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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 읽기

by 김경민

“동해물과 백두산이…(흑흑흑)…”


3년 전쯤의 ‘나’는 이렇게 허공에 대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걸 들을 사람은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어린 나의 아이뿐.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나의 아이와 나 사이에 이렇게 어색하고 고요하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 서글픈 애국가가 글쓰기의 씨앗이 되고 있는 줄은.


부모가 될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부모가 돼 있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막상 되고 보니 생각보다 순탄했던 것 같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운 마음은 단 며칠 만에 깨졌다. 평화가 깨지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던 것이다. 어설프고 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보 부모, 특히 ‘모’에게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당장 눈앞의 미션을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시련이 왔다. 그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난 후부턴 미션 수행에 몰입해 살았다. 그렇게 초단위로 떨어지는 미션 수행에도 익숙해질 무렵, 내 머릿속 구석에 있었던 지식이라 하기도 뭐 한 ‘어디선가 들은 정보’가 고개를 들고 비집고 나와 ‘나의 내면’에 속삭이듯 살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말을 많이 해줘야 해. 아이의 감각은 지금 귀 밖에 안 열렸다고. 아이의 감각에 자극을 줘야 해!’


이런 생각이 들고 나니 뭐라도 들려줘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아무 말이나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정한 엄마를 콘셉트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작정하고 한 일이지만 답변 없는 질문과 대화에 약간 지치기 시작했다. 대실패였다. 다음엔 라디오 틀어주기. 그래도 아이와 친밀감을 쌓기로 하고 시작한 일인데 남의 말을 빌리는 건 이상한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그다음엔 노래 부르기. 여기서 애국가가 나온다. 좋아하는 노래, 모르는 노래, 알 것 같은 노래… 온갖 레퍼토리를 다 끌어다 썼지만, 하루 24시간을 거의 다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갓난아이의 시간을 채우기엔 내가 아는 노래가 너무 없었다. 드디어 애국가 4절까지 부르기 시작.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어서 이것도 실패.


내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기존에 있던 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뭐가 됐든 쓰여있는 것, 결국 책을 선택하게 됐다. 책을 읽으려면 일단 책을 봐야 하니 아이는 눕혀 놓고 해서 아이컨택도 안 해도 되니 마음의 부담도 덜해졌다.


어린이책은 분량이 길지도 않은데도 읽으면 읽을수록 자괴감이 많이 올라왔다. 어린 시절 치아교정을 했던 나는 유난히 발음이 안 좋았고 그래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해도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스스로 들 정도로 발음이 안 좋았다. 나 조차도 내가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데 누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한 문장을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버벅 거렸다. 너무 버벅거려서 일단은 한 문장씩이라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을 목표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쓰여 있는 문장이란 게 너무 어색하고 재미도 없었다. 게다가 감정도 안 들어가니… 이런 읽기를 하는 나 자신이 로봇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으니 이번만큼은 최선을 다해보자’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발견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어린이책이나 어린이가 읽기에는 문장이 너무 길었다. 적당히 생략하고 축약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옆에 누워만 있던 아이는 앉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고 내 옆에서 같이 책을 보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리액션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하던 아이가 ‘오!!! 오!! @.@‘ 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반응을 보니 왠지 모르게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야기를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재밌게 해주고 싶었다.


극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내 안의 부끄러움을 깨부수고 연기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강조를 주는 것으로 ‘큰 것은 아주 크게, 작은 것은 아주 작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액션까지 담아서 해주면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서 액션도 조금 추가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 더 신나게 책을 소리 내 읽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편집의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더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같은 책이라도 매번 같지는 않게 조금씩 바꿔서, 조금씩 문장을 늘려서 원문에 가깝게,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림만 보기, 화자를 바꿔서 읽어보기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출판사에서 일을 했으니 편집의 일을 모른다 할 수는 없었으나 그것의 효용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한 문장이라도 편집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아이의 반응을 보며 편집의 효용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다.


또 내 목소리를 들어내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다. 내 말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항상 단문 위주였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가 너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면 그 어색함을 깨야 했다. 내 목소리에 익숙해져야 하고 내 목소리를 인정하고 사랑해 줘야 한다. 이것은 비유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생각한다. 자신의 음성, 실제 목소리를 사랑하는 것.


그렇게 내 목소리를 이해하고 소리 내기 시작하니 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은 차례가 될만한 문장 몇 개가 떠올랐고 생각날 때마다 적어뒀다. 적다 보니 공통점이 생긴 문장들은 카테고리를 잡아 한 장으로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쓴 것이 결과적으론 내 책의 첫 ‘목차’가 되었다. 목차를 먼저 써놓으니 그것이 이정표가 되어 설령 글이 길을 잃더라도 다시 그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정표인 목차를 쓸 수 있었던 것은 한 문장씩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장들의 시작은 ‘소리 내 읽기부터’였다고도 생각한다.


만약 책을 써보고 싶은 분들이 있고, 그런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한 문장부터 써보기로 하자. 만약 그것 조차 어렵다면 한 문장부터 읽어 보기로 하자. 대신 어렵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어보기로. 그 문장들이 쌓여서 결국 말로 손으로, 그리고 나의 문장으로 나올 것이다. 많이 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늘부터 한 문장이라도 읽어 보기로 하자.




오늘도 여기까지 이렇게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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