도 않은 이름을 받아와서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지 원망스러웠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왔었다.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조건 없이 개명 신청을 받는다는 신박한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기쁜 소식을 들고 엄마에게 가서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개명 신청의 번거로움을 알리 없었던 나였지만 이번 기회가 그간 나란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만이었던 청소년의 나에게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그것도 아주 손쉽게)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칼에 거절당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음에도 그 ‘이름’은 늘 불만이었다. 정 불만이라면 ‘수정’할 수도 있는 이름이었지만 어쩐지 그럴 수 없었다. 길지는 않았어도 짧지 않은 시간 나의 인생과 함께 한 역사가 있었기에 내면의 그 ‘불만’과 적당히 합의하고 같이 살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그 ‘이름’과 어찌어찌 살아간 시간이 이제는 꽤나 흘렀다. 여전히 나는 내 이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어쩐지 내 이름이 불릴 때, 내 이름을 써야 할 때, 스스로 내 이름을 불러 볼 때의 마음 가짐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도 같다. 어딘가 애틋하다고 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름 그 자체가 나란 사람의 존재의 정체성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쩐지 정들었고 애틋한, 그래서 내 안의 못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올 때도 어쩔 수 없이 어떻게 해서든 나 자신을 껴안아 달래주어 계속 살아가게 하듯 ‘내 이름’도 그렇게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어딜 가도 내 이름을 스스로 잘 부르게 되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이름이 어떻게 되신다고요?”라고 누군가 물어봤을 때, “여기 쓰여 있네요. 김경민”이라고 답했다. 예전처럼 어딘가 부끄럽고 싫어서 외면하고 싶었던 그래서 개미만 한 목소리로 답한 내가 아니라 ‘아, 여기 있구나. 내 이름. 그리고 나’라고 반갑게 말할 수 있는 이름 말이다.


*

오늘 들은 감동적인 수업의 강사님 이름은 번역가이자 아동문학 평론가인 ‘김지은’ 선생님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름, 어린 시절 좋아하고 동경했던 이름은 ‘지은, 소영, 지영, 민지, 현주, 하영, 서현, 지현…‘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중 ’최소영‘은 내 기억 속의 최초이자 가장 따뜻했던 친구의 이름이고, ’김지은’은 자신의 삶에 주저 없이 도전했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옥란‘은 내가 힘든지도 스스로도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그런 나의 상태를 먼저 알아차리고 먼저 너의 마음부터 다독여주라고 말해주며 우리는 이제 친구라고 말해준 고마운 선생님이다. ‘지영’은 나를 처음 따뜻하게 봐준 후배 동료의 이름이었고, 어린 시절 친구였던 ‘민지’는 동네 친구들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어른이 되어 만난 다른 ‘민지’는 내가 꿈꾸던 청춘의 모습 그 자체를 가진 친구였다. 그리고 일생에서 같은 디자이너로서 유일하게 함께 행복을 누렸던 친구는 ‘승주’였고, 내가 아플 때 괜찮냐고 물어봐준 유일한 동료이자 나를 문우라고 불러준 사람은 ’화영‘이었고, 말하지 않아도 나의 고통을 거의 유일하게 알아보고 인정해 준 친구는 ’현윤‘이었다. 인생은 참 얄궂다며 이별의 선물로 인생 펜을 선물해 준 친구는 ‘상하’이고, 내가 웃고 있어도 그 속이 너무 깊어 보여 걱정된다고 나를 늘 진심으로 걱정해 준 선배는 ’미진‘이었다.


그리고 내가 인생작이라고 꼽으며 1가구 1책으로 지정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했던 책의 저자의 이름을 몇 명만 꼽자면 ‘김소영‘(어린이라는 세계), ’이소영‘(별것 아닌 선의), ’하미나’(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김미소‘(언어가 삶이 될 때), ‘이라영’(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김원영‘(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미야모토 테루’(그냥 믿어주는 일), ‘가즈오 이시구로’(클라라와 태양), ‘대니 샤피로’(계속 쓰기), ‘다이애나 애실’(되살리기의 예술), ‘줌파 라히리’(그저 좋은 사람), ‘앤드루 포터’(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최은영’(밝은 밤), ‘정세랑’(피프티 피플), ‘이금이’(유진과 유진), ‘비비언 고닉’(사나운 애착), ‘정혜선’(나의 덴마크 선생님), ‘캐시 박 홍’(마이너 필링스), ‘리베카 솔닛’(멀고도 가까운), ‘엄지혜’(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등이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봐 주고 늘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나의 원앤온리 담당 편집자님의 이름은 ‘소리’이고, 나의 영원한 동반자의 이름은 ’경률‘이다.



**

그리고 내가 들어본 이름 중 가장 멋진 이름은 ’수야‘이다. 달린다 할 때 ’달릴 수(한자사전에서 검색은 되지만 이 글에 붙여쓰기는 안되는 희귀 한자)‘에 들판‘할 때 ’들‘의 ’야(野)‘. ’들판을 달리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했다. 한 번 들어서 잊을 수 없는 데다 뜻이 너무 멋져서 정말 좋은 이름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대학생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찍힐 이름을 바꿔 버렸다. 그의 바뀐 이름은 ‘희선’이다. 당시 최고 인기 스타의 이름. ‘수야’는 아니 ‘희선’이는 바꾼 이름이 지금도 마음에 들까. 어쩐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수야’는 ‘수야’다.



***

그래도 지금 현재 상태에서 내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름은 우리 아이 이름이다. 순한글로 지었고 뜻도 아주아주 멋진, 그래서 햇볕에 비친 잔물결을 보면 늘 생각나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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