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킹콩의 독서 일기
재독, 아니 삼독째다.
첫독은 자발적이었지만 나머지 두 번은 아니었다.
지금 듣고 있는 강의의 선정 도서였다.
그렇다. 상당히 억지로 읽었다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 나는 세 번이나 읽은 자.
자부심을 갖고 독서 일기를 쓰려한다. 훗.
삼 독 한 자의 자부심이 25페이지 만에 깨졌다.
세 번째인데도 이 부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시각 인식 불능증
시각의 상상력, 기억력, 시각적인 재현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능력이 손상(p.52)
인지적 가정은 가능하나 인지적 판단은 어려움
(p.46)
눈은 보이지만 인식할 수가 없다.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물건을 주면 그 형태로 쓰임새를 추측할 뿐 즉각적인 판단은 불가하다.
꿈에서조차 시각적인 이미지가 사라진다.
생활은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가능하다.
내 아내를 아예 몰라보거나,
또는 모자로 판단한다.
역행성 기억상실증
1946년 이후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새로 생기는 기억도 족족 전부 지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20대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한 공포로 다가온다.
기억의 상실은 나 자신의 상실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나 자신을 잃었지만 상실감을 느낄 주체가 없기에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것은 다행인 건가 더욱 절망적인 것인가.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p.83)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억이 없다면 감정, 의지, 감수성도 무용지물이 아닐까.
상실감마저 상실했다.
시력을 잃었지만 시력에 관련된 기억마저 다 잃었기에 상실감이 없다.
과연 저주인가 축복인가.
제육감, 고유감각 상실
우리가 불 꺼진 방 안 침대 위에 누워서 눈을 감고도 베개를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은 베개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베개를 안기 위해서는 베개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내 팔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알아야 한다.
그 감각을 잃는다면 우리는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팔을 움직일 수도 걸을 수도 없다.
그리고 말을 할 수도 표정을 지을 수도 없다.
여기서부터는 내 상상력 밖의 일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나저나 이거 꽤나 과학 서적 같은데
저자의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어색하다.
자기 다리를 자기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남자.
이건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설샘이 워낙에 생동감 있게 얘기해주셨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한다.
절단된 신체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
하지만 절단된 다리에 관한 이 환각 증세가 의족을 끼고 걷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건 약간 상상력이 필요하다.
내가 오른쪽밖에 의식할 수 없다는 건,
립스틱도 오른쪽만 칠할 수 있고 음식도 오른쪽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우, 역시 상상이 안 간다.
틱 장애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 행동이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함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투렛 증후군
운동 틱(근육 틱), 음성 틱, 두 가지의 틱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전체 유병기간이 1년을 넘는 것을 뚜렛병(Tourette’s Disorder)이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생각보다 흔한 틱 장애.
그래서 용어만 짚고 넘어간다.
신경매독
매독균에 의해 뇌, 수막, 척수가 감염되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증후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파킨슨병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 퇴행성 질환.
뇌의 특정부위에서 이러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원인 모르게 서서히 소실되어 가는 질환.
파킨슨병의 주 증상은 서동증(운동 느림), 안정 시 떨림, 근육 강직 등의 운동장애.
코르사코프 증후군
1. 심각한 기억력 장애로, 주로 새로 발생하는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말한다.
2. 만성적인 알코올 섭취에 따른 뇌 손상으로 과거 기억을 상실하고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3.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ff syndrome)은 비타민 B1인 티아민의 결핍에 의해 생기는 신경학적 학습 및 기억 장애이다. 기억 상실-작화 증후군(amnesic-confabulatory syndrome)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경질환은 러시아의 신경정신학자 세르게이 코르사코프(Sergei Korsakoff)에 의해 명명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기억이 모두 깨진 남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지어낸다. 저자는 이 남자를 <길 잃은 뱃사람>에 나오는 남자보다 더 절망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서 음악이 재생된다.
재생 시간과 음악의 종류는 선택이 불가하고 나에게만 들린다.
이 경우 환청은 환상이 아닌 회상이다.
기억 속의 멜로디를 재생하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경우는 모르겠다.
환청을 작곡에 이용했다면 현존하지 않는 음악이었어야 할 텐데. (p.265 참고)
내 안의 개
약물중독으로 인해 후각이 굉장히 예민해진 남자 이야기. 냄새로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 (약물도 끊고) 후각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남자는 그 시절을 “선명하고 생기 있고 자족적거 충만한 그런 세상”(p.298)이라고 회상한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후각은 인간이 성장하고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억압된 희생양이라고.”(p.298) 썼다.
첨부터 가지지 못한 것과 가졌다가 잃은 것에 대한 욕망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엄연히 오감 중 하나인 후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은 좀 놀랍다.
힐데가르드트는 뇌질환(편두통이라고 쓰여있음) 인해 생긴 환영을 이용해서 예술활동을 했다.
그녀는 그 환영을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뭐 그래.... 그건 그렇고.
왜 자꾸 도선생을 걸고넘어지는데...
1부 서문에도 나왔지만 이 구체성이라는 의미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리고 계속 등장하는 이 책 <산산이 부서진 세계의 남자>는 우리나라에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근데 이거 기준이 이상하다.
지능이 매우 낮은 사람의 예로
자물쇠를 열지도 못하고, 하물며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이라고 적혀있는데...
아니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해 못 하는 게
자물쇠를 못 여는 것만큼 더 저능한 거야?
그러니까.... 나 저능한 거야??
“할머니는 왜 돌아가셨을까요? 내가 우는 건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에요. 할머니는 이제 잘 되셨어요. 영원의 집을 향해 여행을 떠나셨으니까요. 너무나 추워. 밖이 추워서가 아니에요. 집안이 겨울인걸요. 죽음처럼 차가워요. 할머니는 나의 일부였어요. 이제 나의 일부도 할머니와 함께 죽고 만 거예요. 지금은 겨울이라 내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분명히 봄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p.337-338)
나는 여태껏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과학서적 인 줄로만 알았다.
흔하지 않은 신경 병증 사례들의 나열인 줄 알았다.
생소한 정보들의 집약체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흔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기적과 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작가가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작가는 지식의 변화가 아닌 생각의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더불어 시야의 변화였다.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